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 달력은 너로 정했다
병신년, 2016년 새해가 바야흐로 3주 남짓 남았다. 똑같은 패턴의 하루하루가 모인 일주일이 고작해야 세 번만 더 지나가면 2015년은 막을 내린다. 어린 시절에는 왜 빨리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지 곧 있으면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애써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새해를 맞을 준비는 해야겠기에. 각종 판촉물 및 한 해를 정리하는 결과물을 산출하느라 인쇄소는 바쁘게만 돌아간다. 각종 커피 전문점은 물론 치킨 업체까지 가세한 다이어리는 물론이고 공공기관과 단체들의 연례행사인 달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밀려드는 문구류의 홍수 속에서 의미도 있고 가치도 있는 제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분명 당신의 소장욕을 자극할 아주 특별한 달력들을 소개한다.
예로부터 달력 속 모델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어찌하여 그 안의 여인들은 찬바람 쌩쌩 부는 1월부터 마지막 장에 다다르는 12월까지 7, 8월에 어울릴법한 의상만 고수하는 것인지. 아니 사실 한여름에도 그렇게 입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건 옷이 아니라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도구에 가까우니 말이다. 일명 핀업걸이라 불리는 달력과 대형 포스터 속 여인은 과연 여자, 여성을 얼마나 대변하고 있을까?
오랜 기간 유명 모델의 누드 사진으로 VIP용 달력을 만들어 온 이탈리아의 타이어 회사 피렐리. 이들은 2016년을 맞아 50년 가까이 유지해온 자신들의 전통을 살짝 비틀어 선보였다. 지젤 번천, 나오미 캠벨, 케이트 모스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모델들의 나체를 보일 듯 말듯 예술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진짜 여성’을 조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2016년 피렐리 달력 제작을 담당한 사진작가는 애니 레보비츠. 1949년에 태어난 그녀는 롤링스톤지의 포토그래퍼로 명성을 날렸다. 당신이 어디선가 한 번은 봤을, ‘이것이 내가 오노 요코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명언을 남긴, 알몸의 존 레논이 오노를 안고 포옹하고 있는 사진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모델로서 그녀와 합을 맞춰 달력 제작에 나선 이들은 다음과 같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여성 테니스 선수로 불리는 세레나 윌리엄스,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페미니스트인 에이미 슈머 등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그 이름을 확고히 한 여성들이다. 각자 활동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피렐리 달력의 모델로서 그녀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섹슈얼만을 강조하는 젊은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마다 노출 정도는 다르지만,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을 드러낸 그녀들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모델 섭외를 비롯해 컨셉 설정과 촬영 등 모든 것을 담당한 애니 레보비츠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2016 피렐리 달력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진짜 여성’이라고.
한편 여성을 색다르게 조명한 또 다른 달력이 있다. 옥스포드 대학 내 여자 럭비팀, OURFC(Oxford University Rugby Football Club)는 생애 첫 케임브리지와의 대항전 Varsity match를 앞두고 아주 특별한 작업에 나섰다. 바로 팀원 모두가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사진은 그라운드 위에서 열정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흑백의 대비는 사진 속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키며 몸싸움이 격렬한 럭비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해냈다. 비록 타이즈와 럭비화만을 착용했을 뿐이지만, 사진은 외설스럽기보다 한 편의 명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촬영 당시 이들은 무엇보다 럭비의 관점에서 기술적으로 정확한 사진이 찍히길 원했다. 달력 제작의 목적이 단순히 팀과 라이벌 경기를 알리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OURFC은 달력이 1개 판매될 때마다 1파운드를 자선단체 Beat에 기부할 예정이다. Beat은 섭식 장애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후원하는 단체로 음식과 몸무게, 외모 등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치료와 교육 등을 제공한다.
Beat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짜 몸, 긍정적인 신체의 모습과 자신감은 OURFC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OURFC는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달력을 통해 여성의 다양성을 조명하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여성을 럭비로 초대하고자 했다. 이들의 달력은 벌써 19만 개 이상의 판매 부수를 올리며 순항 중이다. 한편 12월 10일, Twickenham 에서 열린 Varsity match에서는 케임브리지에게 완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사진은 때로 시대의 거울 역할을 담당한다. 위의 두 달력은 성적 이미지만을 강조한 핀업걸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체로서 여성을 비춘다.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규정한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말이다. 어떤가. 이제 스티커를 모으거나 신제품을 구매하면 주어지는 제품의 매력이 반감되지 않는가. 2016년 당신의 선택은 무엇일지. 구매할 수 있다면 나는 애니 레보비츠의 것을 택하겠다.
Photo CC via PROJenny Addison / flickr.com
Images courtesy of
ourfcwomensnakedcalendar.com, pirellicalendar.pirelli.com/
에디터 이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