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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과학자 입장에서 탕수육은 ‘부먹’입니다”

아무튼, 주말

‘튀김의 발견’ 쓴 고분자공학자 임두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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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연구 논문이 아닌 튀김 요리에 대한 책을 썼다. 최근 ‘튀김의 발견’을 출간한 임두원(48)씨는 서울대에서 고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 기업의 연구 개발 부문에서 일하다 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자리를 옮겨 과학기술 정책 기획을 담당했고, 현재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과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한국인 저자가 음식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저술·발간한 경우가 드문 탓인지, 책에 대한 요리·외식 업계 사람들의 호평이 쏟아진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는 "메모를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고 했고,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튀김의 속살에 숨은 과학 원리를 밝혀 주거나, 실제로 요리할 때 응용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책은 드물었다"며 출간을 환영했다. 임씨를 서울 삼성동 한 돈가스집에서 만났다.


―과학자가 왜 튀김에 대한 책을 썼는지 신기해하는 이가 많다.


"20여 년 전 처가에서 돈가스 전문점을 창업했다. 어딘지 모르게 친숙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튀김의 많은 과정이 과학과 비슷했다. '튀김은 왜 맛있을까' '우리는 왜 튀김을 사랑할까' '튀김의 매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등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생각나는 대로 답해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명쾌하지 않았다. 그러다 '과학이라는 도구를 써서 튀김을 분석해보자' 생각했다. 더 솔직해지자면 '더 훌륭한 돈가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게도 번창하겠지' 하는 기대도 컸다."(웃음)


―튀김과 과학은 어떻게 비슷한가.


"제가 전공한 고분자공학은 분자는 분자인데 약간 커다란 분자를 다루는 학문이다. 음식의 기본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도 일종의 고분자다. 탄수화물은 포도당, 단백질은 아미노산, 지방은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연결돼 만들어지는 고분자이다.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가공, 즉 요리 과정은 공학에서 배운 고분자 가공과 똑같다. 특히 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문 튀김기를 처음 보고 '어, 이건 실험실에 있던 건데'라며 깜짝 놀랐다. 대학원 실험실에서 사용했던 '오일 배스(oil bath)'라고 하는 가열 장치와 거의 똑같다. 실험할 때 온도를 올려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유탕(油湯) 가열이 가장 안정적이다."


―인간이 튀김을 사랑하는 과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튀김 요리에는 지방이 풍부하다. 인류의 DNA(유전자)에는 지방에 대한 선호가 새겨져 있다. 지방은 기본 영양소 중에서 영양가(열량)가 가장 높고,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선호하도록 돼 있다. 영장류 단계 시절부터 섭취해온 음식물 특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류의 조상은 쉽게 채집할 수 있는 과일, 채소, 곤충 등을 주로 먹었다. '아삭한 식감'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식재료다. 갓 튀긴 것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바삭한 식감은 과일·채소·곤충을 씹었을 때 느끼는 그것과 닮았다."


―책에서 '지방이 누명을 썼다'고도 했다.


"그동안 지방은 '살찐다' '비만의 원흉이다' '건강에 해롭다' 등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살찌는 원인은 지방만이 아니다. 탄수화물이 더 큰 원인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해로운 음식은 없다. 뭐든 많이 먹으면 건강에 이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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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면 기름 없이도 튀길 수 있지 않은가.


"에어프라이어에서 요리돼 나오는 '튀김'은 엄밀히 말해서 (튀김이 아니라) '유사 튀김'이다. 튀김의 정의가 '식재료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많은 양의 유지(油脂)를 사용하는 조리법'이다. 에어프라이어는 헤어드라이어처럼 뜨거운 공기를 이용한다. 뜨거운 열풍을 빠르게 돌려 재료를 익힌다. 뜨거운 공기가 위아래로 빠르게 순환하면서 식재료를 마치 뜨거운 기름에 넣은 것처럼 고온으로 가열하여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조리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름에 넣어 튀겼을 때보다는 지방 함량이 적고, 튀김 애호가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튀김 형식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봤을 때는 일본 덴푸라다. 튀김옷이 가장 얇으면서도 속재료 맛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하는 한편 바삭함이 극강 경지에 올라 있다. 기술적으로는 최고라고 본다. 하지만 튀김마다 그 나름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매력이 있다. 어느 하나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본인이 찾은 튀김 비결은 없나.


"인내다. 급한 마음에 재료를 마구 넣다 보면 기름 온도가 갑자기 낮아져 튀김 품질이 엉망이 된다. 기름양의 절반 정도만 재료를 넣는다 생각하고 천천히 튀겨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요령은 없나.


"이상적인 튀김옷을 찾았다. 튀김옷을 500㎖ 용량 양푼에 만든다고 할 경우, 물과 밀가루를 125㎖씩 1대1로 섞고 여기에 노른자 하나와 맥주 1큰술을 넣는다. 기름 온도는 섭씨 170~180도에서 튀긴다. 튀김 재료를 기름에 넣었을 때 중간까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면 170~180도로 튀김 요리에 가장 알맞은 온도이다."


―책에서 탕수육, 덴푸라, 프라이드 치킨의 탄생 배경 등 튀김을 과학뿐 아니라 역사·인문·사회학적으로도 설명하고 있다.


"조사하다 보니 튀김은 과학일 뿐만 아니라 역사이기도, 문화이기도 했다. 튀김을 더 잘 알려면 이런 분야도 알아야 했다. 공부가 예정보다 훨씬 길어져 5년이 걸렸고, 책 출간도 늦어졌다."


―탕수육은 '부먹찍먹(소스를 부어 먹느냐, 찍어 먹느냐)' 논란이 뜨겁다.


"원래는 부먹이 맞는다고 본다. 탕수육의 튀김옷은 바삭한 식감이 약하다. 밀가루를 주로 사용하는 일반적 튀김옷과 달리 탕수육 튀김옷은 전분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밀가루에 포함된 글루텐 단백질은 튀겨지는 과정에서 다공질(미세한 구멍을 많이 가진) 구조를 형성하며 바삭한 식감을 만들어내는데, 탄수화물의 일종인 전분에는 글루텐 단백질이 들어있지 않다. 애초부터 탕수육은 튀김옷부터가 소스를 흡수하도록 설계됐다. 만약 소스를 찍어 먹는 음식이었다면 다른 튀김옷을 입혀 더 바삭하게 설계됐을 것이다. 하지만 취향이란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음식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책을 더 쓸 계획인가.


“요리와 음식을 좋아한다면 알아야 할 과학 상식을 총정리한 일종의 요리 과학 백과사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튀김이 먼저 책으로 묶였다. 요리 외에 다른 대중적 주제로 과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도전도 해보고 싶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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