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여름휴가 놓치면 안 되는 열대과일
채지형의 리틀인디아 제8화
천원 정도면 열대과일 디저트 완성 |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먹는 것. 여행하는 지역에서만 나는 과일을 맛보는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열대지방으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열대지방은 적도에서 남북회귀선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지구의 햇살을 온 땅에 흡수하는 곳이죠. 여기에 비도 자주 내려서 수많은 과일이 씩씩하게 잘 자랍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과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듯, 과일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 박물관에서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듯, 과일 가게에서 그들의 자연을 생각하며 한참을 서성인답니다. 달콤한 향 덕에 코가 즐겁고 알록달록한 색 때문에 눈이 똥그래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도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준 열대과일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열대의 아이콘, 코코넛
첫 번째로 보여드릴 과일은 코코넛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모니터 배경화면에 이미 큼지막하게 이 열매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푸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모래사장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꼭 이 열매가 자리하고 있죠. 열대의 아이콘이자 휴가의 아이콘인 코코넛.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양손으로 코코넛 한 통을 잡고 벌컥벌컥 마시고 나면, ‘아, 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 맞구나’하는 실감이 난답니다.
먼저 야자수를 마신다 |
인도를 여행할 때 코코넛은 아침 디저트였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코코넛 한 통 먹어볼까’하고 코코넛 가게로 발길을 향했거든요. 그렇게나 맛있었냐고요? 맛만 따지자면 드라마틱한 맛은 아닙니다. 달지도 시지도 짜지도 않은, 밍밍한 맛이죠. 끝까지 마시고 나면 살짝 고소한 맛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맛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코코넛을 마시며 여행 기분을 만끽하는 거죠.
남인도 바르깔라에서는 매일 아침 코코넛 가게 첫 손님을 자처했습니다. 코코넛 가게 할아버지는 환한 얼굴로 저희를 맞아주셨죠. 낫을 들고 힘차게 코코넛을 잘라주시는 할아버지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성실한 노동으로 다져진 팔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어요.
야자열매 옆을 잘라 숟가락도 만들어준다 |
과육이 풍성하게 들어있다. |
코코넛을 다 마신 후에는 “말라이 니깔로(malai nikaalo)”라고 말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힌디로 ‘말라이’는 코코넛 과육을, ‘니깔로’는 꺼내달라는 뜻이거든요. 코코넛 가게 주인장이 이 말을 들으면 낫을 다시 한 번 들 겁니다. 정 가운데를 자르고 양옆에서 앙증맞은 스푼도 만들어줄 거예요. 코코넛 스푼으로 열매 안에 붙어있는 과육을 긁어먹습니다. 그다지 양이 많진 않지만,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행복감을 안겨줍니다. 지금까지 야자 열매를 마시기만 했다면, 이번 휴가 때는 꼭 씹어보세요.
겉은 거칠지만 속은 달콤, 람부탄
털북숭이 겉모습과 달리 달달한 람부탄 |
두 번째 과일은 여행 중 망고 다음으로 많이 먹은 과일이에요. 털이 복슬복슬 나 있는 람부탄입니다. 겉모습과 다르게 속살은 하얗고 탱글탱글하답니다. 달달한 맛이 그만입니다. 무작정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콤한 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더 맛있답니다.
람부탄은 버스 여행의 동반자였어요. 로컬 버스를 타면 상인들이 과자와 과일, 물과 주스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물건들을 들고 올라옵니다. 그중에서 제가 언제나 선택하는 것은 람부탄이었죠. 1~2천 원이면 가득 담긴 한 봉지를 살 수 있었거든요. 에어컨도 나오지 않은 버스를 타고 흙길을 달리며 먹는 람부탄의 맛.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합니다.
하얀 과육 안에 커다란 씨가 있는데요. 입으로 오물오물 씨를 발라내야 하죠. 털북숭이 껍질을 까고 커다란 씨를 발라야 해서, 제 친구들은 ‘손만 시끄러운 과일’이라고도 한답니다. 먹기 편한 과일은 아니지만, 저는 그래도 람부탄이 좋습니다. 지루한 버스 여행에서 작은 재미를 안겨준 고마운 과일이었으니까요.
