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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요리, 라면만큼 쉽다고?

샘표 우리맛연구팀, 2년에 걸친 나물 맛 분석·연구 결과 발표

"냉이 볶으면 오징어 향, 은달래 볶으면 땅콩버터 맛 나더라"

나물 손질할 땐 알루미늄 포일, 데칠 땐 전자레인지 사용하면 편리

나물 요리, 라면만큼 쉽다고?

냉이 김밥, 은달래 버터, 참나물 살사. 샘표 우리맛연구팀은 나물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 분석을 바탕으로 나물을 활용해 그동안 상상 못했던 새로운 요리를 개발했다./샘표

"라면만 끓일 수 있으면 나물 요리할 수 있어요."


샘표 우리맛연구팀 최정윤 팀장은 자신만만했다.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과장이 지나치다 여겼다. 나물이 뭔가. 노련한 주부들도 제대로 맛 내기 힘들다는, 한식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손맛’의 최정점이 아니던가.


봄나물은 한국의 봄을 대표하는 제철음식이다. 하지만 조리하기 어렵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점점 우리 식탁에서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샘표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0~50대 주부 100여 명은 "나물은 손질이 어렵고 번거롭다"(79%) "맛내기가 어렵다"(60%) "요리법이 한정적이다"(40%) "나물에 대해 잘 모른다"(32%)고 답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채소 섭취율 1위로, 밥상 구성요소 중 70%가 채소로 이뤄져 있다. 이처럼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었던 비결은 나물이었다. 그런 나물이 점차 밥상에서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한 샘표에서 최근 ‘봄나물 연구 발표회’를 열었다. 샘표 우리맛연구팀이 지난 2년간 나물을 쉽고 맛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냉이, 원추리, 달래, 쑥 등 가장 많이 먹는 봄나물 15가지의 향미 특징 등 기본 정보와 손질부터 요리까지 단계마다 숨겨진 조리과학 원리, 요리 팁,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양념 공식, 색다른 봄나물 레시피를 소개했다.

전자레인지 사용하는 쉬운 나물 데치기

"나물은 손도 대기 싫다"는 주부들이 많다. 뿌리와 줄기, 잎 사이에 낀 흙을 깔끔하게 제거하고 씻어서 데쳐내는 밑손질부터 번거롭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요리사와 영양학자, 식품공학자, 인문학자 30명으로 구성된 우리맛연구팀에서는 나물의 맛과 영양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쉽게 손질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나물을 다듬을 때는 쿠킹포일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구긴 쿠킹포일로 나물을 문지르면 뿌리와 잔털, 잎과 줄기 사이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에 낀 이물질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세척할 때 달래 줄기가 긴 나물은 고무줄을 활용한다. 줄기 끝부분을 고무줄로 묶으면 한꺼번에 흔들어 세척할 수 있고 나물이 흩어지지 않는다. 세발나물이나 돌나물, 냉이 등 작고 가벼운 나물은 뚜껑이 있는 용기에 물과 함께 담아 흔들면 흙과 이물질을 빠르게 제거할 수 있고 나물이 물러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데칠 때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한다. 씻고 손질한 나물(100g)을 물(50g)과 함께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고 5분 돌린 뒤 상온에서 식힌다. 단 쓴맛이 강한 나물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경우 쓴맛이 빠지지 않으니 적합하지 않다. 프라이팬을 써도 된다.


