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죽음은 납득되어야 한다" 응급실의 기록자, 의사 남궁인
"납득을 하느냐 못하느냐, 죽음의 질은 천지 차이"
"많이 아파요?" "괜찮아요?" 타인의 죽음 잊지 않으려 매일 밤 기록
"응급실 의사, 안 맞아본 사람 없어… 폭력에 강력한 처벌 있어야"
"입을 열어 처음으로 사망 선고를 했다. "2시간 23분, 저희가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돌아가셨습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 그는 아직 산 사람이었으나 내가 입을 열어 죽음을 말하는 순간 죽은 사람이 되었다… 사망선고를 내뱉고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폐가 슬픔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냉철하게 확률을 계산하고 슬픔도 제법 잘 참는 평범한 의사가 되었다." -남궁인 의학 에세이 ‘지독한 하루' 중에서.
남궁인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현재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 및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있다. 응급실에서 보고 겪은 매일의 비극을 참회하듯 기록한 의학 에세이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사진=이태경 기자 |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의학 드라마 ‘라이프’는 그 생동하는 제목과는 달리 삶보다는 죽음이 더 많이 등장한다. 매번 피범벅이 된 환자들을 맞는 매력적인 응급실 의사 이동욱은, 핏물이 다 빠진 뱀파이어같은 창백한 얼굴로 환자들을 돌보지만 죽음은 늘 어처구니없이 삶을 덮친다.
웃음기 가신 얼굴로 그는 독백한다. ‘왜 이 길을 택했느냐…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생명을 외면할 용기가 없어서.'
사이렌과 호출기가 도시의 심장처럼 요동치는 응급실. 24시간 불이 켜진 생사의 정거장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가르릉거리는 소년부터 벼락에 맞아 내장이 타버린 노인까지… 환자들은 저마다의 크고 작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절박한 목소리로 의사를 찾는다. 그중 일부는 이미 숨이 멎은 채로 오며, 일부는 의사의 악력으로 정지됐던 심장이 되살아난다.
드라마 ‘라이프' 속 주인공과 비슷한 삶을 사는 한 청년 의사가 있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나날의 사투를 기록한 에세이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로 유명한 글쓰는 의사 남궁인. 아침부터 밤까지 불타고, 부서지고, 터지고, 짓이겨진 육체를 치료하는 현실의 응급실 의사이자 동시에 매일 밤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들의 사고와 부고를 무정하리만치 사실적인 묘사와 에누리 없는 참회의 언어로 기록한 작가. 자칭 죽음의 전문가.
어린 시절 소방관이 꿈이었던 그는 고성과 고통이 고여 아비규환인 응급실이 싫지 않다고 했다. 전쟁터의 지휘자로, 그 한계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이 좋았다고.
폭염이 마지막 기염을 토하던 9월의 청명한 오후, 해방촌의 언덕 카페에서 남궁인을 만났다. 삶이 즐겁지도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담담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왜 아파했고 어떻게 죽는지, 그걸 아는 죽음과 모르는 죽음은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항상 제가 치료했던 환자의 시체 앞에 혼자 남아 죽음을 복기합니다. 나 자신도 납득이 되도록.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가족에게도 그 과정은 꼭 필요하지요."
사방으로 터지는 슬픔의 물길은 막을 수는 없어도, 그 슬픔이 정돈되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고. 납득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본인과 가족이 느끼는 죽음의 질은 천지 차이라고. 의사로서 잡은 메스가 날카로워질수록, 녹슨 칼처럼 마음이 슬픔에 둔탁해질수록, 그 무엇도 잊지 않기 위해 고통과 죽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남궁인이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삶과 죽음과 고통으로 아비규환인 응급실 현장은 지옥이 따로 없더군요. 매일 밤 전쟁터로 향하는 야전사령관의 기분일 듯합니다.
"출근하자마자 아래위 남색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맨발에 크록스를 신습니다(웃음). 양말은 피가 튀어서 못 신어요. 늘 피를 뒤집어쓰고 살지요."
예기치 않은 불행 앞에 지독하게 저항하는 인간의 간절함을 담은 에세이 ‘지독한 하루'. |
-그 와중에도 응급실에서 맞이한 죽음을 글로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더군요. 좀 거창하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처럼… 그렇게 그날의 고통을, 비극을, 죽음을 기록하는 이유는 뭔가요?
