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다치고, 욕먹으며 일군 기적… 그들은 산타처럼 ‘보이지 않는 영웅’
[아무튼, 주말] [이혜운 기자의 살롱] 월드컵 16강 이끈 ‘벤투호’ 좌우 풀백
카타르서 빛난 수비수 김진수·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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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 28일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戰). 경기는 후반 15분 3초, 2대 1로 지고 있었다. 그때 손흥민 선수가 패스한 공을 한 선수가 미친 듯이 따라가 골라인 넘기 직전 크로스로 올린다. 그 공은 조규성 선수의 헤딩으로 골문을 흔든다. 상황을 동점으로 만든 ‘택배 크로스’. 김진수(30) 선수다.
#2. 지난 3일 포르투갈전. 1대1 상황에서 후반 추가 시간이 주어졌다. 포르투갈이 코너킥으로 띄운 공을 한 선수가 머리로 걷어내고, 그 공을 손흥민 선수가 따내 질주한다. 상대 수비수 다리 사이로 패스한 공을 황희찬 선수가 받아 역전골을 터뜨린다. 대한민국을 16강으로 이끈 그 골의 시작은 김문환(27) 선수였다.
9%. 미국 통계 전문 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는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그런 분석 따윈 개의치 않고, 12년 만에 16강 진출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 뒤엔 묵묵히 상대팀 공격수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미친 듯이 질주해 우리 팀의 공격 기회를 만들어낸 두 풀백, 왼쪽의 김진수와 오른쪽의 김문환이 있었다.
흔히 현대 축구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풀백’(측면 수비수)이라고 말한다. 특히 빌드업 축구를 구사하는 벤투 감독에게 풀백은 핵심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꺼리는 자리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빛은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수비수지만 준수한 공격력과 민첩성, 활동량, 체력, 스피드, 정확한 크로스 능력에 높은 축구 지능까지 갖춘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체력 부담도 크고 부상 위험도 크다. 두 선수는 4경기 다 선발로 출전했고, 김문환 선수는 전 경기 풀타임을 뛰었다. 16강의 ‘언성 히어로(unsung hero·보이지 않는 영웅)’인 두 선수를 귀국 직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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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영웅
-두 사람 다 첫 월드컵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김진수(이하 진) : “우루과이전이다. 난 월드컵을 엄청 오래 기다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모두 최종 명단에 들고도 부상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염원하던 월드컵이었기에, 첫 경기 시작 전 애국가를 부를 때 가장 뭉클했다.”
김문환(이하 문) : “포르투갈전 끝나고 16강 진출을 확정했을 때. 그때 우루과이 경기가 끝나길 기다리는데 5분이 그렇게 안 간 적은 처음이었다.”
진 : “그때 (손)흥민이가 우리보고 흥분하지 말라고 하고는 제일 먼저 울었다. (웃음)”
-16강을 예상했나?
진 : “주변에서 우리보고 약체라고 했지만,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 : “포르투갈전에서 지고 있을 때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4년이라는 긴 계획 속에서 우리는 감독님을 믿었고 선수들도 믿었다.”
-브라질전은 많이 아쉬웠다.
문 : “16강전을 준비하면서 브라질 연구도 많이 했고, ‘원 팀’이 됐다는 느낌에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낙 세계적인 선수들이라 사소한 실수가 바로 실점으로 연결됐다. 초반에 많이 무너진 것이 아쉬웠다.”
진 :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런 거로 핑계를 대고 싶지 않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못해 아쉽지만, 가진 체력을 다 써 후회가 남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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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 선수가 네이마르 선수를 상대로 일명 알까기(다리 사이로 공 빼내기)를 하고, 비니시우스 선수와 유니폼을 바꾼 건 해외 언론에서도 화제였다.
문 : “네이마르 상대한 일은 친구들이 우연 아니냐고 하던데, 의도한 거 맞는다.(웃음) 비니시우스 선수는 내가 (백)승호에게 통역을 부탁해 먼저 유니폼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원래 다른 선수 유니폼 욕심이 없는 편인데, 그 선수가 정말 잘하기도 했고, 교체돼 나가기 전에 나 보고 하이파이브 하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그렇게 스킨십 하고 나니 유니폼을 받고 싶어졌다.”
