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씁쓸한 동네 지킴이를 위한 영화
요즘 sns를 켜보면 나만 빼고 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국내고 해외고 다들 어딘가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하루 이틀 보다 보면 나만 이렇게 동네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동네지킴이로써의 내가 지겨워질 때, 문득 씁쓸해지는 순간에 보면 좋을 영화를 추천하려 한다.
펀치드렁크러브
- 2002 미국
-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 출연: 아담 샌들러, 에밀리 왓슨
- 장르: 코미디, 드라마, 멜로 / 개봉: 2003.05.08
- 상영시간: 95분 / 15세 관람가
배리 이건(아담 샌들러)은 누나 7명에게 억눌려 있는 소심한 성격의 주인공이다. 그의 일상은 비행 마일리지를 경품으로 준다는 푸딩을 사모으는 것. 어느 날 그는 길가에서 누군가가 급하게 놓고 간 풍금을 줍고 그 날 누나의 친구인 레나(에밀리 왓슨)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레나와 사랑에 빠지기 전 걸었던 폰섹스에서 얻어걸린 악덕업체 일당 때문에 모든 것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가끔 낮잠같이 몽롱한 영화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낮에 꾸는 꿈 같은 영화. 낮에 자는 잠은 비교적 옅은 잠이라 꿈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낮잠의 꿈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들은 보고 있자면 어쩐지 몽롱해지는 기분인데, 이는 영화의 색감 탓이거나 음악, 뒤죽박죽 서사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듯하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여름날 낮에 꾸는 꿈 같은 영화다. 영화 시작에 등장하는 묘한 느낌의 풍금부터 그 뒤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여름날 낮잠을 자고 일어나 몰려오는 옅은 열기와 몽롱함이 한대 어우러져있다. 그 옅은 열기와 함께 몽롱한 꿈의 한 자락을 놓치기 싫어 계속 곱씹게 되는 맛이 있다.
나만 우리동네 지킴이 같은 기분에 서글퍼진다면 이 영화를 보자. 영화의 주인공 배리처럼 비행 마일리지를 위해 푸딩을 카트 한가득 대량 구매하거나 외로움에 폰섹스를 거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으니까. 적어도 우리의 서글픈 마음이 사라지게는 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는 크레딧, 그 음악은 여름날 꿈같은 느낌의 정점이다. 여행을 갈 수 없어 동네를 지키고 있다면 이 영화로 꿈 같은 여행을 떠나보자. 영화가 끝나고 꿈에서 깼을 땐 한결 가벼운 기분이 되어 있을 것.
아직도 여행을 못 가 마음 한 켠이 시렵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
직접 못 간다면 화면으로라도 느껴보자.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영화는 파리의 밤거리를 주 배경으로 삼는다.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던 길(오웬 윌슨)은 종소리와 함께 나타난 어느 차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떠나게 된다. 이후 매일 밤 1920년대의 파리로 떠나게 되는데..
주인공과 함께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못 떠난 여행이 아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휴가 여행지는 파리가 되어 있을 것!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어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잡지 ‘라이프’의 모토이기도 하고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라이프 잡지사에서 가장 평범하게 일하며 살아가던 윌슨(벤 스틸러)에게 라이프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는 미션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특별한 순간들을 담은 영화.
상황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 때문에 여행을 미루고 있다면 그냥 한 번 질러보는 게 어떨까. 지르기 전에 이 영화를 본다면 용기 내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리틀포레스트
아무리 수를 써도 여행은 틀렸다면 집에서 요리나 해 먹는 건 어떨까.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한국의 제철 음식과 별미들이 화면을 가득 채워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배춧국, 수제비, 아카시아 꽃 튀김, 시루떡 등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하나둘 해 먹으면 여행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 중요한 건 타이밍과 기다림”이라고 말하는 영화를 보며 아직 우리에게 오지 못한 여행타이밍을 진득하게 기다려보자.
이정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