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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공포로 혼란스러운가요? 과학이 당신을 구합니다”

과학이 지겨웠던 당신도 빠질 수밖에 없는 궤도의 입담. MBTI부터 지박령, 블랙홀까지, 지금 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드립니다.

[아무튼, 주말] 

[정시행 기자의 드라이브]

과학의 달 4월에 만난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갈등과 공포로 혼란스러운가요? 과학이 당신을 구합니다”

국내 최고 인기의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는 "인류라는 종과 지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사람들이 음악과 미술처럼 즐기며 이야기하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타원형 배경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서울 강서구 마곡의 LG아트센터.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과학(科學). 세계의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그것은 어떻게 해야 비눗방울을 터뜨리지 않고 크게 불 수 있을까, 배고프면 왜 꼬르륵 소리가 날까 같은 어린 시절 순수한 호기심을 채웠다. 그러다 지질시대 구분법과 뉴턴의 운동 법칙,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 따위를 거치며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인생의 법칙이라 여겼던 것들이 차례로 흔들리고, 난무하는 감정과 의견의 충돌로 너덜너덜해지고, 모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 속에서 길을 잃을 때, 다시 궁금해진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또렷한 해상도로 보여줄, 검증 가능한 객관과 중립의 차원은 어디 있을까?


“그때가 바로 과학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42)는 말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전달자)는 어려운 과학 이론과 최신 연구 동향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해주는 사람. 궤도는 지금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와 영향력을 구가하는 커뮤니케이터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만난 그는 어른이 과학 해야 할 이유를 쾌활하게 말했다.


“일반인이 과학 이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첫째, 우릴 대신해 세계의 법칙을 탐구할 과학자들을 응원해주는 분위기만 돼도 충분합니다. 둘째, 과학 지식보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해요. 그게 인생의 많은 고민을 덜어줄 겁니다.”

누적 조회 수 ‘3억’ 과학자

조선일보

궤도는 천문우주연구원 연구원 출신인 그가 자신의 세부전공인 '인공위성 궤도(orbit)'에서 따온 것이다. "저를 괴도로 아는 분들도 있는데, '과학의 지루함을 훔쳐내줄 의적 같은 괴도'로 해석돼도 좋겠다"고 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궤도는 연세대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국책연구소인 한국 천문연구원에서 일했다. 세부 전공인 인공위성 궤도(orbit)를 예명으로 정한 이 과학자는 EBS 특강부터 전국의 라이브 강연, ‘궤도의 과학 허세’ 등 책 저술, TV 예능·라디오 출연, 침대 광고까지 종횡무진 중이다. 


활동의 중심은 박사급 과학자들이 만든 구독자 130만명 과학 유튜브 ‘안될과학’. 6년간 2000여 개의 동영상 누적 조회 수가 3억2000만뷰를 넘는다. 학술 콘텐츠로선 경이로운 인기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1세대로 불리지요.


“라이브 방송을 15년 했어요. 학생 때부터 봉사하듯 강연하고 글도 썼으니 실제 활동은 20년쯤 됐죠. 국내 첫 전업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저일 겁니다.”


-스케줄이 빽빽하던데, 일과가 어떤가요.


“올해는 9월까지 일정이 차있어요. 종일 이동해요. 유튜브·방송 녹화 끝나면 밤 11~12시고, 새벽 1시부턴 최신 논문과 책을 보며 공부해요. 세 시간, 많으면 너덧 시간 잡니다.”


-콘텐츠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과학자들은 과학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건 다른 문제예요. 수학 난제인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15분짜리 동영상은 9개월 들여 제작했어요. 수식을 쓰지 않고 설명하는 방법을 연구해 팩트 체크 하느라 대본 쓰는 데만 8개월 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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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는 과학 유튜브를 하며 각종 '어록 밈'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한 장소에서 계속 출몰하는 귀신 '지박령'을 만났을 때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했느냐"고 물어 질리게 만들라는 것. 일명 '과학 퇴마'로 화제가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신박한 비유와 유머로 사람들을 휘어잡던데요.


“고민의 결과예요. 상대성 이론을 어디에 비유할지, 태양계로 어떻게 웃길지 온종일 고민해요. 유행어와 드라마, 스포츠, 게임, 베스트셀러 책을 섭렵해 대중의 언어를 익힙니다. 그걸 모르면 늘 똑같은 비유밖에 못 해요. ‘미스터트롯’을 보면서도 생존 경쟁과 진화론으로 설명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입담은 타고난 듯한데.