마늘처럼 생긴 달달한 과육 |
세 번째는 망고스틴입니다. 당도로만 따지면, 람부탄보다는 망고스틴입니다. 예쁘게도 생겼죠. 동글동글한 모양에 꼭지가 달려 있는데요. 먼저 꼭지를 떼고 양손으로 가운데를 가르면, 안에 숨어있는 새하얀 과육이 등장합니다. 마늘처럼 생겼는데, 전혀 다른 맛입니다. 잘 익은 망고스틴의 달콤함을 따라갈 과일이 거의 없을 정도죠. 하나씩 떼 먹다보면 달달한 맛에 반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그러나 망고스틴은 람부탄만큼 자주 먹진 못했습니다. 다른 과일에 비해 가격이 비싸더라고요. 게다가 싱싱한 녀석을 골랐는데도, 속이 상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그래서 망고스틴을 살 때는 다른 과일을 살 때보다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한답니다.
쫀득쫀득한 빨간 바나나
쫀득한 식감과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빨간 바나나 |
망고스틴 다음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다지 흥미 없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도에는 특별한 바나나가 있습니다. 빨간색 바나나예요. 우리가 보통 먹는 바나나에 비해 짧고 통통합니다. 껍질이 빨간색입니다. 바나나를 재배하는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제 입맛에는 인도의 빨간 바나나가 가장 달더군요. 또 다른 특징은 쫀득한 식감입니다. 어찌나 쫀득한지 찰떡을 먹는 것 같았어요.
어디에서나 풍성한 바나나 |
빨간 바나나의 맛과 함께 저를 즐겁게 해줬던 것은 바나나 가게의 디스플레이였습니다. 바나나를 얌전히 올려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줄기 채 잘라서 팔더군요.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바나나들이 싱싱해 보였습니다.
바나나는 가벼운 주머니에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합니다. 그래서인지 바나나 인심도 후했는데요. 남인도에 있는 한 과일가게에 갔었을 때였습니다. 다른 곳처럼 바나나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과일 주스가 나오길 기다리며, 원숭이가 나무에 달린 바나나 따 먹듯, 바나나를 하나씩 따 먹더군요. 주인도 사람들이 따먹든 말든 신경 안 쓰고요. 편하게 먹고 마지막에 손님이 먹은 개수를 말하면 계산하는 방식이었어요.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바나나를 하나 똑 따서 맛보라고 건네주더군요. 맛은 역시 꿀맛이었고요.
석류로 비타민 충전
탐스러운 석류 |
빨간 바나나 이야기를 하니, 빨간색이 탐스러운 석류가 생각나네요. 우리나라 석류도 맛있지만, 인도에서는 더 쉽게 석류를 접할 수 있답니다. 석류 원산지도 인도 서북부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보던 석류와는 클래스가 달라요. 어찌나 큰지, 저의 두 주먹을 더한 것보다 더 큰 석류도 있더라고요.
김밥천국 메뉴판처럼 긴 주스 가게 메뉴판을 보다가 가장 비싼 메뉴에 눈이 꽂혔습니다. 그런데 무슨 과일인지 모르겠더군요. 알고 보니 석류였습니다. 북인도에서는 ‘아나르’라고 하는데 남인도에서는 ‘마두람(Madulan)’이라고 불렀습니다. 타밀어로 석류가 마두람이더군요. 마두람 주스를 주문했습니다. 우두둑우두둑 큼지막한 석류를 까서 그릇에 쏟아 넣더군요. 와르르 쏟아지는 빨간색 빛나는 알갱이들. 저렇게나 많은 알갱이로 주스를 만들다니 놀라웠습니다. 단맛과 쌉싸래한 맛이 섞여 있었는데요. 건강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이곳에서 매일 석류 주스 한 잔씩 마시면, 비타민 영양제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가게. 과일들이 탐스럽다 |
차원이 다른 맛의 파인애플과 고소한 잭 플룻, 변비 걱정을 사라지게 만든 아보카도, 특이한 맛의 우드애플, 주식처럼 먹었던 망고, 물컹하지만 달았던 시르삭. 끝도 없는 사랑스러운 열대과일들. 매일 특이한 열대과일 1kg씩만 먹어도 여행 본전 톡톡히 뽑는다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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