-가장 위협적이었던 공격수는?
진 : “우루과이 8번 선수(파쿤도 펠리스트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거기서는 거의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라고 흥민이한테 들었는데, 상대하는 순간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 수준이 이 정도라고?’ 하며 놀랐다.”
문 : “가나의 9번 선수(조르당 아유). 신체부터가 많이 버거웠다. 공을 뺏으려고 해도 몸으로 막으니까.”
-이렇게 막아도 한 실점으로 욕먹는 자리가 수비수다.
진 : “수비수는 잘해야 본전이다. 잘하는 건 티가 안 나고, 못하는 건 바로 티가 난다. 실점하는 순간 수비수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가장 욕을 먹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문 : “주목받지 못하는 건 수비수들의 숙명이다. 난 성격이 주목받는 걸 안 좋아해 다행이지만(웃음).”
-언제 제일 속상한가.
진 : “내가 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
-욕을 많이 먹을 때는?
진 : “내 실력에 대한 비판은 그분들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족을 건드리거나, 선을 넘는 말은 자제해주셨으면 한다. 나라를 대표해 나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수용하지만, 내 모든 노력이 무시당하고 실수한 것만으로 욕먹다 보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두 선수는 벤투 감독의 황태자로도 꼽힌다. 벤투 감독은 지난달 10일 기자 간담회에서 “(축구협회가) 선수들의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두 선수를 혹사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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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은 어떤 분인가.
진 : “상당히 무뚝뚝할 줄 알았는데, 운동장 안팎의 모습이 달랐다. 안에선 정말 불같을 때도 있지만, 밖에선 아버지처럼 이야기도 들어주고, 장난도 먼저 친다. 선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실수 한 번에 외면하지 않고 기회를 준다. 확고한 철학과 소신이 있어 외부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문 : “카리스마도 있고, 멋있고, 나이스하고.”
-가나전 끝나고 심판에게 항의하려고 뛰어 들어온 것이 김영권 선수 대신 퇴장당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더라.
진 : “경기장에서는 상황을 잘 몰랐다. 감독님이 갑자기 흥분해 뛰어 들어오길래. 나중에 보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더라. 떠나실 때 ‘지금까지 만난 선수 중 여기 있는 선수들이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하실 때 다 울었다.”
문 : “퇴장당한 상황에 대해 감독님은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감정적일 때가 있다. 난 선수들을 믿고, 코칭 스태프를 믿는다. 다음 경기엔 내가 벤치에 없지만, 항상 너희와 뛰고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선수들끼리 더 믿음이 생기고, 동기부여도 더 확실해졌다.”
-주장으로서 손흥민은 어땠나?
진 : “흥민이와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났다. 내가 흥민이의 맨투맨 마크(전담 수비수)였다. 그때도 흥민이는 정말 빨랐다. 열다섯 살 청소년 대표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친구가 됐다. 독일에도 같이 있었고. 내가 다쳐 월드컵에서 뛰지 못할 때도 아무 말 않고 안아주던 친구다. 한 나라의 대표팀 주장이 가지는 책임감이 어느 정도인지 난 가늠할 수 없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게 내 눈에도, 모든 선수 눈에도 보였다.”
문 : “흥민이 형이 부상에도 뛰어준 것에 너무 감사한다. 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선수들에게 너무도 큰 차이였다.”
-김민재, 황희찬 등 부상 선수가 많았다.
진 : “민재가 종아리 근육 부상이었는데 통증도 있었다. 그러나 민재도 4년 전 월드컵에 다쳐서 못 나간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아프지만 어떻게든 팀을 위해 뛰려고 했다.”
문 : “둘 다 경기를 정말 뛰고 싶어 했기에 쉬는 시간에도 항상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
-대표팀 분위기가 과거보다 더 좋아졌다는 말도 있다. 후배인 김민재 선수가 손흥민 선수에게 소리 지르는 영상이나, 김진수 선수와 후배 조규성 선수가 장난치는 영상이 화제였다.