"하룻밤에 제가 받는 환자가 230명 정도가 넘어요. 하루에도 4~5명의 죽음을 선언하지요. 당시엔 순간순간이 절박하지만 한 달만 지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히지요. 잊지 않기 위해서 씁니다."
-전신에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상 환자, 두 다리가 잘린 노인, 온몸이 부서져서 죽은 갓난아기… 실은 하루빨리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니던가요?
"수많은 죽음을 상대하다 보면 타인의 죽음과 고통에 둔감해지기 쉽지요. 의사로서 저는 타인의 고통을 망각하고 싶지 않아요."
"고통받는 인간의 떨림으로 침대 바퀴는 삐걱거렸다... 그의 눈물샘이 덜 탔는지 눈물이 그의 타버린 눈동자에서 흘러내려 엉망진창인 물웅덩이에 섞였다…의료진의 손바닥은 그의 살점과 그을음으로 뒤죽박죽이었다. 사지의 붕대는 흐트러져 함부로 다뤄진 미라 같았다." -’지독한 하루' 중에서
-책을 보면 숨만 붙은 채로 신음하는 환자들에게도 항상 "많이 아파요?" "괜찮아요?"라고 묻더군요. 가장 멍청한 말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면서도 말이죠. 의사로서 환자의 고통을 짐작한다는 게 가능합니까?
"실은 고통을 짐작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그 고통을 안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듭니다. 얼마 전엔 119대원이 뜨끈뜨끈한 팔을 검은 봉지에 담아왔어요. 환자는 팔이 잘린 채 허공을 휘젓고 있더군요. 우리는 생채기만 나도 아픈데, 팔다리가 잘리면 얼마나 아플까… 그분들이 공통으로 하는 얘기다 ‘저리다'예요. 교과서엔 신경절이 끊어지면 피가 안 통해 저린 느낌이 든다고 쓰여있죠.
오토바이를 타다 트럭에 부딪혀 두 다리가 완전히 거꾸로 돌아간 청년도 왔어요. 너무 아프니 건드리지 말라고 소릴 질렀지만, 진통제를 주면서 다리를 뽑아 맞췄어요. 가스가 폭발해서 숯처럼 타서 온 환자의 고통엔 공감을 안 하는 편이 치료에 더 낫기도 해요. 하지만 항상 물어요. "많이 아파요?" 그래야 진료를 시작할 수가 있으니까요.
안타까운 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죽을 것 같은데 ‘참을 만하다'고 할 때가 많아요. 자식들한테 걱정 끼칠까 봐 치료의 때를 놓치고 돌아가시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의학드라마 ‘라이프'. 이동욱이 응급실 의사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
-단도직입으로 묻지요. 사람은 언제 죽습니까?
"생명을 되돌리지 못할 때 죽지요. 궁극적으로 심장이 멈추면 죽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5가지 쇼크로 죽습니다. 순환성, 신경성, 저혈량성, 아나필락시스(면역 전신 반응), 감염 쇼크. 심장이 멎으면 의사는 환자의 쇼크가 무엇이고 돌이킬 수 있는지를 파악해요.
머리가 부서지면 신경성 쇼크이고 되돌릴 수 없어요. 팔다리가 전부 끊어지면 저혈량성, 심장마비는 순환성… 이런 쇼크는 상황에 따라 생명을 되돌릴 수 있어요. 이 요소들의 연관성을 동시에 파악해서 죽음을 돌이키거나 혹은 선언합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죽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혜안을 얻게 됐군요.
"인체는 컴퓨터 회로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간이나 신장이 깨진 정도,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살지 죽을지 공식처럼 답이 나옵니다."
-최근 방영 중인 의학 드라마 ‘라이프’를 보면 소아과와 응급의학과가 병원 매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방출 1순위더군요. 실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비슷해요. 소아과와 응급의학과는 거의 다 보험 환자인데, 병원에서 보험 환자는 무조건 적자예요. 대학병원의 소아과와 신생아 중환자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면 돼요. 응급실도 병원 입장에서는 닫는 게 이득이죠.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영상의학과부터 각종 검사실, 의사, 청소부까지 유지 비용이 높아 환자를 받을수록 적자가 생기는 구조예요. 실제로 지방 병원은 닫기도 하고요."
-아! 응급실이 문을 닫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죠. 사람들의 생명과 삶의 질에 연관이 크니까요. 그런 상황에도 많은 분이 응급실이 도떼기시장 같고 불친절하다고 하세요. 저도 동감해요. 호텔, 레스토랑, 미용실 서비스에 익숙해지신 분들께 의료 서비스는 갈 길이 멀죠. 하지만 수가 보호가 안 되고 있어 어려움이 큽니다. 정책적으로 지원이 절실해요."
