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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겁나는 물가에 밥이 복지다… 총수도 줄선다는 구내식당들

[아무튼, 주말]


“밥은 먹고 다니냐?”는 “잘 살고 있지?”라고 묻는 것이다. 잘 먹는 일은 잘 사는 일의 기본. 그런데 ‘역대급 푸드플레이션’이 외식 물가까지 밀어 올리고 있다. 외부 식당에서 밥값을 결제할 수 있는 온라인 식권 결제업체 ‘식신’에 따르면, 직장인의 평균 점심값은 올해 1분기 처음으로 1만원을 돌파했다. 명동교자 칼국수가 1만1000원, 오장동 함흥냉면이 1만5000원을 받는 시대. 밖에서 밥 한 끼 먹으려다 충격을 먹었다는 직장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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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점심으로 제공된 왕갈비탕.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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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고물가 시대에는 구내식당 밥이 기업 복지의 핵심이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는 “우리 회사 구내식당 어떤 것 같냐?”는 글이 유행처럼 올라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들도 식판을 들고 구내 식당에 줄을 선다.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과 함께 “직원들 밥을 직접 챙긴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다. ‘아무튼, 주말’이 국내 대표 기업 세 곳과 “외부인이 먹기에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난 구내식당들을 훑었다. 밥 복지, 대관절 얼마나 좋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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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사옥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독자제공

◇ 회장님도 출석하는 구내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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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에는 밥 잘 먹이는 기업이 인기가 많다. 따끈하게 조리해 만드는 즉석 코너를 만들고, 유명 외식 브랜드 메뉴를 특식으로 내놓기도 한다. 위 사진은 국내 대표 기업들의 구내식당 메뉴. 어떤 회사의 점심 메뉴일까? 정답은 기사 말미에.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이미지 기자

지난 21일 점심,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한 구내식당. 직원들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월급날을 맞아 나온 전복트러플파스타, 장어 한 마리 덮밥 같은 여섯 가지 특식 메뉴와 명태회김밥, 마늘치킨도시락 등 간편식 메뉴 앞에서 결정 장애를 겪는 것이었다. 하루 세 끼를 제공하는 삼성전자에서는 인도 출신 개발자들을 위한 할랄식이나 죽 같은 메뉴도 선택할 수 있다. 냉동식품이나 간편식, 베이커리류를 포함하면 끼니당 선택지가 50여 가지에 이른다. 이달에는 식빵 전문점 밀도, 에그타르트 전문점 나따오비까, 미국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 같은 유명 맛집 메뉴 7종도 특식으로 선보인다. 밖에 나가 지갑을 여느니 구내식당에서 줄 서는 게 나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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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수원사업장 구내식당 앞에서 메뉴를 고민하는 직원들. 이달 제공되는 특식과 직원들의 제안으로 구현한 맛집 메뉴 안내가 게시돼있다. /이미지 기자

지난 22일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사옥 지하 1층 구내식당. 하루에 한 가지, 요리사가 즉석에서 요리하는 라이브 코너에서는 소고기 전문점 ‘우미학’의 차돌 깍두기 볶음밥이 철판에서 볶아지고 있었다. 뒤편에서는 오븐에서 갓 구운 피자가 1인당 한 판씩 나왔고, 반대쪽에는 삼겹고사리솥밥과 망향비빔국수 세트가 진열돼 있었다. 진수성찬을 차려도 라면이 당기는 직원은 어디에나 있는 법. 일부 직원은 원하는 라면을 즉석 라면 조리기에 넣은 뒤 김치와 계란, 삼각김밥을 꺼내 먹었다. 스낵카에서는 핫도그가 튀겨지고 있었고, 뒤편 음료 매대에서 탄산음료나 탄산수, 헛개수를 꺼내마시는 사람도 보였다.

네이버 본사를 돌아다니는 로봇들. 음식은 물론 커피와 편의점 간식까지 층이 다른 사무실로도 배달해준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네이버 구내식당은 기술로 밥을 먹는 회사다웠다. 식권을 안면 인식으로 결제하고, 모바일 앱으로 음료를 주문한 뒤 자동 회전 레일에 있는 접시에서 커피 같은 음료를 픽업할 수 있다. 기자가 찾은 날엔 개발자의 소울푸드라는 치즈 돈가스와 육개장이 나왔다. 삼백돈 돈가츠, 삐삣버거, 제주고로, 밀본 같은 맛집이 입점한 5층 레스토랑에서도 비대면으로 음식 주문 및 수령이 가능하다. 근무 중 출출하면 귀여운 로봇에 배달을 대신 맡긴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뽈뽈뽈 이동한 로봇이 카메라로 주문자를 확인한 뒤 음료나 편의점에서 구입한 간식거리를 건네준다.


구내식당은 기업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농심은 매주 금요일 ‘라면 데이’를 연다. 여름엔 둥지냉면이나 비빔면 같은 차가운 면 종류를 먹을 수 있다. 유행에 따라 짜파구리 같은 조리법도 적용한다. 오뚜기는 라면은 상시 제공하고, 죽과 컵밥 같은 제품도 무엇이든 꺼내 먹을 수 있도록 한다.

