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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10년, 그리고 컴퓨팅 시장의 변화

세상은 변화에 예민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 중심에는 미디어 역할을 하는 기기가 있었다. 90년대에는 컴퓨터 그 자체가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로 바꾸었고, 2000년대는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세상의 대화 방법을 바꿨다. 그리고 2010년 이후 우리는 모바일로 삶의 중심을 옮겼다. 그 시작은 2007년 스티브 잡스가 들고 나온 기기였다. 바로 ’모바일폰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기와 아이팟을 합쳐 놓은’ 아이폰이었다.

 

아이폰이 10살을 맞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식상한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지난 10년을 우리의 삶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송두리째 바뀐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아이폰이 우리 생활을 바꿨다는 것도 식상할 수 있다. 가려져 있긴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이폰은 오랜 IT 업계의 환경을 단 10년만에 바꿔 놓았다. 특히 바뀌지 않을 것만 같던 컴퓨터와 통신 업계의 오랜 숙제를 단숨에 풀어버렸다.

2위 통신사와 요금제 개편으로 시작된 통신의 변화

나는 스마트폰, 혹은 PDA를 꽤 오랫동안 써 왔다. 1997년 처음 봤던 3COM의 팜파일럿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 팜OS를 쓴 기기들에 푹 빠져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본적인 연락처와 일정 관리, 그리고 간단한 게임과 전자책 등 용도는 제한적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당장 뭔가를 바꾸진 못했지만 이게 언젠가 세상을 바꿀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기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모토롤라 등이 주도하던 모바일 칩셋은 성능이 너무 떨어졌고, 디스플레이는 비쌌다. 그나마 기기는 꾸준히 발전했지만 운영체제는 여전히 PC와 모바일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가장 큰 가능성을 품고 있던 통신 역시 통신사들의 말도 안 되는 데이터 요금에 가로막혔다. 스마트폰의 핵심인 ‘연결’이 막힌 것이다.

아이폰 10년, 그리고 컴퓨팅 시장의

CDMA가 진화하면서 초당 수십 킬로바이트를 전송하는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휴대폰과 팜 PDA를 연결해 웹페이지를 열어보는 건 아주 ‘비싼’ 일이었지만 가끔 허세처럼 사람들 앞에서 이 ‘모바일 인터넷’으로 자랑했다. 이 때부터 내가 생각했던 궁극의 컴퓨팅 환경은 바로 ‘이 손 안의 기기에서 인터넷과 미디어를 즐기는 것’이었다.

 

세상은 애플이 만든 하드웨어에 초점을 맞추지만 아이폰이 세상을 바꾼 가장 큰 파격은 통신에 있다. 스티브 잡스는 업계 2위 통신사였던 AT&T를 설득해 무려 한 달에 500메가바이트라는 엄청난 용량의 무선 데이터를 기본 요금제에 묶었다. ‘아이폰 전용 요금제’가 등장한 것이다. 영화 한 편 잘못 봤다가 200만원씩 요금이 청구되던 시기였는데, 통신 요금 부담 없이 자유롭게 구글을 쓸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이 아이폰이 기존의 스마트폰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주는 출발점이 됐다.

 

결과적으로 아이폰은 전 세계 통신 시장의 요금 체계를 바꿨다. 2위 통신사들을 위주로 시장을 넓히는 전략은 애플과 통신사의 협력 관계를 더 단단하게 다졌고, 통신사들이 1위를 넘볼 만큼 경쟁력을 크게 높여 주는 효과도 낳았다. 10년 전 통신 기능을 끄고 써야 했던 스마트폰 통신 요금을 돌아보면 요즘 통신 요금제는 새삼 놀랍다.

플랫폼의 등장, 소프트웨어의 거래

아이폰은 모바일 기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아이폰 이전의 모바일 기기는 우리가 PC를 쓰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핵심 입력 장치는 뾰족한 스타일러스 펜이었다. 터치 스크린은 일정 영역이 아니라 펜 끝이 향하는 점을 읽어내는 감압식이 쓰였다. 펜은 마우스를 대신했다. 운영체제의 UI 역시 마우스로 누르는 것처럼 작은 버튼 위주로 설계됐다. 이게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펜이 없으면 입력이 어려웠고, 기기를 배우는 것도 어려웠다.

 

당시 아이폰의 운영체제는 맥OS를 기반으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 구성 역시 맥OS와 비슷할 것으로 보였다. 애플이 이전에 내놓았던 PDA, 뉴튼 역시 맥의 경험을 스타일러스펜으로 옮겼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이 가져온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손가락이 닿는 영역을 읽어냈고 이는 운영체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버튼은 큼직해졌고, 펜 없이 손가락으로 모든 조작을 할 수 있었다.

