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 타기 딱 좋은 날씨네"...'B급 광고'에 빠진 車업계
어두운 밤, 신호를 기다리는 쏘나타N라인 운전자 옆좌석에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올라탄다. 귀신이 운전자를 놀래키려는 순간, 운전자는 출발을 위해 엑셀을 밟는다. 재빠른 발진에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귀신은 순식간에 차 뒤로 날아가 버린다. 쏘나타N라인의 고성능 특화사양 '런치 컨트롤'을 단번에 보여준 장면이다. 런치 컨트롤이란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최고의 출력을 뽑아내 급가속을 도와주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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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동차 업계가 'B급 감성'에 빠졌다. 황당한 소재로 웃음을 자아내는 B급 감성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 전통적으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나 안정적인 주행 능력, 기술력을 강조해온 자동차 업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신세대를 겨냥한 차 업계가 다가가기 어려운 '도도함' 대신 누구에게나 웃음을 주는 '친근함'을 내세우기 위해 B급 광고를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일 공개한 쌍용자동차(003620)의 올 뉴 렉스턴 광고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신세계'를 패러디해 배우 박성웅이 등장하는 이 광고에서는 영화를 패러디한 장면 곳곳에서 렉스턴의 상향된 기능을 엿볼 수 있다.
반대파 조직원들을 만나기 위해 렉스턴을 타고 나타난 박성웅은 이들 코앞까지 돌진하지만, 차는 돌연 스스로 주행을 멈춘다. 렉스턴의 자율주행 보조시스템 인텔리전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IACC)과 주행보조(ADAS) 덕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리전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라고 소개해 봐야 이해하기 어렵고, 광고가 나가는 30초 안에 설명하기 시간도 부족하다"며 "소비자에게 친숙한 캐릭터를 활용해 기능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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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탑재된 다양한 기능에 대한 설명을 모두 제거해버린 광고도 있다. 올해 초 선보인 한국GM의 트레일블레이저 광고영상은 단 한순간도 차나 기능을 설명하지 않는다. 운전자나 탑승객이 주행감을 표현하거나 말을 하지도 않는다. 1분 정도 되는 영상 속 주인공들은 '트레일블레이저'가 반복되는 노래에 맞춰 무표정으로 신나게 춤춘다. 어이없는 차 광고에도 비난은커녕 노래와 춤이 중독성 있다는 호평이 이어졌고 트레일블레이저 광고는 소비자들 사이 패러디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 같은 광고가 흥행하는 이유는 신차 판매에 화제성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차 광고 중 일단 눈에 띄어야 하고 기능을 보여주는 건 다음 단계라는 설명이다. 또 국내 차 산업이 발전을 거듭해오면서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오토홀드, 차선유지 등 웬만한 기능들은 모든 차가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능만을 강조해서는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이들 광고의 신차 홍보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귀신을 내세운 현대자동차(005380)의 쏘나타N라인 광고는 공개된 지 6일만에 누적 조회수 282만회를 기록했다. 현대차가 1년 전에 선보인 광고들이 10만회를 채 넘지 못하는 수준임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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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의 올 뉴 렉스턴은 광고에 더해 브랜드 모델 임영웅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지난 11일 기준 5500대 계약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GM의 소형SUV 트레일블레이저도 북미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지난 10월까지 누적 10만298대 수출을 기록했다.
다만 무리한 마케팅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현대차의 준중형 해치백 i30의 광고는 차의 주행감과 속력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의 몸매를 부각시키며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광고 내용이 지나치게 가벼우면 해당 차량의 이미지가 저하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B급 광고는 '대박'이 터질 수도 있지만 잘못 만들면 소비자가 등을 돌릴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며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B급 광고를 하지 않듯, 가벼운 내용의 광고는 어울리는 차 모델이 따로 있다"고 했다.
민서연 기자(mins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