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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채지형의 여행살롱 17화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잔지바르 풍경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매일 저녁 드라마틱한 일몰이 펼쳐진다

탄자니아에 있는 잔지바르 섬, 들어보셨나요? 에메랄드 빛 인도양에 보석처럼 떠 있는 섬이랍니다. 잔지바르 사람들은 ‘하쿠나 마타타(괜찮아)’를 입에 달고 삽니다. 억울하게 사기를 당해도, 친구가 약속에 늦어도 ‘괜찮아, 괜찮아’라며 넉살좋게 웃죠. 웬만한 일에는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습니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내일로 미루자’라는 그들의 굳은 신조는 여행자들마저 ‘감염’시킵니다. 저도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죠. 시간만 나면 꺼내들던 일기장과 볼펜도 가방 속에 콕 넣어버렸습니다. 내일하면 되니까요. 

아랍과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절묘한 조합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잔지바르 번화가, 스톤타운

잔지바르 섬은 아프리카에 속해있지만 이슬람 향기를 풍기는 섬입니다. 코피아(이슬람 전통 모자)를 쓴 남자들과 원색의 차도르를 걸치고 있는 여인들을 쉽게 볼 수 있구요. 아라베스크 문양의 카페트와 항구 앞에서 파는 진한 이슬람식 커피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 들게 하죠.

 

잔지바르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의 ‘잔지(흑인)’와 ‘바르(해안)’를 합한 것입니다. 잔지바르는 한동안 노예 집산지였어요. 아픔을 간직한 곳이죠. 30여 년간 오만 제국의 수도 역할도 했습니다. 아랍인 술탄이 잔지바르에 살았는데, 1964년 탄자니아와 통합하면서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오늘날 모습이 되었답니다.

 

잔지바르 섬 여행의 출발은 스톤타운입니다. 스톤타운은 잔지바르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번화가지요. 잔지바르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회벽 건물들이 크지 않은 시내를 채우고 있고, 건물들 사이에는 좁디좁은 길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야릇한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길, 헝클어진 머리. 오묘함이 스톤타운을 에워싸고 있지요.

 

스톤타운은 19세기 초 아랍 지배자들이 노예무역 시대에 남겨놓은 유적들을 품고 있어요. 건물도 대부분 아랍식 가옥 양식을 따르고 있고요. 미로처럼 퍼져 있는 길도 아랍식입니다. 골목 끝마다 등장하는 모스크와 무슬림들의 생필품을 파는 시장은 이곳이 아프리카인지, 중동의 어느 나라인지 헷갈리게 만들죠.

 

온몸을 부이부이(이슬람 전통 의상)로 꽁꽁 감춘 이슬람 여인들, 수시로 들리는 끝없는 기도 소리도 잔지바르 섬을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좁은 골목을 헤매다가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 여인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기분이 무척 야릇해지더라고요. 멍하니 길 위에 서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알리바바가 나오는 동화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이것이 잔지바르의 노른자 ‘스톤타운’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자 생명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스톤타운에서 본 황홀한 일몰

한번 가면 블랙홀 ‘능위 비치’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스톤타운과 함께 잔지바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북쪽에 있는 능위(Neungwi) 비치입니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한없이 여성적이고 따뜻하죠. 동력이라고는 전혀 쓰지 않고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배 ‘다우(dhow)’가 바다에 두둥실 떠 있습니다. 여백의 미가 넘쳐흐르는 풍경화 한 폭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잔지바르의 대표 향신료인 ‘클로브(clove)’ 향도 바람결에 날아옵니다. 푸른 바다에 눈을 두고 은은한 향을 맡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고 귀가 시원해져요.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바람에 따라 흘러가는 무동력선 다우

잔지바르 섬은 유럽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습니다. 호젓한 분위기의 멋진 레스토랑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죠. 밤이 되면 촛불 흔들리는 낭만 테이블에서 싱싱한 해산물이 올라간 피자를 맛보곤 합니다. 이때 바람이 슬쩍 머리카락을 건드려주기라도 하면 기분은 배가 되지요. 아프리카 청년들의 유연함과 에너지를 엿볼 수 있는 아크로바틱 공연도 수시로 펼쳐져, 밤마저 짧게 흐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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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넘실거리는 능위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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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여유로운 해변가

잔지바르에서 꼭 한번쯤! 스파이스 투어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사진 출처 : Jonathan Stonehouse(flickr.com)

잔지바르를 이야기할 때 빠뜨리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향신료입니다. 한때 향신료는 잔지바르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어요. 오죽하면 ‘스파이스 아일랜드’라는 별명이 붙었을까요. 특히 클로브에 있어서는 세계 최대의 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잔지바르에 가면 한번쯤 ‘스파이스 투어’를 해봐야 합니다. 흥미진진하거든요. 스파이스 투어를 하는 날 아침, 가이드가 잔지바르 섬 구석에 있는 시골로 데리고 가더군요. 향신료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울창한 숲이었습니다.

 

가이드는 향신료 농장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향신료의 왕이라는 ‘카다몬 클로브’, 모기를 쫓는 데 쓰인다는 ‘레몬 글래스’, 말라리아 예방약에 쓰이는 ‘클로로킨’ ‘블랙페퍼 바닐라’ ‘갈릭’ 등 수십 가지 향신료의 특성과 향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저 음식에 ‘향’을 위해 사용하던 향신료를 재발견하는 시간이었죠.

 

농장에는 별 모양의 스타프루트과 냄새가 고약한 두리안, 온 몸에 뾰족한 가시를 덮고 있는 잭프루트 등 열대 과일들도 즐비했습니다. 귀여운 아프리카 꼬마가 보조 가이드 역할을 했는데요. 나뭇잎을 접어 예쁜 장신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높이 있는 나뭇잎을 따다 손에 쥐어주기도 하더군요. 립스틱을 만드는 데 쓴다는 립스틱 나무를 보러 갔을 때는, 껍질 속에 들어있는 빨간 색의 열매를 입술에 직접 바르면서 생생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잔지바르 어디에서나 맡을 수 있는 은은한 향의 정체를 알게 된 것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꼬마와 장난을 주고받던 순간들 덕분에,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만족스러운 투어였습니다.

‘하쿠나 마타타’의 섬, 잔지바르

역사를 품은 돌과 오늘을 사는 초록

스톤타운에서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문’ 구경입니다. 잔지바르는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섬답게 대부분의 문이 독특한 멋을 자랑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문 크기와 사용하는 나무 재질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냈다고 해요. 열쇠가 무겁고 목재가 두꺼울수록, 그리고 천정이 높을수록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죠. 마호가니나 티크, 잭프루트같은 나무가 주재료로 사용되었고요.

 

잔지바르 목수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문을 쫒아가다 보니, 얼마가지 않아 길을 잃고 말았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길 좀 잃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요. 어차피 인생이란 직선으로만 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고 한없이 자유로워지더군요. 길을 잃었던 추억이 잔지바르를 그립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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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
소개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