아이폰 10년, 그리고 컴퓨팅 시장의

이는 모바일 운영체제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후 등장한 안드로이드는 물론이고, 펜 입력을 중심으로 했던 윈도우 모바일, 그리고 아예 마우스를 모바일로 옮겼던 블랙베리도 UX를 뿌리부터 새로 그려냈다.

 

콘텐츠의 방향도 바꾸었다. 애플은 아이튠즈라는 막강한 미디어 콘텐츠를 갖고 있었고,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어떻게 배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 왔다. 애플은 절대 안 될 것만 같던 디지털 음원 시장을 유료화했던 바 있다. 아이폰은 자연스럽게 기기 자체에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것만으로도 당시에는 큰 일이었다. 콘텐츠 구입과 다운로드, 소비가 한 기기에서 이뤄지는 모바일 기기는 아이폰이 처음이었다.

 

아이폰은 앱의 생태계에도 손을 댔다. 아이폰은 출시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2.0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앱스토어’를 꺼내 놓았다. 앱의 유통 구조를 단일화하고 유통과 수익 구조를 투명하게 했다. 보안과 앱 검수도 철저하게 했다. 소비자들은 앱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이 시장에는 돈이 돌았다. 그 결과 지금 이 시장은 지난 9년동안 약 1천억 달러, 우리돈으로 약 112조원의 매출을 만들어냈고, 애플은 그 중 70%인 700억 달러, 우리돈 78조원이 개발자에게 돌아갔다. 큰 돈이 도는 소프트웨어 시장은 자연스럽게 시장을 키웠고, 이는 매년 WWDC 개발자 회의에 모여 드는 5천여명의 팬이자 개발자들로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아이폰 10년, 그리고 컴퓨팅 시장의

이 앱스토어 구조는 유통의 독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불법 소프트웨어 유통과 믿을 수 없는 악성 앱이 돌던 기존 소프트웨어 시장의 폐단을 정리했고, 작은 규모의 인디 개발사나 개인 개발자가 유통에 신경쓰지 않고 실력만으로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이 됐다. 이제는 모든 운영체제가 앱스토어와 비슷한 앱 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디바이스 시장의 변화

아이폰의 가장 큰 역할 중의 하나는 컴퓨팅에 대한 시장을 넓히고, 업계의 상상력을 키웠다는 점이다. 역설적이지만 아이폰의 폭발적인 인기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다소 심심하게 정체됐던 휴대전화 시장, 그리고 모바일 컴퓨팅 시장에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냈다. 지금 웨어러블 기기나 사물인터넷, 그리고 자동차까지 우리가 상상만 하던 것들이 현실화되는 과정에도 아이폰 등장 이전까지 생각을 가두었던 큼직한 컴퓨팅 환경이 허물어지는 것이 계기가 됐다.

 

돌아보면 구글 안드로이드의 등장은 극적이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환경으로 꼽혔지만 초기 안드로이드는 문제가 많았다. 구글의 ‘만들어가는 운영체제’는 성능이나 최적화의 문제가 뒤따랐고, 이는 묘하게도 하드웨어의 발달을 극적으로 끌어 올렸다.

아이폰 10년, 그리고 컴퓨팅 시장의

애플로서는 안드로이드가 지난 10년간 가장 불편한 물건이었겠지만 돌아보면 모바일 시장을 넓히고,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 것은 안드로이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이 안드로이드 역시 아이폰이 없었다면 세상에 제대로 싹 틔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6~700달러씩 하는 아이폰과 100달러에 파는 안드로이드가 공존할 수 있는 환경, 이 역시 아이폰의 등장에서 시작된 기가 막힌 균형점이다.

 

이제는 과거처럼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아이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표현 방법은 ‘혁신’으로 모이곤 하지만 애플은 꾸준히,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새로운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다. 때로는 시장이 원하는대로, 또 언젠가는 시장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 배짱이 종종 놀랄 만하지만 단숨에 모든 것을 쏟아내는 전략보다는 적절한 속도 조절은 중요하다. 애플이니까, 아이폰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폰 10년, 그리고 컴퓨팅 시장의

어쨌든 아이폰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올해 등장할 아이폰을 두고 사람들은 혁신에 목말라할 것이다. 어느 순간 ‘다음에 더 새로운 게 있을까?’라는 불안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매년 새 아이폰에는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크고 작은 재미가 있다.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꺼내 놓은 기술은 막대한 공급과 경쟁의 힘을 통해 모든 모바일 생태계로 번져 나가곤 한다. 아이폰은 팬으로서의 입장을 떠나 지난 10년 동안 변화와 경쟁, 그리고 균형을 만들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진짜 재미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는 아이폰의 다음 10년이 아닐까.

 

BY 최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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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기자 심재석입니다.. IT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