◇ 급식 업체들은 사활 건다

요즘 가장 치열한 건 ‘특식’ 경쟁이다. 직접 찾아가면 줄 서서 구매해야 하는 전국 맛집 제품을 구내식당 특식으로 내놓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강원도 속초의 명물 ‘만석닭강정’이, 삼성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하이브 구내 식당에는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베이글이 등장했다. 노티드 도넛과 테디뵈르하우스 크루아상 등도 인기 메뉴. 직원들은 “간사하지만 음식 하나에 애사심 생긴다”며 호응한다.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사옥의 라이브 코너. 셰프가 철판에서 음식을 조리해준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급식업체들은 “밥에 민감한 직장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고 말한다. 기업 구내식당 계약은 보통 1년 단위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면 사업장을 뺏길 수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밀키트를 만든 노하우를 단체 급식에 적용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 메뉴를 대량 공급에 맞춰 변형해 밀키트와 구내식당 두 곳에 적용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백화점에 입점한 왕푸징 마라탕과 망원 시장 튀김가게 바삭마차도 HRM에 이어 구내식당에 진출했다. 부산 문어묵은지 비빔밀면, 강릉 감자옹심이 떡만둣국 같은 향토 음식도 선보인다. 아워홈은 ‘급식의 외식화’를 내걸고 아비꼬, 포케올데이 같은 유명 외식 브랜드 메뉴와 팀홀튼, 번패티번 팝업스토어를 구내식당으로 끌어온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조선소에선 ‘해외식’이 나온다. 울산에 있는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에서는 베트남 반미나 쌀국수, 필리핀 다도보, 스리랑카의 도사와 비슷한 메뉴를 낸다. 반대로 건설사 등은 해외 현장에 파견된 한국인 근로자를 위한 한식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제3국식을 제공하는 구내식당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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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HD현대미포조선에서 할랄 특식을 먹는 외국인 근로자들. /현대그린푸드

작년부터 채소·과일 값 급등의 여파가 외식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구내식당을 찾는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가 증명한다. CJ프레시웨이와 삼성웰스토리, 현대그린푸드 같은 단체 급식 업체들은 모두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 외부인 받는 구내식당도 인기

회사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으니 그림의 떡이라고? 외부인 출입을 막지 않는 구내식당도 있다. 외식 물가가 비싼 강남, 여의도, 광화문 같은 업무지구의 가성비 구내식당 리스트가 공유될 정도다.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원들은 점심 시간에 법원·경찰서·관공서 구내식당이나 외부인을 받는 다른 회사 구내식당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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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의 5000원짜리 점심. 자율 배식이라 원하는 만큼 양껏 먹을 수 있다. /이미지 기자

지난 20일 찾은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 5000원짜리 식권을 구매한 뒤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인근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김밥 프랜차이즈의 라면 한 그릇(5500원)보다 쌌다. 밥과 김치, 샐러드, 상추 무침과 명엽채, 떡과 감자를 넣은 돼지고기 찜을 원하는 만큼 담고, 맑은 두부 국을 받았다. 직장 상사와 후배로 보이는 팀은 물론, 혼자 온 사람도 많았다. 근처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국 구내식당도 사정은 비슷했다. 외부인은 6000원이지만 구운 가지 카레와 오이 부추 무침, 생선 튀김, 디저트로 알새우칩까지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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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여의도에서는 FKI타워(구 전경련회관) 구내식당이, 마포에서는 S오일 구내식당이 음식 잘 나오기로 유명하다. 서대문도서관이나 종로구청 등도 인기이다. 다만, 구내식당마다 외부인이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으니 확인할 것.


“밥 한번 먹자”는 또 보자는 인사말, “밥 한번 살게”는 감사 인사,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건 푸념이다. 한국인은 철천지 원수에게도 “콩밥 먹게 해줄게”라고 협박한다. 균형 있고 다양한 식단을 유지하는 구내식당 밥이 직원에 대한 제1 복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K직장인은 오늘도 밥심으로 일한다.


※기사 초반 사진의 정답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사옥의 우미학 차돌깍두기 볶음밥, 네이버 본사의 치즈돈까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삼선간짜장. 아래는 각 회사의 점심 메뉴를 모아본 사진이다.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본사에서 제공되는 점심 메뉴. 라면을 끓여먹거나 간편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네이버 본사 구내식당의 메뉴.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제공되는 메뉴는 2가지에 불과하지만 샐러드나 샌드위치 같은 간편식을 고를 수도 있고 5층 레스토랑에서 외부 맛집 메뉴를 먹을 수도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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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수원사업장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 평소 점심 기본 메뉴는 13가지 정도이지만 이날은 월급날 특식 메뉴로 6가지 특식이 제공됐다. 직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건 간편식까지 총 50여가지에 달한다.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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