진 : “내가 대표팀 막내이던 10년 전, 그때도 형들은 편하게 대해줬지만, 어린 사람들이 다가가기에는 조금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금은 나부터라도 먼저 후배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끈끈한 감정들, 팀워크가 생겼다. 민재 같은 후배들이 밤에 고민을 상담하러 방에 찾아오기도 한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프리킥도 자기가 차겠다고 어필하는 시대라던데?
진 : “과거엔 감독님이 정해주는 대로 차야 했다면, 지금은 그날 감이 좋은 선수들이 ‘한번 차보겠다’고 어필한다.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고, 난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을 포함해 대표팀 6명이 전북 현대 소속이다.
진 : “같은 팀 선수들이라 잘 맞았던 점도 있다. 규성이는 키가 크고 체공 시간이 길어 크로스를 높게 띄워 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가나전에서도 규성이한테 맞게 크로스를 올렸다.”
문 : “우리 팀에서 월드컵 멤버가 많이 나와 자랑스러웠다. 모든 선수가 다 뛰었으면 좋았을 텐데, (송)민규가 뛰지 못해 마음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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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 3기 김진수
“내 꿈은 월드컵에 나가는 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진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공수를 오가는 플레이. 용인 포곡초 시절부터 연령별 국가대표팀에 줄곧 소집됐다. 그런 그가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오르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는 2014년에 이어 2018년 월드컵까지 최종 명단에 들었다가 참가하지 못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눈앞에서 무산된 월드컵 두 번, 어땠나?
“2014년 월드컵은 병원에서 봤다. 처음엔 보고 싶지 않았는데, 병원에 있던 다른 환자와 간호사들이 같이 보자며 응원해줘서 세 경기를 다 봤다. 2018년에는 수술하고 집에 있었다. 그날 아내는 밖에 나가고 혼자 있었는데, 경기 두 시간 전부터 기분이 이상하더라. 그래서 와이프한테 전화해 ‘빨리 집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가 오자마자 바로 품에 안겨 울었다.”
-월드컵이란 선수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축구 선수는 월드컵에 나가는 게 최종 목표이고 꿈이다. 그런 꿈이 무너졌을 때의 심정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이번 월드컵은 나에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나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한 가족에 대한 보답, 내 개인의 꿈, 나라를 위한 영광이다.”
-트라우마는 없었나.
“월드컵을 앞두고 다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수비 과정에서 부딪치는 게 무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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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복했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내가 (부상이 무서워) 부딪쳐야 할 때 자꾸 한 발씩 빼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팀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부딪치자고 결심했다. ‘부딪쳐도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을 찾았다.”
-축구 선수 꿈은 어떻게 꾸게 됐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고 시작했다. 축구를 하면 부자가 될 줄 알았다. 당시 TV에서는 월드컵 대표팀에게 집도 주고, 차도 준다고 하니까(웃음).”
-왜?
“어릴 때부터 부유했던 적이 없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달라고 한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 돈이 드는 사립인 신갈고에 진학했다.
“부모님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신갈고에 진학했고, 열심히 해 장학생이 됐다.”
-2014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2013년 스위스와 평가전을 치르고 나서 유럽 리그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당시 난 2014년 월드컵에 나간 다음 이적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상 때문에 나가질 못했다. TSG 1899 호펜하임팀에서 ‘네가 부상당한 걸 아는데, 그래도 널 영입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래서 독일로 갔고, 첫 경기부터 다 뛰었다.”
-왜 돌아오게 됐나.
“3년 차 때 팀 성적이 좋지 않아 감독님이 바뀌었다. 그분이 지금 FC 바이에른 뮌헨을 맡고 있는 율리안 나겔스만이다. 그런데 그 감독님이 처음부터 아무 이유 없이 날 엔트리에서 빼버렸다. 감독님을 찾아가 ‘내가 못 뛰는 이유를 말해줬으면 좋겠다. 부족한 게 있다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 미팅했는데 감독님은 계속해서 ‘쓰겠다’고만 하고 안 썼다. 그래서 결국 2016년 겨울 팀을 나가겠다고 했다. 독일 다른 팀에서도 제안이 있었는데,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팀이 전북 현대다.”
