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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일상적이나 사소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계절을 타는 사람들이 있듯이 날씨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필자다. 물론, 비가 오거나 날이 궂다고 해서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집 밖으로는 나가기조차 싫지는 않다. 하지만 햇볕 쨍쨍한 밝은 날이면,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이면 아무리 숨기려 해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사실, 기분이 좋은 정도가 조금 심해서 주변인들로부터 오늘 좋은 일이 있냐, 심하게는 조증에 걸렸느냐는 말을 듣곤 했다. 그렇기에 날씨는 특히나 필자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면서 하루의 일과가 조금 바뀌었다. 하루의 끝은 침대에 누워 내일 엄마 대신 나를 깨워줄 알람을 맞추는 일로, 하루의 시작은 알아서 우산을 챙길 수 있도록 날씨를 확인하는 일로. 날씨를 많이 타는 필자에게 특히나 여름과 겨울을 왔다 갔다하는 간절기에는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날씨에 따라 그날 입을 옷을 정하고, 우산을 챙기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날씨 소식으로 인사를 전하기도 하는 것.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행위들은 날씨로부터 비롯된다.

 

이렇듯 날씨의 일상적이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영향력에 주목한 전시가 5월 3일, 한남동에 위치한 디뮤지엄에서 오픈했다. "Weather :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는 기상 현상으로서 일상에 자리하고 있으나 그만큼 주변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는 날씨의 영향력에 집중하고자 하는 기획의도를 가진 전시이다. 필자는 디뮤지엄 온라인 회원인 덕에 전시 하루 전인 5월 2일, 조금 빠르게 전시를 보고 올 수 있었다.

날씨, 일상적이나 사소하지 않은

날씨와 나의 이야기, 온몸으로 날씨를 느끼다

날씨, 일상적이나 사소하지 않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몽실몽실 떠있던 구름 모형과 감성적인 캘리그래피는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여주었다. 날씨와 나, 둘만의 이야기가 담긴 한편의 수필집을 콘셉트로 한 이번 전시는 크게 <날씨가 말을 걸다>, <날씨와 대화하다>, <날씨를 기억하다>라는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건 날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의 날씨, 어쩌면 그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기억한다는 테마가 사뭇 마음에 들었다.

 

1. <날씨가 말을 걸다>

날씨, 일상적이나 사소하지 않은

첫 번째 챕터인 <날씨가 말을 걸다>에서는 햇살, 눈, 그리고 어둠을 담은 사진 작품들을 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사진을 취미로 삼고 있는 필자이기에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작가마다 이를 전혀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 것들이 흥미로웠다. 특히, '눈'과 관련된 사진 작품들은 원형으로 된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쪽에 위치한 일본 작가, 요시노리 미즈타니의 사진들과 반대편에 위치한 폴란드 작가, 루카스 와작의 사진들의 대비가 인상 깊었다. 같은 눈을 표현한 사진들이지만 요시노리 미즈타니의 사진들이 눈의 포근함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면 루카스 와작의 사진들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눈 그 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대비가 원형이라는 공간 안에서 더욱 극대화되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넓은 전시 공간이 사진과 설치 미술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과연 이 모든 것들이 날씨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리키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날씨와 빛은 뗄 수 없는 존재이지만 몇몇 작품들은 날씨보다는 빛을 주제로 하였고 날씨와는 사뭇 동떨어진 느낌에 전시를 몰입하여 보다가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2. <날씨와 대화하다>

날씨, 일상적이나 사소하지 않은

두 번째 챕터인 <날씨와 대화하다>에서는 '대화하다'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전시를 보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작품들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돋보이는 챕터였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자리한 수많은 파란색은 이은선 작가의 "Collective Blue"라는 설치미술 작품이었다. 필자는 1년 동안 하늘 사진을 촬영하고 하늘이 가진 수많은 색들을 표현한 이 작품이 이번 전시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사람들이 정의 내린 '하늘색'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보다 다양한 하늘의 색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하늘색'에 대한 나름의 재정의를 내린다. 그 자유로움에 나도 모르는 사이 색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 대해 고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파랑 섹션을 지나면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촉각으로도 날씨를 느낄 수 있는 순서가 마련되어 있었다. 안개 섹션에서는 실제로 인공 안개를 지나가며 안개의 축축함을 느껴볼 수 있고 빗소리 섹션에서는 꽤 긴 어두운 통로를 지나며 다양한 빗소리에 귀 기울여 볼 수 있다. 시각과 촉각적인 정보는 최소화한 환경 속에서 빗소리라는 자극에만 집중해 소리의 미묘한 차이까지도 느껴볼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3. <날씨를 기억하다>

날씨, 일상적이나 사소하지 않은

온몸으로 날씨를 느끼며 날씨와 대화를 주고받은 이후에는 마지막 챕터 <날씨를 기억하다>가 시작된다. 이 챕터에서는 여러 작가들이 날씨에 어떻게 그들의 감정을 녹여 담아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전시가 끝난 후, 기억에 남은 건 의외로 다양한 작가의 사진들보다는 그 옆에 쓰여 있던 한 작가의 생각이었다. 필자는 때때로 노을을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갈 정도로 노을을 좋아한다. 빛이 물러가고 어둠이 자리를 채우는 그 찰나의 순간을 표현한 작가의 비유가 새롭지만 공감되었고 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빛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깎아내어 색의 세상을 만든다."라는 구절이 전시를 보고 나온 후에도 꽤 오랜 시간 마음에 머물렀다.

 

사실, 이 챕터에서는 작가들이 어떠한 날씨 속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지 생각하기보단 날씨와 관련해 자리 잡은 나의 기억들 사이에 잠식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시리고도 아프게 느껴질 수 있는 비가 필자에게는 따뜻한 추억으로 인해 시원하고도 그리운 것으로 느껴지듯 같은 날씨에 대해서도 느끼는 감정이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번 전시를 보고 느끼는 감정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전시를 다 보고 나왔지만 전시의 제목처럼 오히려 전시의 끝에서 필자는 마음속에 하나의 질문을 품게 되었다.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이영진 에디터 elle_07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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