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해의 신비로움이 출렁이는 남인도 바르깔라
채지형의 리틀인디아 제4화
남인도답게 야자수가 빼곡하게 심어져있다 |
‘아라비아’라는 이름은 신비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닿기 어려운 곳이라 그랬을까요.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나 보던 이름이라 그랬을까요. 아라비아에 대한 환상은 어른이 된 후에도 남아있었는데요. 드디어 남인도 바르깔라에서 아라비아의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품어온 환상이 저만의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더군요. 한없이 맑고 투명하고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아라비아 해를 배경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수많은 사람. 멀게 느껴지던 아라비아 해가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인도 허니문 일번지, 바르깔라
절벽이 있어 매력적인 바르깔라 해변 |
바르깔라 기차역에 내려 릭샤를 타고 10분 정도 달렸습니다. 넓은 헬리콥터 착륙장이 나타나더군요. 바르깔라 여행의 출발지였습니다. 비수처럼 꽂히는 햇살 때문에 얼굴에는 온통 주름이 자글자글 굽이쳤습니다. 릭샤 비를 셈하고 고개를 바다 쪽으로 돌리자, 눈과 입이 크게 벌어졌습니다. 이마의 주름도 순식간에 사라지고요. 바다가, 그것도 끝도 없는 바다가 발밑에 드넓게 펼쳐져 있었거든요. 웬만한 바다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저도 이곳에서는 생전 처음 바다를 본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절벽이 있어 더 특별한 바르깔라 해변 |
뭔가 달랐습니다. 각도였습니다. 바다를 바라볼 때는 해변에서 같은 눈높이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절벽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기 때문에 달랐던 것이죠. 훨씬 광활해 보이더군요.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바르깔라의 첫 번째 매력은 절벽 위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이라고 정해버렸습니다.
단순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바르깔라 일상
절벽 위 풍경에 빠진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해. 굳이 해변까진 안 내려가도 되겠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변에 내려가 본 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은 ‘여우와 신포도’의 생각이었다는 것을요. 직접 모래를 만지고 물속에 퐁당 빠져보니, 또 다른 매력이 달려들더군요. 부드러운 모래와 깨끗한 물이 주는 평화로움이랄까요. 파도 소리는 어찌나 또 시원하던지요. 해변의 한적함도 바르깔라 해변을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아침산책 |
바르깔라에서의 일상은 단순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절벽을 타고 해변으로 내려갑니다. 아침 산책을 즐기는 이들과 눈인사로 ‘굿모닝’을 나누며, 바닷가를 한바탕 걷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에 천 조각을 펼치고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죠. 그러다 지겨워지면 선글라스를 걸치고 책도 좀 읽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 좋은 아침 햇살에 몸이 슬슬 달아오릅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바닷속에 들어갈 때입니다. 파도타기를 하며 바다를 즐기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후다닥 사라집니다.
이른 아침 해변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바르깔라에서는 순간순간이 아름다웠는데요.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해변이라 태양이 내리쬐는 낮에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정작 해변에 북적거리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거든요. 낮에는 자외선도 강하고 너무 덥기 때문인데요. 아침에 해변에 나가면, 자신만의 하루를 시작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답니다.
(왼쪽)아침일찍 해변에서 요가를 하고 있다 (오른쪽)해변에서 크리켓을 즐기는 젊은이들 |
먼저 제 눈을 사로잡은 이들은 요가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바르깔라에 요가를 목적으로 오는 이들도 꽤 있더군요. 웬만한 호텔에는 자체적으로 요가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고요. 요가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들도 쉽게 찾을 수 있죠. 그래서인지 해 뜰 무렵 바다에 나가면, 바다의 에너지를 받으며 요가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온몸을 펴고 자신의 몸을 만나는 시간. 명상이 따로 없더군요.
다음으로는 크리켓을 하는 인도 사람들이었어요. 크리켓은 인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인데요. 넓은 해변에서 청년들이 모여 신나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힛앤런(Hit and Run)’ 따악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가면 머리가 휘날리게 달리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싱그러운 에너지가 해변에 가득 채워지더군요.
죄를 씻기 위해 바르깔라에 오는 사람들
현지인들에게 바르깔라는 힌두교 순례지로 더 유명하다 |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힌두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죠. 바다에 그들의 공양물을 띄워 보내기도 하고, 물을 온몸에 끼얹기도 하고요. 안쪽으로 들어가면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힌두 사원 자나다나 스와미 템플(Janardhana swami temple)도 있어요. 이곳에는 현지 순례자들로 언제나 북적인답니다. 현지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목욕하면 그동안 지은 죄가 씻긴다고 여긴다고 해요. 그래서 ‘죄를 없애준다(sin destroyer)’는 의미의 파파나삼(Papanasam) 해변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왼쪽) 열심히 파도를 타며 서핑하고 있는 사람들 (오른쪽) 이른 아침 잡은 고기를 팔고 있는 어부 |
그뿐만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바다에 온 몸을 던져 부지런히 서핑을 하고 있더군요. 드넓은 해변을 가르며 개와 함께 달리기를 하는 이들도 있고요. 밀려오는 파도에 사라질 것이 뻔한 데도, 어떤 화가는 매일 아침 해변에 멋진 그림을 그리더군요. 아, 어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작은 고깃배 앞에는 이른 아침 낚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들어있었어요. 아침부터 물고기를 두고 작은 흥정이 오가더군요.
스마트폰 세대인 젊은 청년부터 허리가 굽은 어르신까지, 델리에서 순례 여행 온 인도 현지인부터 서핑하러 온 미국 여행자까지, 하나의 카테고리로 엮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해변을 함께 즐기고 있었습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이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도톰한 동화책을 보는듯한 기분을 안겨주더군요. 어쩌면 눈 앞에 펼쳐진 바다가 아라비아 해라 더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멋진 색으로 물들기를
바르깔라 여행의 화룡점정은 일몰이었습니다. 마치 시간 맞춰 극장에 가듯, 일몰 시각에 맞춰 해가 지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리 매일 다른 모양과 묘한 빛깔의 하늘을 보여 주던지요. 첫날은 분홍빛으로 하늘이 물들더니, 다음날은 회색이 하늘에 깔리더군요.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면서 비가 쏟아지던 날도 있었고요. 바르깔라에 머물던 일주일. 단 하루도 같은 일몰을 보지 못했습니다.
매일 다르게 펼쳐지는 일몰 풍경 |
마지막 날 일몰을 보면서, 문득 우리 사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도 매일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매일 일몰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듯 우리의 하루하루도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문득 내일은 오늘과 다른 특별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싶더군요. 오늘도 멋진 색으로 하늘이 물들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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