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이 지겨운 당신에게
추천하고픈 다양한 봄노래들
언젠가부터 거리에 울려퍼지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봄이 언제부터 이렇게 한 곡의 노래로 규정될만큼 단순한 것이었나. 물론 곳곳에 피어나는 벚꽃들과 ‘우리 같이 걸어요’라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장범준의 목소리는 봄날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것들이 봄의 전부는 아니다.
'봄' 하면 벚꽃엔딩과 함께 우리가 떠올리는 밝고 화사한 이미지와 달리 봄은 사계절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봄이 되면 우울증 환자가 증가한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봄철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자살률이 높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날이 따뜻해지면서 맞게 되는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뇌가 혼란을 겪어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에 홀로 묵은 때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나보다.
미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쑥대밭이 된 세상에도 봄이 오는 것을 보고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가 어떻든, 봄을 맞을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봄은 때로 참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봄은 꽃이 피어나는 동시에 지는 계절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계절이다. 이러한 봄은 수많은 노래의 배경이자 주제로 사용되어왔다. 천편일률적인 봄의 이미지에 싫증이 난 당신에게 조금 색다른 봄 노래 열 가지를 소개해 본다.
1. 보옴이 오면 -푸른 새벽
보옴이 오면 모두들 한번쯤 뵙고 싶어요
난 가끔씩 울지 못해 웃어 보이고
가만히 고통을 껴안아요
첫번째 곡 '보옴이 오면'은 이제는 거의 앨범을 내지 않아 더 이상 신곡을 들을 수 없는 '푸른새벽'의 노래이다. 이 곡은 2006년에 나온 정규 2집 '보옴이 오면'에 수록되어 있다. 푸른 새벽 특유의 잔잔하고 울적한 감성이 잘 녹아있다.
2. 그리운 봄날-사비나앤드론즈
차가워진 밤 나는 혼자
힘없이 내리는 까만 어둠에
별은 혼자
창가에 빛이 서리면
이리도 서글펐던가
손 내밀어
오 그리운 봄날
오 꽃이 지면
돌아갈 수 있을까
'사비나앤드론즈'라는 이름이 조금 낯설지만 2010년부터 앨범을 내기 시작해 작년 정규 2집을 낸 마니아층이 있는 뮤지션이다. 역시 잔잔하고 부드러운 노래다. 평화롭고 일상적이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그리운 봄날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해당 곡은 공식적인 공연 영상이나 뮤비가 없어서 동영상을 첨부하지 못했다.
3. 산책-소히
좁다란 길 향기를 채우는
가로등 빛 물든 진달래 꽃
이 향기를 그와 함께 맡으면 참 좋겠네
봄날에 잘 어울리는 보사노바 풍의 노래이다. 멜로디는 밝지만 그 안에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애정이 들어있다. 지금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이 아닌, 이미 한 번 마음을 뒤집어 놓고 지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감정에 대해 담담하게 노래한다.
4. 재채기- 가을방학
봄이 오기는 왔는지
꽃가루에 재채기만 나고
누가 가르쳐줬는지
새들은 노래하며 따라와
대체 왜들 이래 원하는 게 뭔데
봄과 재채기를 연결시켜 재미있게 풀어낸 노래다. 가사 중에 '대체 왜들 이래' 부분에서 '대체'를 실제 재채기 하는 것처럼 힘주어 발음하는 데서 웃음이 나온다. 핑크색은 과대평가 되었으며 진짜 '하트'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나 꺼내보자고 하는, 조금은 삐딱한 현실주의자가 사랑 비슷한 것에 빠지는 과정이 귀엽다.
5. 아카시아꽃-9와 숫자들
소리 없이 지는 별들처럼 사랑은 떠나가죠
조각조각 부서진 마음 훌쩍훌쩍 눈물이 나고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도 사랑은 안 할거야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마찬가지로 공식 영상이 없어서 동영상은 첨부하지 못했다. 잘 알려진 동요 '과수원길'에서 일부 가사와 음을 따온 노래이다. '모락모락', '무럭무럭', '콩닥콩닥' 등 반복되는 가사 덕에 시를 읽는 느낌도 난다. 노래를 들으면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봄 풍경이 떠오른다.
6. 잔인한 사월-브로콜리너마저
나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것도 없는 나의 지금은
깊어만 가는 잔인한 계절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가슴 설레기엔 나이를 먹은
아이들에겐 갈 곳이 없어
봄빛은 푸른데
브로콜리너마저는 미묘한 감정을 잘 다루는 밴드이다. '잔인한 사월' 역시 봄이 와도 더이상 설렘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의 노래이다. 모두가 들뜨고 떠들썩한 가운데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는 사람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아이라 하기엔 너무 커 버렸고 어른이라 하기엔 너무 희미한 그 어중간한 이들을 위한 곡.
7. 야상곡-김윤아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꽃은 다 져가고 봄날도 끝나가는데 올 기미가 없는 '님'을 그린다. '님'이라는 호칭 때문인지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느껴진다. 3분무렵부터 곡이 끝날 때까지 가사 없이 음악만 나오는데 그 부분이 정말 아름답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8. 봄비- 박인수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러져
원곡은 박인수가 불렀지만 장사익, 하현우, 박완규 등 많은 뮤지션들이 커버했던 유명한 노래다. 첨부한 영상은 장사익씨가 부른 버전. 다소 오래되고 거친 노래이지만 날것 그대로의 감성이 느껴진다.
9. LOST-국카스텐
우린 이제서야 저문 달에 깨었는데
이젠 파도들의 시체가 중천에 떠다니네
떠다니네 떠다니네
봄날의 틈 속에서 흩어지네
부드럽고 서정적인 멜로디 속에 청춘의 고민이 들어있는 노래다. 실제로 이 노래는 국카스텐의 보컬 하현우가 20대 시절 열심히 노력해도 잘 풀리지 않던 친구를 위로하며 만든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봄 노래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할 수도 있겠지만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포근한 봄날의 저녁 호숫가를 연상시켜서 뽑아봤다. 힘들지만 '꿈에도 가질 수 없고 꿈에도 알려주지 않으며 꿈에도 다시 시작되지 못할' 항해야말로 청춘이 아닐까.
10. 봄날은 간다-김윤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마무리는 김윤아의 노래다. 동명의 영화 '봄날은 간다' 에 삽입된 걸로 유명하다. 김윤아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슬픈 가사가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봄의 정취가 느껴진다.
봄철에 피어나는 꽃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봄의 모습이 세상에 존재한다. 봄은 짧고 다음 봄을 향한 기다림은 길다. '벚꽃엔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봄, 다양한 봄 노래를 들으며 지나가는 게 아쉬운 이 계절을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
[김소원 에디터 ksw94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