“어릴 때부터 과학을 너무 좋아해서 남에게 알려주고 싶어했어요. 중학교 동창들이 ‘얘 시험 기간에도 옆에 앉아 과학 원리 설명하더니 아직도 이러고 있네’ 하지요.(웃음)”

기초 과학은 대중이 먹여 살린다

-과학 유튜브인데 연예인·셀럽 섭외가 많더군요.


“익숙한 얼굴이 나오면 과학을 더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록밴드 루시의 ‘잠깨’ 속 숙면의 과학을 얘기하니 1020이 열광하고, 임영웅 노래 ‘온기’에서 태양과 혜성의 관계를 찾아내니 어머님 팬이 급증하는 식이죠. 윤하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 시공간 경계면(event horizon)에 대한 제 강의에 영감을 얻어 만든 이별 노래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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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가수 임영웅씨가 지난해 10월 과학 유튜브 '안될과학'의 궤도가 진행하는 코너를 찾아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궤도는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누구나 궁극적인 질문을 마음에 품고 있다"고 했다. /안될과학 유튜브

-과학 좋아하는 사람이 많군요.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원초적 호기심을 다루니까요. 중·고교 때 시험 성적에 좌절해 과학과 멀어졌어도, 종(種)과 지구에 대한 궁극적 질문은 멈출 수 없잖아요. 저는 사람들 마음속 그 질문을 끄집어냅니다.”


-끄집어내면?


“대중이 과학을 개그 소재로, 또는 영화나 와인 즐기듯 이야기하는 그 모든 행위와 분위기가 과학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환경을 만들어줘요. 자신들의 연구가 인류 생존에 직결된다는 걸 알리는 게 과학계로선 엄청 중요하거든요.”


-일반인이 ​‘양자 역학을 막연히 들어본 수준’도 의미가 있습니까?


“그럼요. 키워드만 알아도 그 분야를 응원하게 되고, 양자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죠.”


-과학 전 분야를 다루잖아요. 세부 연구자들이 오류를 지적해오는 일은 없나요?


“거의 없어요. 본인 논문이 재미있는 콘텐츠가 되고 학계 용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고마워하죠. 석학부터 신진 과학자, 외국의 한인 과학자들이 자기 연구를 소개해달라고 저희에게 연락하기도 합니다.”


-똑똑한 과학자들이 왜 대중과 소통을 갈망하나요?


“모든 연구비는 세금이니까요. 단기 성과를 낼 기술은 기업이 뛰어들겠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 연구, 순수 기초 과학은 국가가 맡을 수밖에 없어요.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과학에 돈을 쓰지 못합니다. 옛날 과학은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어요. 갈릴레이가 천동설을 뒤집는 지동설을 밝혀내도 귀족만 설득하면 됐어요. 오늘날 과학은 대중의 것이죠. 또 그래야 하고요.”

강대국의 힘, 깊고 오랜 과학 저변

-커뮤니케이터가 그 분야 체질을 바꾸는 경우가 있죠. 공무원 ‘충주맨’이 홍보로 관가를 움직인 것처럼요.


“영국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그걸 잘 보여줘요. 과학 커뮤니케이터란 말을 세계에서 처음 만든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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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학의 아버지이자 ‘세계 1호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마이클 패러데이는 1825년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일반 시민을 위한 물리·화학 강연을 선보였다. 이는 200년간 영국 과학계의 전통인 ‘크리스마스 강연’으로 자리잡았다. 패러데이는 오늘날까지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로 꼽힌다. /영국 왕립연구소

-패러데이 법칙(전자기 유도)의 패러데이요?


“맞아요. 1825년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당대 최고의 과학자가 일반 시민과 청소년을 모아놓고 물리와 화학을 마술쇼처럼 설명했죠. 패러데이가 양초 타는 원리를 설명한 강의는 그대로 화학 교과서가 됐어요. 이후 200년간 이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Christmas Lecture)’이 전통이 됐습니다. 그 왕립학회 강연장에 서본 적 있어요.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산업혁명을 먼저 이룬 나라는 과학 저변부터 다르군요.


“칼 세이건, 브라이언 콕스, 리처드 파인먼 등 세계적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대개 영국과 미국 출신입니다. 대중과 과학자의 교류가 활발한 나라들이죠. 유럽에선 수학자가 어디에 사는지 동네 사람이 다 알아요. 인도에서도 과학자 한 명 나오면 마을이 들썩이죠. 대중이 과학을 조금이라도 알면 힘든 길 가는 과학자를 존경하게 됩니다. 훌륭한 과학자를 계속 낳는 토양이죠.”