프라이팬 활용법을 시연한 최민제 연구원은 "나물은 보통 200g 단위로 판매된다"며 "한 팩을 데칠 경우 생수 페트병 하나(2L)가 적당하다"고 했다. "소금은 페트병 뚜껑으로 하나(6g)면 되요. 쓴맛이 강한 나물은 설탕을 조금 넣어도 좋습니다. 나물마다 다르지만, 물이 팔팔 끓을 때 넣고 평균 2분이면 알맞게 데쳐집니다. 흐르는 물에 30초 식히세요. 열을 빼야 나물의 색감과 풍미가 살아납니다. 얼음물은 너무 차가워요. 급속한 온도변화가 맛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흔히 나물은 손으로 꼭 쥐어서 물기를 짜낸다. 우리맛연구팀에서는 손으로 나물을 한 덩어리로 뭉쳐 물기를 짜내면 겉은 너무 마르고 속은 너무 축축하다는 걸 알게됐다. 대신 김밥 말 때 쓰는 김발을 추천했다. "김발에 나물을 펼쳐놓은 다음 적당한 압력으로 말아 꾹꾹 눌러주면 고르고 적당하게 물기가 제거됩니다."

"나물 고유의 맛 살리려면 무조건 파·마늘로 무치지 마세요"

나물 요리, 라면만큼 쉽다고?

샘표 봄나물 연구 발표회에서는 봄나물의 향을 제대로 맡아볼 수 있도록 플라스크에 담아 전시했다./샘표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속담이 있다. 차이가 별로 없다는 뜻으로 쓰일만큼, 나물은 종류와 상관없이 맛이 비슷하다는 인식이 있다. 최정윤 팀장은 "마늘과 파 때문에 생겨난 오해"라고 했다. 맛과 향이 강한 마늘과 파가 나물의 고유한 풍미를 가린다는 것.


우리맛연구팀에서 ‘기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GCMS)’를 이용한 과학적 분석과 식품영양학자의 관능평가를 통해 분석한 봄나물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 몰랐을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면서 서로 다른 풍미를 품고 있었다. 참나물은 고수, 박하 등 허브와 감귤류의 향을 가지고 있었다. 가죽나물은 양고기와 액젓에 있는 것과 같은 향 분자를 지녔고, 참두릅은 아스파라거스나 샐러리 향이 숨어있었다.


최 팀장은 "나물의 개성을 살리려면 마늘과 파를 생각없이 무조건 사용하는 건 자제하라"고 권했다. 마늘과 파는 보존기간도 짧아진다. "나물 자체의 맛을 본 다음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 연두 등 어울리는 장류를 선택하세요. 여기에 고소한 맛을 내려면 참기름이나 들기름, 참깨나 들깨, 잣을 더하세요. 새콤한 맛은 식초, 매콤한 맛은 고춧가루로 내면 됩니다."


‘나물은 손맛’이라고 무조건 손으로 세게 무치는 건 금물. 생채는 박박 무치면 조직이 파괴되면서 풋내가 발생할 수 있다. 젓가락을 이용해 아삭한 식감을 유지하도록 가볍게 무친다. 숙채는 양념이 나물 조직에 충분히 배도록 손끝으로 강하게 버무린다.


참기름은 다른 양념으로 무친 뒤 마지막에 넣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패하면서 불쾌한 냄새가 발생할 수 있다. 너무 많으면 나물 본연의 맛과 향을 가릴 수 있으니 적당량만 넣는다. 식초는 먹기 직전 넣고 버무린다. 식초의 산 성분이 나물의 엽록소에 작용해 갈변을 일으킬 수 있다.


나물의 선명한 색을 유지하고 풍미를 상승시키려면 센불에 빨리 볶아낸다. 곰취·냉이·방풍·씀바귀·원추리·참취 등은 1분30초, 참죽·명이·땅두릅·참두릅은 2분, 비름은 1분이 적당하다는 걸 실험을 통해 찾았다. 봄동(3분30초), 머위잎·씀바귀(5분), 머위대(5분30초) 등 질기고 단단한 봄나물은 약한불에 오래 볶아야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살릴 수 있다.

무쳐 먹지만 말고 볶고 구워서 먹어보자

나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맛연구팀은 ‘나물은 반드시 데치고 무쳐서 먹어야만 하나?’란 의문을 품었다. 데치고 끓이는 전통적인 ‘습열’ 조리법 외에 볶기·굽기 등 ‘건열’ 조리법과 갈기·절이기 등 ‘비가열’ 조리법, 전자레인지 등 현대식 조리도구 활용 요리법을 두루 실험했다.

