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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감초역 자청한 김응수 “이제 겨우 60이지만, 버리는 맛을 알았다”

“돈 많고 아들내미 변호사에 며느리 잘 얻었으면 뭐 혀. 자식 놈 내 맘대로 안 되고, 손주 한번 안아보려니 그 멍텅구리 같은 놈 불륜 눈감아 주는 꼴 되고…. 그렇다고 판문호 자신이 행복한가? 딴생각? 어이구, 꽃뱀한테 안 걸리면 다행이지. 꼬장꼬장해도 아내가 말 붙여주길 기다리고, 강아지한테나 마음 주고 그러지요. 남들 보기엔 좋아 보여도, 한 꺼풀 벗겨보면 사는 게 다 그런 거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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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한 방’이라며 “묻고 따블(더블)로 가”라고 외치던 ‘타짜’(2006)의 곽철용도, “모르니까 가르쳐주실 수 있잖아요”라며 나이 어린 부장 앞에서 뻗대던 ‘꼰대 인턴’(2020) 이만식도 이 남자 앞에선 ‘형님’ 하고 바로 무릎 꿇을 것 같다. 연기 인생 40년의 인간 김응수(61). 대학 1학년 때 극단 ‘목화’에 입단하며 연극계에 데뷔해 연봉 30만원으로 버텼던 그가, 남들은 은퇴할 60세에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13년 만에 ‘역주행 인기’로 지난해 들어온 광고만 130여 건. 꼰대 부장 연기로 지난해 MBC 최우수 연기상도 받았다. ‘인생 한 방’, 또 하나의 성공 사례다.


그런 그가 TV조선 토일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이하 결사곡)의 판문호 역으로 다시 ‘감초’를 자청했다. 이혼녀와 불륜에 빠진 판사현(성훈)의 아버지 역이다. 한창 주가가 높아진 그가, 수많은 제의를 물리치고 “올해는 결사곡 단 한 작품으로 가!”를 외쳤다. “난 판문호의 역할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발견했어요. 그 주인공들처럼 무언가 계속 기다리는데 그게 뭔지를 몰라. 원하는 게 손주냐, 아들의 행복이냐, 가정이냐, 나의 행복이냐, 그러다 죽는 거예요 인간은. 이 부부가 매일 티격태격 허튼소리를 하는데 그냥 서로 뭐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고 외롭고 고독하게 살다 가는 것이쥬.”


언뜻 ‘조역‘으로 보이는 역할이 그의 손에 잡히면 ‘주역’처럼 느껴지는 것은 배역에 대한 부단한 해석때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평범해 보이는 장면에서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지는 부조리극의 정수(精髓)를 뽑아내다니, ‘인간 김응수’가 아니면 그 누가 해내겠는가.


첫사랑 이름을 강아지에게 붙여놓고 ‘대놓고’ 애정어린 잠꼬대를 하거나, 부인과의 첫날밤을 회상하며 “액션 좀 취했지”라고 목에 힘 한번 주고, 아들을 꾸짖으며 “경우가 아니여”라고 이마 주름을 만들 때, 실시간 시청자 응원 댓글창이 김응수 이름으로 춤춘다. 스스로는 “조물조물 짜여진 대사에 msg 살짝 쳤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시니컬과 해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표정까지 더해지면 말 그대로 신스틸러, 채널 고정이다. ‘불륜남 막장극’의 격을 높이는 ‘김응수표 오아시스’다. 최근 ‘시즌 2′를 확정한 ‘결사곡’ 인기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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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판문호를 왜 좋아하느냐. 너나 나나 지지고 볶고 하는 삶은 다 거기서 거기인 걸 발견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인생에 크나큰 목표가 있는 것 같죠? 신년이 되면 책을 만 권 읽자고 하는데, 지나고 보면 한 게 없어. 결국 그냥 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같이 재미를 주는 예술인이 필요한 거예요. "


작품 속 비중이 크든 작든, 이젠 그의 등장만으로도 화제가 된다. 남다른 화면 장악력도 한 몫하지만, 그만큼 ‘될 만한' 작품을 골라내는 김응수의 선구안도 탁월하다는 평. 그의 연기론은 ‘감(感)’이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수레바퀴 일화를 인용했다. 수레바퀴가 더도 덜도 정확하게 깎이는 건 숱하게 단련된 손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이승엽도 아마 나중에는 감으로 때렸을 겁니다. 작품을 고르는 것도, 사업을 하는 것도 나중엔 결국은 감이에요. 그건 어마어마하게 훈련되고 축적되고 난 다음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고전을 읽고 인문학을 배우고, 실전에서 연기를 해 봐야 해요. 후배들에게도 논어를 읽으라고 책을 나눠줬습니다.”


그는 “나이 60에 ‘버리는 맛'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배우고, 채워넣는 것만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지요. 집착도, 군더더기도, 버려야 연기도 살아납니다. 인생은 60부터라 하지 않습니까? 제 연기도 이제부터 다시 시작인 것이지요.“ 그는 “인격은 가난에서 나오고 인간은 수양의 동물”이라 말했다. “인생이 욕심대로 살아집디까? 난 내 능력이 100이라면 70에 맞춰서 살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70을 가졌으면서 100을 바라죠. 욕심을 내는 순간, 그게 내로남불이 되는 거예요.” 광고 130건 중 그가 선택한 건 단 5건. 제일 먼저 응한 것도 재능 기부나 마찬가지였던 ‘사랑의 열매’ 광고였다. “얻어걸린 운이잖아요. 돈을 취하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어요.”


숱하게 들어오는 예능 출연 요청도 거의 거절했다. 딸이 좋아하는 ‘아는 형님’과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 영탁과의 인연으로 ‘사랑의 콜센타’에 최근 출연한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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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탁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출연했다”고 말했다. 영탁은 당시 그가 주연한 드라마 ‘꼰대인턴'의 주제가를 부르고 특별 출연을 했다. “영탁 같이 최고로 바쁜 인기 스타가 우리 드라마에 나와줬어요.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 영탁이 나오는 예능인데, 제가 나와서 도움이 된다면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최고 시청률 15.8%나 나왔어요. ‘네가 무슨 노래냐'며 말리던 친구들도 지금 ‘최고’라며 서로 영상을 돌려봅니다. 하하.” 인간 김응수가 보여주는 ‘선배의 품'이다.


“욕심이 없다”고 했던 그도 단 하나 욕심 내는 게 있다. 중년 멜로다. 한국인의 감수성으로 해외시장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멜로 장르의 BTS가 탄생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꿈꾸는 상대 역은 누구일까. “이번 드라마에 제 며느리로 나오는 이가령씨요. 시즌 2에서 가능할 수도 있을까요? 하하.” 충청도 출신의 그는 인터뷰 초반 임성한 작가의 대사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임 작가가 충청도 출신보다 더 충청도스럽게 대사를 잘 써요. 충청도는요, 그쟈, 그짝이, 결국은, 하고 싶은 말이, 주어가 제일 뒤에 와요.”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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