-반대로 피부과 성형외과는 비보험 매출로 점점 더 부자 병원이 되고 있더군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법도 합니다만.
"그 병원들은 투자 가치가 있으니까요. 한국의 피부과 성형외과가 전 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죠. 피부과 친구들을 보면 자체 화장품을 출시해서 외제 자동차에 고급시계를 차고 다니더군요(웃음)."
-‘럭셔리 닥터’들이 부럽지 않습니까?
"어차피 저는 돈을 많이 줘도 못씁니다(웃음). 저는 8년 된 쏘나타를 타고 다녀요. 대학 때 차던 시계를 여전히 차고 있고요. 제 소유로 비싼 게 있으면 부담이 돼요. 돈 잘 버는 의사들의 재력이 부럽진 않습니다. 그 생활을 감당하는 것도 그분들의 멘탈이거든요."
-당신은 더 강한 멘탈의 소유자로 보입니다만.
"그건 제 멘탈이 강해서가 아니고… 직업적으로 당연히 맞닥뜨려할 상황일 뿐입니다."
그가 의사 면허를 받고 한 첫 시술은 방금 사망한 할머니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두피를 드러내고 죽은 이 노인이 의사로서 보는 첫 환자였다. 두피 봉합을 마치고 환자의 동맥관과 정맥관을 뽑았다. 환자는 저승과 완전히 연결되었다. 이것이 내가 면허를 받고 한 첫 의술이었다." -’만약은 없다' 중에서.
-최근엔 할머니의 시신 앞에서 담담하게 사랑 고백을 하던 할아버지에 관해 쓴 글을 보고 울었습니다. ‘평생을 함께해서 행운이었고, 좋은 곳이라 하니 먼저 가 있으라’고. 생사를 건넌 노년의 사랑도 이토록 깊고 절절한 것이구나... 가슴에 남았습니다.
"할머니는 뇌 병변으로 오래 앓아누웠고 콧줄로 밥을 먹으며 버티셨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 누워만 있었어도 배우자에겐 존재 이유였던 거죠. 할아버지들은 오래 돌본 아내가 죽으면 따라가고 싶다고 격정을 토로하세요. 노년이 되면 사랑과 슬픔도 엷어지리라 짐작하지만, 아니에요. 사람들이 왜 그걸 모를까요?"
-라이프(life)의 반대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데쓰(death)겠죠."
-뭔가 다른 대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고통이나 무기력 같은.
"제 일이 삶 아니면 죽음을 다뤄요. 다른 대답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너무 많이 봤죠. 죽음을."
-죽음을 시도한 적이 많았고 죽음에 대해 알고자 응급의학과를 지원했다고 알고 있어요. 사실인가요?
"네. 수많은 문학과 예술작품에서 본 죽음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했어요. 저는 현장에서 죽음에 처한 사람을 받고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타인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망자의 죽음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죠. 피부과 의사는 죽음을 선언할 일이 많지 않아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저는 그런 일을 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가족들에게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는 거지요?
"네, 죽음을 앞둔 환자를 포함해서요. 왜 아파하다 죽는지, 그걸 아는 죽음과 모르는 죽음은 확연히 다릅니다. 대체로 ‘돌아가셨습니다'라는 간단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항상 제가 치료했던 환자의 시체 앞에 혼자 남아 죽음을 복기합니다. 나 자신도 납득이 되도록. 유가족들에겐 ‘어머니는 이러이러해서 돌아가셨으니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죠."
-죄책감이 어떤 식으로 감해집니까?
"유가족들은 ‘이렇게 하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잘못해서 죽음을 앞당긴 게 아닐까?’ 그런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들에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드려요. 얼마 전엔 동료가 모는 청소차에 깔린 환경미화원이 왔어요. 이미 차가 배 위를 누르고 지나간 상태라 장기가 다 뭉개져 숨만 붙은 채로 왔는데, 신음하면서 그러세요. "내가 차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어요. 내 잘못이에요" "아저씨, 아저씨 잘못 아니에요. 버텨요." 사력을 다했지만, 심장이 멎었어요. (한숨을 깊게 쉬며)그럴 땐 막 욕이 나옵니다."
-왜죠?
