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 가죽에 붙은 소고기, 막걸리 안주로 튀겨 먹기도
박정배의 미식한담
군화용 가죽 폐품, 60년대 노점에서 안주로 튀겨 팔아
선지, 피 뜻하는 만주어 ‘셍지’에서 유래… 값싸지만 철분 풍부
대전 역전시장 ‘원조선지국’./조선일보DB |
찰리 채플린은 무성영화 ‘황금광시대’(The Gold Rush·1925)에서 자신의 구두를 풀어 삶아 먹는다. 이 장면은 한국에서 현실이 되었다. 1969년 7월 15일자 ‘경향신문’에는 서울역앞이나 동대문 시장 노점에서 군화용 가죽의 폐품을 쇠고기 식용으로 판 기사가 나온다.
‘미국 및 호주 등지에서 군화제조용으로 수입된 쇠가죽에 붙었던 고기가 시중에 흘러나와 서울역앞, 동대문시장 등 노점상에서 튀김, 볶음 등으로 시판되어 온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시 부정식품 단속반은 14일 하오 서울 종암동을 급습 군화제조용 수입 가죽에서 뜯어낸 고기를 압수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또 단속반은 이 고기가 족편원료와 설렁탕 고기로도 쓰인다는 정보에 따로 조사를 확대했다.
수구레: 소가죽 아래 붙은 쫄깃한 콜라겐과 지방질
흔히 수구레라고 불리는 이 고기는 도살과정이 기계화된 미국이나 호주 등지에서 고기가 많이 붙은 가죽을 황산 유산 등으로 화학처리, 수출하기 때문에 개조차 먹지 않은 정도로 인체에 해로워 위장, 간장, 신경 계통에 큰 장애를 준다는 것이다. 노점상들은 이 고기를 잘게 썰어 기름에 튀긴 뒤 600g을 5인분 정도로 나누어 50원 꼴로 막걸리꾼들에게 술안주로 팔아왔다고 한다.’
수구레는 충청도 이남 지역에서 탕의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예전에는 껍질을 그슬린 뒤 방망이로 두들겨 껍질과 수구레를 부위를 분리한 뒤 조리했다.
수구레는 한민족의 쇠고기에 대한 집착과 이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위다. 소가죽 안쪽에 붙은 지방질과 콜라겐을 수구레 혹은 소구레라 부른다. 소가죽 중에서 가장 얇은 뱃가죽 부분이 많이 쓰이는데 특히 숫소의 고환쪽이 가장 부드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 피: 서민 살찌운 값싸고 영양가 만점 식재료
선지는 피를 뜻하는 만주어 ‘셍지’에서 온 말이다. 싸지만 철분이 풍부해 서민들을 살찌운 식재료였다. 서울에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생 선지를 파는 행상들이 제법 있었다.
‘우혈탕’(牛血湯)이라 불렸던 선짓국은물론 선지에 젓국·파·생강을 넣어 찐 ‘선지물조치’(시의전서·1877년 추정), 선지를 전으로 부쳐 먹는 ‘선지전유어’와 ‘선지피찌개’(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년)가 등장할 정도로 선지를 다양한 요리로 먹었다. 일제강점기 청진동에 들어선 해장국 식당들은 선지를 기본 재료로 양과 벌양을 넣어 먹는 우혈탕을 외식의 기본틀로 만들고 이어오고 있다. 돼지가 일반화되면서 소선지는 찰선지, 특선지로 구분해 좀 더 비싼 가격으로 판다.
다리와 꼬리: 그때도 지금도 최고의 보양식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소뼈는 보양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꼬리곰탕을 스테미나의 상징처럼 여긴 탓에 운동선수들이 즐겨 먹었다. 1955년 10월 18일자 ‘경향신문’에는 파리에 간 한국유도 선수들에게 꼬리곰탕을 대접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에도 꼬리곰탕은 운동선수들의 최고의 보양식으로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한민족은 오래 전부터 소꼬리를 먹어왔다. 1809년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소꼬리찜’(牛尾蒸方)이 나온다. 살찐 소꼬리를 뿌리의 살째 무르게 삶아 잘게 찢어 기름장, 후추, 깨소금에 주물러 끓여 먹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소꼬리찜과 비슷한 요리가 등장한다. ‘소꼬리를 살찐 걸로 서너 개를 삶아 털을 글고 서너치씨 길게 잘으로 쇠 압족(전족) 두어깨를 삶아 털을 글고 쪼개여 조각을 내어 꼬리와 함께 솟에 너코 물을 붓고 은근히 끌여 반쯤 물으거든 장, 기름 파 흰 것 쓴(썬) 것, 생강 다진 것, 호초(후추)가루, 깨, 소금 등을 모도치고 다시 고아 뼈가 버서지게 물으거든 퍼서 먹습니다. 여기다가 다시 무를 너코 한데 끓여 먹어도 조흡니다.’(1931년 9월 30일자 동아일보)
소의 다리뼈인 사골(四骨). |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교적 저렴하던 소뼈들이 건강식품으로 인식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이 급등한다. 소의 다리뼈인 사골(四骨)은 설렁탕이나 곰탕의 재료로도 사용됐지만 이때를 계기로 고급 부위로 본격적으로 분류된다. 이후 사골과 꼬리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자 1990년대 초반부터 꼬리곰탕을 시작으로 양곰탕, 사골국물을 통조림화한 제품들이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수입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사골과 꼬리곰탕은 전성기를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귀한 꼬리 부위는 ‘방치찜’이나 ‘꼬리찜’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방치는 엉덩이 골반 부위로 꼬리반골이라고도 부른다. 순수한 꼬리는 꼬리 또는 알꼬리로 부른다.
도가니는 소 뒷다리의 무릎과 무릎 사이 연골, 그 주변을 둘러싼 도가니살을 지칭한다. 때문에 도가니는 반드시 살코기와 연골이 함께 붙어있다. 살코기가 없는 하얀 연골만으로 이뤄진 것은 도가니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소의 힘줄이다. 힘줄은 흔히 일본어 ‘스지’(すじ·筋)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스지를 어묵집에서 주로 사용한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순수한 살코기는 42% 정도다. 고기 이외의 부위가 더 많은 것이다. 살코기는 양반들 차지였고, 서민들에겐 나머지 부위만이 돌아갔다. 선지, 수구레, 사골, 도가니, 꼬리 같은 부산물들은 값은 싸지만 영양이 풍부해 서민을 살찌운 고마운 식재료였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