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 집, 세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이나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우리를 멈칫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주소다. 우리는 매번 구 주소와 신 주소 사이에서 갈등하며 택배 아저씨, 배달원과 씨름을 벌인다. 이럴 거면 새로운 주소 체계를 왜 도입했나 싶지만, 지구 상에는 이마저도 없는 나라가 있다.
전 세계 70억 인구 중 주소가 없는 사람들은 무려 약 40억 명에 달한다. 실제로 인구의 30%가 유목민인 몽골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마저 아직 길 이름이 없는 도로가 대부분이다.
주소가 없으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없다. 일단 누구보다 반가운 택배 아저씨를 만날 수 없고, 언제나 옳은, 진리의 치맥을 야외에서 즐길 수도 없다. 주소는 이러한 일상생활 속 소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우편물을 받아 보려 해도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우편함까지 가야 하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해 우편 혜택을 아예 볼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투표에서 배제되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고,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what3words 공동 설립자 잭 웨일리-코헨과 크리스 쉘드릭 |
이처럼 주소의 중요성을 깨닫고 새로운 주소 체계를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의 소셜벤처 왓쓰리워즈(what3words)를 설립한 크리스 쉘드릭(Chris Sheldrick)이다. 그는 10여 년간 라이브 음악 행사를 기획해왔는데 빈약한 주소 때문에 행사장을 찾아갈 때마다 난감한 적이 많았다. 위도와 경도를 사용해 행사장을 찾아갔지만, 이 방법도 복잡하고 오류가 많아서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 쉘드릭은 수학자 친구 잭 웨일리-코헨(Jack Waley-Cohen)과 함께 직접 세 단어 주소 체계를 만들었다.
세 단어 주소 체계는 지구 표면 전체를 가로 3m, 세로 3m, 면적 9m2의 정사각형 조각 57조 개로 나눠 상자마다 영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들을 임의로 3개씩 조합해 주소를 만든다. 왓쓰리워즈의 자체 앱과 웹 서비스를 통해 개인 누구나 무료로 세 단어 주소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주소 체계에 따르면 베네핏 주소는 'fish.tried.vipers'다. 각 단어는 사전상 뜻을 가졌지만 서로 어떠한 상관 관계가 없으며 주소지의 특성이 반영된 것도 아니다.
세 단어 주소 체계의 알고리즘 기술은 섬세하면서 편리하다. 왓쓰리워즈는 사전에 수록된 25,000~40,000개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철자는 다르면서 발음이 같은 단어나 욕설 같은 부적절한 단어를 제외했다. 또 짧고 쉬운 단어는 인구 밀집 지역에, 길고 어려운 단어는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배정했고, 철자가 비슷한 단어들은 다른 대륙에 배정해서 사용자나 검색 장치가 위치를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현재 영어를 비롯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 등 총 11개 언어판이 만들어졌으며 계속해서 다른 언어판도 제작될 예정이다.
한편 왓쓰리워즈의 세 단어 주소 체계는 오프라인에서도 작동하는 덕분에 데이터 접속이 불량한 지역이나 오지, 기존에 주소가 없는 곳에서도 이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이미 글랜스톤베리 축제와 같은 대형 음악 축제는 물론 물류 회사, 내비게이션 앱, 여행 안내 그리고 재난 구호 활동을 하는 NGO기관 등에서 다양하게 세 단어 주소 체계를 활용 중이다. 실제로 탄자니아에서는 콜레라 발발을 추적하거나 말라리아약을 배급하기 위해 이 주소 앱을 활용해 오지 주민들에게 접근하고 있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세계 최대 빈민촌 중 하나인 호씽야의 4천 가구는 세 단어 주소로 된 자신들의 주소를 갖게 됐다. 최근에는 몽골이 국가 단위로는 처음으로 왓쓰리워즈의 주소 시스템을 채택했다.
주소는 행정, 법적 정체성으로, 주소가 없으면 우리는 어딘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왓쓰리워즈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의 존재를 증명할 세 단어 주소를 선물하며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Images courtesy of what3words
에디터 이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