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아이오닉5 “쾅”…현대차 충돌테스트 현장 직접 보니
“5, 4, 3, 2, 1… 쾅”
잠시의 알림시간이 있은 직후, 현대차의 최신 전기차 아이오닉5가 커다란 벽에 처박혔다. 처참한 모습으로 박살 난 차를 보는 이들의 눈빛이 빛난다. 현대자동차가 12일 진행한 아이오닉5의 충돌테스트 공개 현장이다.
자동차 충돌테스트는 그 차의 안전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테스트의 방식은 정해져 있지만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공개하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 테스트를 현대차가 국내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자동차의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기관은 전세계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 하지만 그 중 크게 인정받는 것이 몇 종류 있다. 미국의 ‘미국 고속도로 안전을 위한 보험 협회(IIHS)’의 테스트와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에서 진행하는 NCAP 테스트, 유럽에서 진행하는 유로 NCAP 등이 가혹한 테스트로 유명, 결과가 인정받는 추세다.
NCAP 테스트는 New Car Assessment Program의 약자로, 신차를 대상으로 안전도 평가다. 차에 장착되어 있는 안전장비를 비롯해, 다양한 각도에서의 충돌에서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 등 다방면으로 차를 평가한다. 상당히 가혹한 테스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에서도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이 결과가 곧 그 차의 안전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에서 KNCAP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아이오닉5 충돌 테스트는 미국 IIHS의 테스트를 위해 준비됐다. 한층 강화된 시속 64km 40% 오프셋 충돌 테스트를 대응하기 위함이다. NCAP의 경우 국가 공인 기관에서 진행하는 테스트지만 IIHS는 사설기관이다. 하지만 그 어느 테스트보다도 가혹한 조건을 내세운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의 변화에 따라 그 조건을 바꾸기도 한다. 물론 그 조건은 대체로 더 가혹해진다. 전기차를 앞세워 자동차 산업에서 패스트 팔로워(빠르게 쫓아가는 후발주자)를 벗어나 퍼스트 무버(산업의 트렌드를 이끄는 선발주자)로의 전환을 노리는 현대차에게는 당연히 우선순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시속 64km로 진행되는 40% 오프셋 충돌 테스트 자체는 기존에도 진행이 됐다. 시속 64km의 속도로 100톤의 무게를 가진 구조물에 차를 충돌시키는 방식. 전면부의 40%에 해당하는 면적을 충돌시키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다만 새롭게 추가된 조건이 있다. 바로 뒷좌석에 여성 탑승자를 태운 채 충돌, 차가 받게 되는 충격와 피해는 물론 운전자와 뒷좌석 탑승자의 피해도까지 측정해야 한다. ‘강화된’ 테스트인 이유다.
충돌 시험인 만큼 사람을 대신해 첨단 테스트 장비가 대신 수고(?)를 했다. ‘더미’라고 부르는 충돌 테스트용 인형이다. 수년 전까지도 H-III라고 하는 더미가 사용됐는데, 보다 정확한 피해도를 측정하기 위해 새로운 더미가 도입됐다. 수많은 충돌을 직접 받아낼 새 주인공은 쏘오(THOR, Test Device for Human Occupant Restraint). 기존 대비 3배에 달하는 157개의 센서가 탑재돼 안면센서와 각센서(뇌상해), 목구조 정밀, 흉부변위 4부위(3축측정), 골반/관골 하중 측정, 발목회전과 무릎, 종아리 하중 가속도 정밀, 아킬레스 상해, 복부 및 관골부 상해, 가슴상해, 뇌상해 및 안면 상해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를 측정한다.
충돌 테스트가 진행된 현대차그룹의 신차 개발 연구의 산실 남양연구소 안전연구동에서 진행됐다. 2005년 완공, 1만 2100평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고, 3개의 트랙을 갖추고 있다. 전세계의 안전도 테스트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충돌 테스트가 가능한 이 곳에서는 최고 5톤의 무게를 최대 시속 100km로 발진 시킬 수 있는 설비가 마련되어 있다. 매년 약 650회의 실차 충돌 테스트와 함께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가상 테스트까지 가능한 공간이다.