-한국은 어떻습니까.


“아직 마음 놓고 연구할 환경이 안 됩니다. 과학자가 되는 길부터 난관이 많아요.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연구원·교수 정도라 선택지가 좁죠. 기업에 가면 하고 싶은 연구는 하기 어렵고요. 기초 과학으론 부(富)는 고사하고 명예도 갖기 어렵죠.”


-존경심이 부족한가요?


“과학의 길을 택한 이들을 ‘똑똑할지는 몰라도 지혜롭진 못하네’라고 보는 시선이 있어요. 우리 과에 천재 형이 있었어요. 우주를 너무 사랑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제일 많이 들은 말이 ‘그 좋은 머리로 왜 천문학 같은 걸’이었대요.”


-과학 중에선 환금성 좋은 의학에만 몰리지요.


“학교 동기 상당수가 의전원으로 길을 돌렸어요. 생명을 다루는 의학에도 인재 필요해요. 그런데 의대에서 몰리는 과를 보면 생명과는 거리가 멀지요.”

먼바다를 바라보는 돌연변이들

“갈등과 공포로 혼란스러운가요? 과학이 당신을 구합니다”

천체물리학자의 길을 걷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된 궤도. 그는 “동료 과학자들의 열악한 연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대중을 감동시킬 컨텐츠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고 했다. 그가 우주 블랙홀을 시각화한 영상 앞에 선 모습.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천문학자의 길을 포기한 건 그런 한계에 부닥쳐서인가요?


“박사과정 밟으며 천문연구원에서 일하던 2012년, 러시아 화성 탐사선이 폭발해 추락했어요. 보름 밤새워 추락 궤도를 계산했더니 한반도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게 나왔어요. 다행히 제주도를 비켜가 태평양에 떨어졌죠. 그러고도 열악한 연구 환경에 변화가 없었어요. 100명이 해야 할 일을 여전히 10명 또는 두 명이 하고, 예산도 늘지 않았죠. 왜 우주 물체 감시 기술을 독자화해야 하는지도 이해 못 하고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천문학자들의 혜성 충돌 경고에도 정치 싸움만 하다 지구가 멸망하는 내용)’ 같은 얘기군요.


“고민이 커졌어요. 청와대 과학기술 자문위원도 했지만 혼자 힘으론 바꿀 수 있는 게 없더군요. 나라 전체를 청소하고 싶지만, 내 집 앞부터 쓸어보기로 했어요. 대중을 감동시킬 과학 콘텐츠를 직접 만들자고요.”


-얼마나 깨끗해졌나요?


“열심히 청소했더니 마을은 깨끗해진 것 같아요. 10년 전만 해도 과학 기사에 댓글이 안 달렸어요. 지금은 네티즌이 이런저런 의견도 달고 나름 토론도 이뤄집니다. 큰 변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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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5월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자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우주 연구와 개발은 국민적 합의와 응원이 필요한 대표적인 과학 기술 분야다. 궤도는 "순수 기초 과학은 대중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뉴스1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에 성공해 7대 우주 강국이 됐지요.


“그런데 그걸 600명이 한 게 문제예요. 일본은 발사체 하나에 3000명, 미국과 러시아는 2만명이 달라붙습니다. 우린 턱없이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도 어떻게든 해내니 ‘더 안 줘도 되겠네, 그대로 계속 해’ 이럽니다. 그 연구 가성비가 과학자들 생명을 갉아먹어요. 2023년 5월 3차 발사 때 첫날 실패했잖아요. 우리 연구자들이 밤새워 문제 해결해 다음 날 다시 쏘는 거 보고 너무 놀랐어요. 그럴 땐 국민이 말려야 해요.”


-과학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닷가에 모래성 쌓고 먹이 모으는 개미 무리가 있습니다. 그중 눈앞의 모래성엔 관심 없이 먼바다만 바라보는 돌연변이가 있어요. 그 개미가 어느 날 멀리서 몰려오는 거대한 쓰나미를 발견해 알려요. 그게 과학자예요. 물리학자가 전자의 행동을 왜 공부할까요? 이게 나중에 기가 막힌 문제를 해결해요. 과학은 인류에게 닥친 극단적인 상황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과학자에게 나쁜 질문은 없다

-대중의 질문을 많이 받지요. 황당한 질문도 있나요?