-현재 이재성, 이동경, 정우영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
“그 친구들이 첫째로 부딪쳐야 하는 건 언어, 둘째는 스타일이다. 그들은 운동장에서는 욕하며 싸우고, 라커룸에 들어가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친하게 지낸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낯선 분위기다. 힘들겠지만 후배들을 위해 어떻게든 버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롤모델은?
“되도록 롤모델이라는 것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좋은 선배들이 있지만, 롤모델만큼 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가둬버릴 것 같아, 누군가를 따라가기보다는 그냥 내 길을 걷고 싶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머리다. 순간적인 판단, 센스, 다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술이나 체력은 훈련으로 익힐 수 있다. 그러나 머리는 타고나는 것 같다. 월드컵에 와서 그걸 더 절실하게 느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할 때는 조그만 판단 하나에 승패가 갈린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로.” 김진수 선수의 오른쪽 팔뚝엔 ‘백절불굴(百折不屈)’이란 말이 새겨져 있다.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4년 뒤 북중미 월드컵은?
“당연히 도전하고 싶다. 이번 대회로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명확하게 알았다. 나라를 위해 뛴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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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성 김문환
벤투호의 오른쪽 풀백은 마지막까지 누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불확실성이 최대 약점으로 꼽혔다. 벤투 감독의 최종 선택은 처음 대표팀에 선발된 김문환 선수였다.
그는 대표팀에서 주장 손흥민, 골키퍼 김승규와 함께 유일하게 4경기 풀타임을 뛴 선수다. 그동안 뛴 거리는 42km. 황인범 선수에 이어 둘째로 길다. 그 외 284회로 최다 전력 질주, 아시아 선수 중 패스 성공률 1위.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그의 모습에 ‘좀비 축구의 창시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풀타임은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은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라 이겨내면서 뛸 생각밖에 없었다.”
-주전 확신이 있었나?
“없었다. 카타르에 와서도 확실치 않았다.”
-왜 선택받았을까.
“장점인 스피드를 좋게 봐주신 것 같다. 팀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는 모습도. 경기를 뛰든 안 뛰든 연습할 때도 최대한 100%로 하려고 했다.”
-오른쪽 풀백이 가장 약점으로 지적됐다.
“내 포지션이 약점으로 꼽히는 게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래서 ‘약점이 아니고 든든한 자리’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 독기 품고 뛰었다.”
-어떻게 축구 선수를 꿈꾸게 됐나.
“원래 아버지 꿈이 축구 선수였는데, 집안 사정 때문에 못 하셨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조기 축구를 다니면서 꿈을 키웠다.”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나?
“난 진짜 평범한 선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연령대별 대표팀도 한 번 가보지 못했다.”
-동료들이 대표팀에 발탁되면 의기소침해질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워낙 잘하는 선수도, 앞서 나가는 선수도 많았다. 그런데 난 ‘언젠가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내 믿음을 유지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보다 더 많이 운동했다. 타고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노력밖에 할 게 없었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기본기다. 볼 컨트롤이나 패스 같은 기술적 부분도 있지만 멘털도 있다. 이런 것은 처음에 잘 다지지 않으면, 나중에도 힘들다.”
-좋은 멘탈이란?
“흔들리지 않는 것.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만하지 않고 초심을 찾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롤모델은?
“박지성 선배. 내 초·중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늘 팀을 위해 희생하고 궂은 일도 마다치 않는 플레이를 동경한다.”
-월드컵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세계적인 선수들과 부딪치며 경험해보니, 유럽처럼 더 큰 무대에 도전해볼 마음이 생겼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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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수 인터뷰는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두고 했다. 촬영을 위해 산타 모자와 루돌프 안경을 쓴 김진수 선수는 “이런 건 어디서 사느냐”고 물었다. 그의 크리스마스 계획은 올해 세 살인 딸 제이와 키즈 카페에 가는 것. 딸을 ‘우리 아기’라 부르는 얼굴에 아빠 미소가 가득했다. 김문환 선수도 빨리 전주 집으로 내려가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도 특별한 취미 없이 아내와 산책하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크리스마스도 아내와 단둘이 보낼 것 같다고 했다. 국가대표라는 무게를 내려놓은 선수들이 성탄절 돌아갈 곳은 역시 ‘가족’이었다.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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