테스트의 주인공은 아직 공식 출시되지 않은, 동시에 현대차가 올해 첫 신차로 선보일 2024년형 아이오닉5 듀얼 모터모델이다. 생산 직후 이 곳으로 이동, 수많은 측정장비를 장착한 채 예견된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아깝다기 보단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충돌 테스트를 시작합니다”라는 알림이 있은 후, 5초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50m 길이의 트랙에서 출발한 아이오닉5는 순식간에 벽체를 향해 돌진한다. 평소 운전하며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속도임에도 밖에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아이고 저 아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쾅’하는 굉음과 함께 차가 박살이 난다. 주변에 서있는 연구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충돌 직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특히 최근 테슬라 차종의 잇단 화재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다.
에어백을 펼치기 위한 화약 연기가 빠진 후, ‘테스트 종료’가 선언됐다. 연구원들이 잽싸게 달려가 측정 장비로부터 결과값을 저장한다. 이 데이터는 IIHS로 전달, 안전도 평가에 사용될 예정이다.
연구원들이 차에서 결과값을 확인하는 사이,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눈에 놀라운 모습이 담겼다. 앞부분은 완전히 부숴졌지만 차문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손쉽게 열렸기 때문이다. 고속 주행 중 충돌이 발생할 경우 문이 파손, 제대로 열리지 않아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자동차 사고다. 차문이 매끄럽게 열렸다는 것은 탑승자 탈출 또는 구조에도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원들의 작업이 마무리되고, 차로 다가가 직접 살펴봤다. 헤드램프와 그릴, 본닛, 라지에이터, 전륜모터를 비롯해 차체의 뼈대에 해당하는 프레임의 사이드멤버까지 완벽하게 ‘박살’났다. 앞유리에도 금이 잔뜩 생긴 상태. 그러나 운전석 바로 앞의 기둥(A필러)와 지붕은 탄탄하게 버텨냈다. 스티어링 휠과 지붕 쪽에 장착된 에어백도 매끄럽게 터졌다. 뒷좌석을 위한 에어백도 마찬가지. 충돌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칠한 페인트가 묻은 모습을 보니 옆으로 빠져나간 흔적도 없다. 충격을 완전히 흡수했다는 뜻이다.
조수석 쪽에서 안쪽을 조금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전륜모터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깊숙히 밀렸지만 실내에는 조금의 변형도 없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에도 금이 가지 않았고, 조작부 역시 전혀 파손되지 않았다. 실제 사람이었다면 찰과상 정도는 입었겠지만 더미의 외관도 깔끔하다.
현대차에 따르면 이 날 진행된 테스트의 결과는 IIHS 기준 ‘우수(GOOD)’에 해당한다. IIHS에서는 GOOD, Acceptable, Marginal, Poor 등 4단계로 평가하기 때문에 최우수등급에 해당한다. 속도 규정인 64.4±1km/h, 충돌규정인 40±1%도 충족했다. 에어백을 비롯한 안전장비도 모두 정상 작동했으며 무엇보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팩도 파손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배터리의 경우, 고전압 배터리 파손으로 인한 전해액 누유도 없었으며, 전기차에서 우려되는 감전사고 등에 대한 고전압 절연저항 역시 정상 수치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번 충돌테스트의 결과가 모든 전기차의 안전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현대차의 E-GMP 플랫폼이 탑재된 모든 모델의 안전도를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최근 연달아 발생한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에 약간의 안심을 주기엔 충분하다. 적어도 아이오닉5의 안전성은 확인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차는 상을 수집하러 다니기라도 하듯 세계 각국의 안전도 테스트에서 최고등급을 받아내고 있다. 이는 그만큼 안전에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국내에서 진행하는 KNCAP 테스트의 결과도 발표될 예정이다. 다시 한번 아이오닉5의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