 

나물 요리, 라면만큼 쉽다고?

냉이를 흔히 먹는대로 데쳐서 무치지 않고 볶았더니 신기하게도 해산물의 감칠맛이 났다./샘표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나물이 가지고 있다고 알지 못했던 새로운 맛과 향을 찾을 수 있었다. 냉이를 볶았더니 오징어 등 해산물 맛이 확 올라왔다. 봄동을 볶거나 굽자 해조류의 감칠맛과 견과류의 고소함이 드러났다. 두릅을 볶으니 고기 감칠맛이 났다. 참취(취나물)을 갈거나 절였더니 아오리 사과향이, 곰취를 갈거나 빻으니 박하·멜론·풋사과향이 풍겼다.


이렇게 새로 발견한 맛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물 요리도 개발했다. ‘은달래 버터’가 대표적이다. 굵게 다진 은달래를 된장에 버무려 식용유를 두르고 볶다가 연두를 넣고 졸이니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영락없는 땅콩버터였다. 알레르기 때문에 땅콩을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 될 듯하다. 고수(코리앤더)와 박하 향이 있는 참나물을 활용한 멕시코 살사, 볶은 냉이를 넣은 냉이김밥은 오징어를 넣은 듯 구수한 향과 담백하면서 쌉싸름한 맛이 산뜻했다.

레시피

은달래버터

나물 요리, 라면만큼 쉽다고?

재료: 은달래 2줌(100g), 연두순·된장 각 1/2큰술(5g), 옥수수유 1큰술(10g), 생크림 1/2컵(100g), 물엿 3큰술(30g), 참기름 약간(0.2g)


1. 은달래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뿌리와 비늘줄기 사이 딱딱한 부분을 제거한다.

2. 은달래를 굵게 다져 된장과 함께 버무린다. 프라이팬에서 옥수수유를 두르고 중간불로 볶는다.

3. 은달래와 된장이 볶아지면서 바닥에 색이 나면 생크림을 넣어 졸이듯 볶다가 연두를 넣는다.

4. 볶은 은달래를 믹서기로 곱게 갈고 고운 체에 한 번 걸러 농도가 생길 때까지 저어주며 졸인다. 농도가 생기면 불을 끄고 한 김 식힌다. 참기름을 넣고 차게 식힌다.

* 은달래 대신 일반 달래의 비늘줄기(흰 부분)을 사용해도 된다.


냉이김밥

나물 요리, 라면만큼 쉽다고?

재료: 냉이 2줌(100g), 밥 1공기(200g), 김밥용 김 1장, 연두순 1큰술(10g), 포도씨유 3큰술(30g)

밥 양념: 참기름·참깨·소금 각 1/2큰술(5g)


1. 밥에 양념을 넣고 잘 섞는다.

2. 프라이팬을 예열한 다음 포도씨유를 두르고 냉이를 볶다가 연두순을 넣는다.

3. 김을 4등분 한다.

4. 김에 밥을 펴고 냉이를 놓고 만다. 한입 크기로 썰어 접시에 담는다.


참나물 살사

나물 요리, 라면만큼 쉽다고?

재료: 참나물 1줌(50g), 토마토 1개(200g), 양파 1/4개(50g), 연두순 1/2큰술(5g), 식초 1큰술(10g)


1. 토마토 속살을 발라내고 과육을 0.3cm x 0.3cm 크기로 자른다. 양파도 같은 크기로 자른다.

2. 참나물은 살짝 잎이 씹힐 정도로 거칠게 다진다.

3. 볼에 준비해 놓은 재료를 모두 넣고 식초, 연두를 더해 잘 섞는다.

* 청양고추, 후추를 넣어도 좋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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