"새벽에 쓰레기 치우다 쓰레기 차에 깔려 돌아가셨어요.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던 선량한 분이. 죽음에 선악을 판단할 순 없지만, ‘이분이 무슨 죄가 있어서 죽어야 하나'... 그런데도 돌아가시면서도 ‘내 잘못이다' 자책을 하세요. 너무나 분했어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죽음이었어요. 그분을 친 동료 청소부는 또 그 마음이 어땠겠어요."
"내가 가장 친한 친구를 죽였다"고, 따라 죽겠다고 구슬프게 우는 운전사에게 그는 말했다. "돌아가신 분께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어요. 다 자기 잘못이라고." 슬픔을 통제할 순 없지만, 그 슬픔에 질서를 잡아주는 일,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의사 남궁인은 하고 있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날의 일을 기록하며 ‘의사 한 사람의 인생은 백 사람의 인생과 마찬가지다. 그걸 견뎌내지 못하면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문장을 채워 넣었다.
-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쓴다고 했는지 알 것 같군요.
"돌이켜서 계속 생각을 해요. 그러면 당시엔 공감할 수 없었던 고통이, 상황이 점점 공감되는 거예요. 불에 탄 사람, 팔이 잘린 사람, 추락사한 아이… 아! 얼마나 아팠을까."
-환자의 통증은 개별적인데 처방과 치료는 보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그 고통의 거리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썼지요.
"김훈 작가는 잔혹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특화된 문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다루는 전달자로서 문장과 조사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그 기록은 자신을 위해서인가요? 타인을 위해서인가요?
"시작은 나를 위해서였지만, 끝은 타인을 위한 기록이고자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서 멀어지지 않는, 정의로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비극의 현장엔 격렬한 교훈이 있지요. 역사적으로 탁월한 저널리스트들이 그 일을 했습니다. 조지 오웰이 대표적이죠.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라는 르포에서는 그 자신, 파리의 무료 빈민 병원에 입원해서 무방비 상태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냉정하게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조지 오웰의 르포를 많이 읽었어요. 전쟁터와 병원 그리고 밑바닥 생활을 통해 놀라운 글을 써냈지요."
-글 쓰는 의사로 존경을 받는 아툴 가완디는 어떤가요?
"놀라운 분이지요. ‘어떻게 일할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아주 잘 봤습니다. 의사이자 존경받는 작가로는 ‘의식의 강'이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올리버 색스도 있습니다. 신경과 의사는 학문적으로도 병원 내부에서도 가장 똑똑합니다(웃음).
프로이트도 빼놓을 수 없지요. 아툴 가완디가 놀라운 건 내부자인데도 의료 현장의 문제를 집요하게 접근한다는 거죠. 외부자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들여다보지만, 내부자의 시선도 공평하게 수용합니다. 무엇보다 외부자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의료 현장을 쉽게 그리고 문학적으로 쓴다는 거죠. 저는 그 점이 부럽습니다."
-얼마 전 폭염이 몰아칠 땐 ‘열사병'에 대해 목소리를 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바깥에서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했지요?
"그 뒤로 ‘열사병의 열사'라는 별명이 생겼어요(웃음). 반향이 꽤 크더군요. 지난여름 열사병 환자들이 전쟁부상병처럼 응급실에 줄을 이어 몰려왔습니다. 폭염이 당장 대책은 없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고통을 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는 사회적 이슈가 된 응급실 폭력과 119대원들의 눈물겨운 희생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폭력배에게 안면을 강타당하면서도 끝까지 중심정맥관을 놓지 않고 처치하던 장면을 책에서 읽었어요.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한숨을 쉬며)응급실 폭행은 너무 흔한 일입니다. 제 동료 중 안 맞아본 사람이 없어요. 심각한 건 경찰도 특수 상황이라고 범인을 안 잡아가요. 그들은 무법자예요. 의료진은 불안에 떨고 때린 사람은 오히려 태연하게 돌아다녀요. 강력한 처벌과 함께 사회적으로 의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응급실 의사를 때리는 건 중범죄예요. 공중의 생명을 다루는 응급실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응급의학과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과로 꼽힌다. 밤을 새우는 과중한 업무 강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건 응급실에서 사회의 치기 어린 난동이나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119구조대 소속 의사로도 일했는데, 거기 상황도 마찬가지인가요?
"다르지 않아요. 엄청 많이 맞아요. 위험을 무릅쓰고 숭고한 일을 해내는 분들인데…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저는 압니다."
