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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대격변, 정의선 '가성비 좋은 현대차' 브랜드 빨리 바꾸고 싶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5위의 완성차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싼 가격에도 탈만한 좋은 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자동차시장에서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하지만 100년 만의 대격변기를 겪고 있다는 자동차산업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이미지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고민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이미지를 도약하기 위해 자율주행차나 하늘을 나는 차 등 미래사업을 놓고 ‘퍼스트 무버’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열쇠는 속도라고 할 수 있다. 12일 유럽과 미국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동차 브랜드 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현대차와 기아차에 대한 이미지는 아직 선두권 브랜드에 미치지 못하는 대중차 브랜드에 머물러 있다. 독일 자동차전문지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가 3월에 발표한 2020년 자동차 브랜드 인식 조사의 ‘가성비’ 항목에서 나온 결과를 살펴보면 이런 인식이 확인된다.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가성비 좋은 브랜드’로 인식

현대차가 이 항목에서 폴크스바겐그룹 산하 브랜드인 체코 기반의 완성차기업 스코다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10만2974명의 독자 가운데 38%는 가성비가 좋은 브랜드로 스코다를 꼽았고 그 뒤를 현대차가 차지한 것이다. 현대차는 2019년보다 2%포인트 늘어난 25%의 지지를 받았다.


현대차가 가성비 항목에서 2위에 오른 것은 그만큼 유럽 소비자들 사이에서 ‘성능과 비교해볼 때 매우 저렴한 가격의 차량’으로 인식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낮은 가격 덕분에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라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는 독일의 유력 자동차잡지인 아우토빌트와 함께 유럽에서 신뢰할 만한 자동차 브랜드 인식 조사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인식은 미국에서도 비슷하다. 미국 자동차시장 전문 분석기관 ALG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가 2019년에 미국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차 출시효과도 있지만 ‘저렴한 가격’과 ‘높은 인센티브 비중’이 있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ALG는 자동차 잔존가치(신차를 일정기간 사용한 뒤 예상되는 차량의 가치) 평가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다. 미국 자동차 딜러들과 연계해 해마다 2500대 이상의 차량을 분석하며 이를 통해 업계 관계자들에게 자동차산업 컨설팅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2월 미국의 브랜드별 자동차 평균 거래가격 대비 인센티브 비중을 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차량 가격의 10.1%, 14.4%를 인센티브로 썼다.


고급 브랜드인 BMW와 다임러의 평균 거래가격 대비 인센티브 비중은 각각 9.4%, 8.3% 수준이며 대중 브랜드로 분류되는 폴크스바겐그룹과 토요타의 차량 1대당 인센티브 비중도 각각 9.2%, 7.4%에 머문다. 미국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브랜드 인식은 유럽과 비슷하게 ‘가성비 좋은 완성차기업’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가성비 좋은 차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우토모토운트슈프트의 자동차 브랜드 인식 조사 ‘가성비’ 항목을 보면 포드와 폴크스바겐도 각각 18%와 13%의 지지를 받아 3위와 4위에 올랐다. 현대차(25%)보다 낮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포드와 폴크스바겐 역시 가성비를 추구하는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LG의 자동차 평균 거래가격 대비 인센티브 비중 조사에서도 제너럴모터스(12.9%)와 닛산(15.6%)처럼 현대차와 기아차보다 많은 인센티브를 주면서 차량을 판매하는 회사들도 있다. 얼마나 가격 경쟁력 있게 차량을 내놓느냐는 완성차기업의 역량을 확인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정의선의 ‘퍼스트 무버’ 전략, 속도가 생명

하지만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이런 대중차 브랜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데 있다는 점에서는 고민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자율주행과 친환경차 등으로 산업이 급속하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업의 트렌드가 완전히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그동안 소비자들 사이에 고착화했던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 수석부회장은 2019년 이미 신년사를 통해 ‘브랜드 파워 강화’를 통한 사업 경쟁력 고도화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를 위해 다양한 방면에서 브랜드 인식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기회를 찾고 있다. 가장 최근의 일이 1월에 미국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IT가전전시회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밝힌 것이다.


현대차는 당시 ‘인간 중심의 역동적 미래도시 구현’이라는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목적기반모빌리티(PBV) △모빌리티 환승거점(Hub) 등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도심항공 모빌리티는 현대차가 새로운 미래상을 여는 첫 번째 완성차기업이 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대차는 도심항공 모빌리티를 놓고 개인용 비행체(PAV), 즉 하늘을 나는 운송수단과 서비스를 결합해 하늘을 새로운 이동 통로로 이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고 설명했다. 전략 구체화를 위해 글로벌 차량공유기업인 우버와 손을 맞잡는 것은 이런 계획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 2019년 9월에는 자율주행과 관련해 그동안 인색하다 여겨졌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9월23일 미국 뉴욕에서 자율주행 전문기업 앱티브와 각각 20억 달러씩 모두 40억 달러 규모의 합작기업을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이 조 단위 투자에 나선 것은 서울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공사 부지 인수 이후 처음이었다.


전기차 관련 투자에도 계속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기업을 눈여겨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19년 5월에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하이퍼 전기차기업인 ‘리막오토모빌리’에 1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고성능 전기차 개발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리막오토모빌리는 2018년 제네바모터쇼에서 ‘C-Two’라는 고성능 전기차를 선보이며 주목받은 회사다. C-Two는 1888마력의 출력으로 정지상태에서 1.85초 만에 시속 100km의 속도에 이르는 성능을 보이며 단번에 전기차기업의 메인에 올라섰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개발에서 리막오토모빌리를 협력 파트너로 점찍은 것은 단순한 전기차 제조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넘어 ‘우수한 성능의 전기차’를 만드는 제조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등 해외 고성능차 기업들이 모두 슈퍼카 양산을 통해 기술력을 입증하며 소비자들 사이에 최고급차를 만드는 회사로 인식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 수석부회장은 당시 “리막오토모빌리는 고성능 전기차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지닌 기업으로 고성능 차량에 대한 소비자 요구를 충족하고 현대차그룹의 ‘클린 모빌리티’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파트너"라며 ”다양한 글로벌 제조기업과 프로젝트 경험도 풍부해 현대차그룹과 다양한 업무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광폭 행보를 놓고 ‘현대차가 바뀌고 있다’는 해외언론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점만 보면 분명 긍정적 변화의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속도전을 통해 이러한 노력들을 실제 성과로 만들어내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변화를 놓고 긍정적 평가가 증권가에서 주류를 보이지만 경쟁기업들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에 의구심을 보내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과 앱티브의 합작회사 설립을 놓고 “현대차그룹이 미래차 경쟁구도 형성에 가세하면서 기술 개발속도를 높였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앱티브와 합작회사로 (자율주행 기술의) 생태계를 구성할 만큼 기술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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