“아뇨.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어요. 불친절한 답변이 있을 뿐이죠. 오히려 제가 답하면서 배워요. 그런데 많은 분이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걸 묻는 내가 멍청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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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가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대학 강당에서 시민·대학생을 대상으로 과학 강연하는 모습.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은 어린이 과학 시장만 포화 상태다. 이제 어른들이 더 편하고 쉽게 과학을 접하고 누리는 문화가 돼야 한다"고 했다. /숭실대 제공

-그럼 묻겠습니다. 온난화가 정말 인간의 잘못 때문인가요? 지구 역사에선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잖아요.


“인간의 잘못 맞아요. 지구 온도 데이터가 계속 바뀌는 건 사실인데, 산업화 직전과 이후 패턴이 확연히 다르니까요.”


-우리가 쓰레기 분리배출 하고 플라스틱 안 쓰고 비행기 안 타면 기후변화 막을 수 있습니까?


“큰 의미 없어요. 그런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요. 그거라도 해야 합니다. 결국 과학자들이 해결할 문제죠.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든가, 신재생 에너지원을 만들어 석유를 대체하든가. 풍력발전? 우리 땅에선 안 돼요. 일단 원전을 안전하게 이용하는 게 답이죠.”


-AI가 고도로 발달한 미래는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중 어느 쪽일까요?


“인공지능 자체는 악의가 없습니다. ‘미키17’ 같은 영화는 인간을 비윤리적으로 활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어요. AI를 둘러싼 상반된 상상은 사실 같은 맥락에 있어요. 나쁜 미래가 오면 안 된다, 좋은 미래를 만들자는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죠.”

“갈등과 공포로 혼란스러운가요? 과학이 당신을 구합니다”

궤도는 "선진 강대국에선 과학과 대중의 거리가 가까워 과학 저변이 매우 넓다"며 "반면 한국에선 과학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그 좋은 머리로 왜?'라고 보는 시선이 있다"고 말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요즘 유행하는 ‘저속 노화’ 식사법은 과학적입니까?


“활성산소 파괴하는 항산화가 핵심이지요. 좋은 식재료로 소식하라는 건데, 그게 질환의 치료법은 아닙니다. 문제가 생기면 전문의와 상의해야죠. 지속하기 어려운 식사법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정도라면, 가끔 ‘고속 노화의 쾌락’을 누려도 괜찮다고 봐요.”


-화성은 지금 탐사조차 어려운데, 인류가 이주할 가능성이 있나요?


“언젠가는 성공할 거예요. 지구가 완전히 황폐해졌을 때 최후의 카드가 될 수 있죠. 연구의 쓸모는 당대에 알기 힘듭니다. 다만 일론 머스크 같은 개인이 생전에 이루려는 야망이 너무 크면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늘 의심하라, 또 실패하라

-가짜 뉴스나 음모론, 돈벌이가 과학의 옷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사 과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MBTI는 대표적인 유사 과학이지만 재미는 있지요. 게르마늄 팔찌나 옥매트? 부모님이 원하시면 사드리는 게 과학이고 효도예요. 그 정도의 의미도 없는데 과대 해석하면 돈도 건강도 잃습니다. 과학을 아무 데나 부정적으로 갖다 붙이는 것도 문제예요. ‘관상은 과학이다’ 같은 말은 편중된 경험을 빅데이터로 포장해 혐오와 선입견을 퍼뜨리잖아요.”


-‘동물도 먹고살기 힘들면 새끼 안 낳는다. 저출산은 똑똑한 선택’이란 동물학자의 말이 젊은 층에 확 퍼진 적 있어요.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대중의 고민에 답을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과학적 사고방식, 명확한 인과 관계를 가르쳐야죠. 정답 같아 보여도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합리적으로 검증하세요.”

“갈등과 공포로 혼란스러운가요? 과학이 당신을 구합니다”

궤도가 지난 4일 자신이 출연하는 융합 콘서트가 열린 서울 강서구 마곡 LG 아트센터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배경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대화와 교류의 장을 열기 위해 설계한 타원형의 ‘튜브’라는 공간이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과학적 사고는 어떻게 합니까.


“과학은 실패를 위한 학문입니다. 훌륭한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믿지 않아요. 과학의 기반은 신념이 아닌 사실이니까요. 과학자들은 셀 수 없이 틀려왔고, 틀린 가설들을 통해 인류는 진리로 나아갑니다. 계속 의심하고 실패하면서 진실을 찾는 태도가 바로 과학이에요.”


-의견 대립과 갈등이 팽배한 지금, 과학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과학의 쓸모가 그겁니다. 근거 없는 공포와 상처, 고통을 보듬고 넘어서게 하지요. 아무리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도, 정교한 과학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겁니다.”


정시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