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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우리에게 남겨진 온도와 기억들

 

빛이 남긴 감정

# AP 에이피 사진전_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THE ASSOCIATED PRESS PHOTO EXHIBITION

2018.12.29 ~ 2019.03.03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지난주 금요일, 저녁이 오는 무렵 광화문 광장을 지나쳐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도착했다. 다름 아닌 AP 통신의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AP(Associated Press), 즉 미국 연합통신은 AFP(프랑스 통신), UPI(국제 합동통신), 로이터와 함께 세계 주요 통신사로 꼽히는 대표적인 다국적 통신이다. AP 통신은 수천 개 이상의 TV 방송국, 신문사 등과 계약을 맺으며 방대한 기사와 사진을 전 세계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기사 사진'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몇 가지. 사실적이고 보도에 초점이 맞춰진, 신문과 인터넷 뉴스 등에 실리는 사진. 하지만 이들이 담아내는 풍경은 결코 그 정의에 머물러 있지 않다. 빛이 흘러가는 시간을 담아내고, 사진 속 인물의 삶에 집중하고, 대상이 건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들의 사진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 것만 같다. 그렇게 포착된 순간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과 감정을 남기고, 마음에 조용히 스며든다.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시대의 풍경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AP 통신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순간을 포착하여 사진으로 담았다. 나치가 집권하던 시절 훈련 캠프에서 체조를 하는 군인들, 미국 록펠러 타워 건설현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터지는 모습, 붕괴된 다리를 건너며 피난을 가는 한국 전쟁 난민들, 미국 반전 여론을 들끓게 했던 베트남 전쟁 중 사이공 거리의 처형 장면, 9.11 테러 장면 등 시대의 중요한 장면과 순간들. 흑백 사진인 것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사진 속의 현장은 놀랍도록 생생히 담겨 있다. 그 순간들은 강렬하고 때론 절박하기도 하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우리에게는 사뭇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 또한 볼 수 있었다. 1000년 된 모로코의 염색 가죽 공장, 라마단의 종료를 축하하는 축제에서 한 방향을 보며 기도하는 히잡을 쓴 여자들, 아프리카 난민 캠프의 모습, 이슬람교의 지침서 코란을 읽는 파키스탄 아이들, 아프가니스탄의 풍선 장수, 팔려가는 어린 신부 등.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직 내가 모르는 지구 저 편의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과 이야기들. 실감 나지 않는 그들의 삶을 상상해봤다.

 

또한 이번 사진전에서는 특별전으로 <북한전>이 있었기에 북한의 풍경 또한 볼 수 있었다. 한때는 우리와 살을 부대끼며 살았던 한 민족이지만 지금은 둘로 갈라진 우리. 북한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우리와 닮아 있었다. 비록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은 다를지라도, 그들도 우리와 별다를 바 없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평일엔 열심히 일을 하고, 주말엔 영화를 보거나 놀이공원에서 주말을 즐기는 등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키워드로 보는 그 시절의 문화, 시대를 빛낸 인물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복싱 선수 무함마드 알리와 비틀즈 멤버들.

그 시대의 문화가 생생히 담긴 순간도 있다. 길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청년들, 재즈가 처음 탄생했던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의 재즈 클럽 공연, 길거리 한복판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는 1970년대 영국 청소년들, 밴드 비틀즈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달려가는 수많은 인파, 1985년, 에티오피아 난민 및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장면 등. 어디선가 열렬한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 것 만 같다.

 

<키워드로 보는 AP>에서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혜성처럼 나타나 밴드계의 새로운 역사를 쓴 전설적인 밴드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열창 장면, 수많은 샹송 명곡을 남긴 프랑스의 대중가수 에디트 피아프, 세계적인 밴드 비틀즈와 포크계의 음유시인 밥 딜런, 팝의 여왕 마돈나 등. 그 앞에 서서 그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대중들의 수많은 사랑을 받으며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던 스타들. AP 통신은 한 세기를 거슬러 오며 세상과 호흡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스며든 애정 어린 시선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폭풍 하비 보호소에서 만난 소녀와 소년 (2017)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강아지 (2012)

이곳의 흙은 다른 곳보다 따뜻해
이곳의 하늘 냄새는 시원해
너는 초록색 눈동자를 가졌고
너의 눈동자에는 초록 온도가 있어
하지만 네 숨은 조금 차가워
그래도 너의 작은 갈색 발가락들은 웃고 있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저 구름도 따뜻한 색이야
네가 파랑으로 날아오를 땐 나도 파랑이 될 거야
<네가 남긴 온도 中>

이들이 담아낸 순간은 어딘가 특별하다. 카메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을 잊지 않는다. 매서운 폭풍으로 인해 급하게 피신한 대피소에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어린 소년과 소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된다. 절망이 덮친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피어난 온기. 사진기자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담아냈다. 그리고 한 난민 꼬마 아이는 쓰레기 더미에 속에서 강아지를 발견했는데, 꼬마처럼 어린 강아지는 하마터면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혀 목숨을 잃을 뻔했다. AP 통신은 이렇게 사소하지만 중요한 순간을 소중히 포착해냈다.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과 따스함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어딘가 무겁고 딱딱한 주제의 사진을 예상했다. 기사 사진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AP 통신은 나의 편견을 깨부수고 세상 곳곳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건넸다. 여러 모양과 색을 지닌 이야기. 그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치 그 시대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만 같다. 눈앞에 살아 숨 쉬는 순간을 포착해서, 영영 과거가 되어버리고 말 모습을 영원토록 보존하는 일. 그게 사진이 하는 일이자, 사진만이 가진 독보적인 힘인 것 같다. 그저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이번 사진전의 부제가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이듯, 이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이제 그 대답에 망설임 없이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간과 순간들. 하지만 이들이 담아낸 사진 속의 인물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듯하고, 담겨진 순간은 영원이 되어 우리 곁에 기억되고 머무르고 있었다. 모든 순간은 그렇게 영원으로 박제되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이들은 사진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사진의 힘

수중정원 (1942). 누구보다 행복하게 물속을 헤엄치는 두 쌍둥이. 이번 사진전에서 가장 좋았던 사진이다.

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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