비 오는 날, 북한산 정상에서 벼락을 맞은 여성을 심폐소생술을 유지하며 들고 온 대원들도 있었다. 오로지 ‘살아있으라’는 일방향의 신념으로. 누구도 못 건드리는 부패한 시체를 처리하는 일도 그들의 몫. 소방관의 40%는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손톱이 부러지거나 현관문이 잠겨도 119에 신고한다.
-이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단호하게)없습니다."
-매주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삽니까?
"24시간 일하고 2~3일 정도 쉽니다. 제겐 하루가 3일 치 노동이니, 지속 가능한 정도입니다.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까지가 가장 바빠요. 퇴근 후엔 해방촌 언덕에 있는 집에 돌아와 혼자 글을 씁니다."
-위안과 공포. 보통 사람들이 응급실을 훔쳐보고 드는 두 가지 감정입니다. ‘적어도 나는 괜찮다’와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두려울 때는 없었습니까?
"신체 훼손이 심한 환자나 시체를 보는 것도 두렵진 않습니다. 어제도 출근하자마자 뇌가 다 흩어진 시체의 포를 걷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는걸요. 폭력범이나 살인범을 봐도 두렵진 않아요. 딱 한사람 아동학대범은 무서웠어요. 2개월 지난 아기의 온몸이 비참하게 부서져서 왔어요. 아기를 어떻게 때렸는지 다 아는데, 죄책감이 전혀 없는 모습에 소름이 돋더군요."
-이해할 수 없는 죽음도 있었겠지요?
"자살 환자를 살려 보냈더니 2시간 만에 다시 추락사해서 돌아왔어요. 말기 암 환자가 병원에 오다가 교통사고를 내서 젊은 여성을 즉사시키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충격을 받지만 드문 일은 아닙니다."
-어떤 환자들의 경우는 살아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것보다 죽음에 이르도록 자연스럽게 놓아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무조건 살린다.'가 정답입니까?
"제 직업상 ‘살린다'라는 일방향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건강한 여생이 남아있다면 모르지만, 극한 화상이나 식물인간으로 힘든 여정만 남았다면 다른 선택도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본인과 가족에겐 ‘살리는 것’보다 ‘편안한 죽음'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가감 없이 상황을 말해서 선택할 기회를 줘야지' 이런 생각들. 노년의 의사들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쿨하게 덮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삶과 죽음의 여러 정황을 보며 저도 나이가 든 거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무엇인가요?
"살아생전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이나 추억을 못 잊어 주위 사람들이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그런 죽음이죠. 제가 바라는 죽음입니다."
-물리적으로 평안한 죽음은 무엇입니까?
"건강히 오래 살다가 수면 중에 돌아가시는 거죠. 얼마 전에 그런 분이 있었어요. 90세이신데 약간의 치매 말고는 병이 없으셨어요. 병원에 와서 서서히 밥숟가락을 놓으셨는데 억지로 드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곤히 주무시다 아드님 한번 보고 자는 모습 그대로 숨만 놓으셨어요. 괴로운 표정이 전혀 없었고 오직 평온했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복된 죽음이군요.
"정확히 모두가 원하는 그런 방식으로 저세상으로 가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암이나 중증 치매, 뇌졸중으로 갑자기 가시면 표정이 평온하지 않아요. 자신의 죽음을 납득하기 힘든 거죠."
사망 선고는 이 사람이 절대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 때 내릴 수 있다. 반드시 가능성이 0%여야 한다. 그렇게 모든 미련을 버리고 확신이 들면 의사는 모든 노력을 멈추고 사망선고를 한다./사진=이태경 기자 |
-문득 궁금하군요. 응급실에서 환자들이 의사에게 가장 바라는 건 뭡니까?
"하하하. 100% 자기를 빨리 봐주는 겁니다. 1/3 이상이 "내 차례는 언제냐?"라고 묻거든요. 전적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응급실에 접수할 때 위급성에 따라 순서가 정해집니다. 1점에서 5점까지. 죽기 직전이면 1점이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상황이면 2점, 지금 보지 않아도 위급하지 않다면 5점이 되겠지요(웃음)."
-10년 가까이 응급의학 전문의로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
"말씀드렸듯이 죽었을 때 저 고유의 무엇으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안타까워하고 살았을 때의 저를 떠올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부하건대 저는 죽음에 대해선 전문가입니다. 죽는 순간 의식이 있다면, 내가 왜 어떻게 죽는가 납득할 겁니다. 납득을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죽음의 질은 천지 차이입니다. 납득을 했다면 편안히 떠날 수 있겠지요."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