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의 별, 고향으로 돌아가다 '데이비드 보위'
죽음은 매일 아침 입 맞추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해 질 무렵 나란히 산책을 하던 사람들만 갈라놓는 것이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데이비드 보위의 부고가 잇달아 들려온 올해 초 머나먼 한반도에서 우리가 느낀 상실감이 그 증거다.
근 반세기 동안 세상 속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질문과 빛을 던지던 거인이 이제 닿을 수 없는 세계로, 더 이상 그로부터 새로운 무엇이 직접 태어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떠나갔다. 자연인 데이비드 보위는 자신이 살아온 비범한 삶과 달리 암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지금 막 지기 스타더스트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일평생 주어진 대로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 연출하고 창조해낸 삶으로 세상을 흔들어놓았던 아티스트의 마지막 순간은 그 맥락 안에서 대중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 데이비드 보위와 그의 음악이 가장 덜 알려진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고 하지만 총천연색으로 뒤섞인 그의 삶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작품들이 이 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에는 <헤드윅>처럼 누가 보아도 직접적인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작품의 정신이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다.
데이비드 보위는 누구인가. 2차 대전의 상흔이 승전국의 영예만 남겨놓고 대영제국을 끝장낸 시대의 아이로 태어나 열아홉 살의 나이에 대중문화를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끌고 갈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일평생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루하지 않기를’ 원했고 젊을 때나 나이 들었을 때나 자신이 모든 중산층 부모들의 공포가 되기를 원했다. 데이비드 보위와 그의 시대에 대한 오마주였던 <벨벳 골드마인>은 탐탁치 않아 했지만 <헤드윅>에는 애정을 보였고 <전장의 크리스마스>, <바스키아> 등 다수의 영화를 통해 특유의 강렬한 존재감을 스크린에도 각인시켰다.
원제와 같은 제목의 주제곡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로 더 유명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연기한 금욕적인 청년 장교는 신념에 가득한 군국주의자였지만 악마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영국인 포로 셀리어스를 만나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무너지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국가를 위한 도구로서 살아왔고, 살아가는 것에 의문도 망설임도 없었던 요노이 대위에게 셀리어스는 그 어떤 질병보다 치명적이었다. 70년대 영국의 전후 세대들에게도 데이비드 보이는 그들을 아버지의 세계 밖으로 이끌어주는 도발적인 이브였다.
<헤드윅>에서 동독 소년 한셀은 미군방송을 통해 접했던 데이비드 보위가 자신의 스승이자 연인이며 선지자였음을 고백하고 또 암시한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heroes>가 일조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거대한 장벽 아래서 포옹하는 두 연인을 그리는 이 노래가 1987년 바로 그 베를린 장벽 서쪽의 야외 콘서트에서 울려 퍼졌을 때, 장벽 동쪽에서 보위의 목소리라도 듣기 위해 모여들었던 이들의 심정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저마다 이름이 다른 수많은 한셀들은 목소리 높여 자신들이 갈망하는 것이 부르짖기 시작했고 이는 동독의 청년들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는 순간 중 하나였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후 독일 외무부는 SNS를 통해 데이비드 보위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언급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한한 삶을 타고난 인간의 운명 속에서, 세상의 수많은 한계 밑에서, 아무래도 잘못된 곳에 잘못된 역할로 태어난 것 같은 불안과 고통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루의 승리라고 해도, 그것이 우주 속에서 그저 먼지 같은 찰나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것은 너와 내가 거둔 승리라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살아있는 데이비드 보위가 말했다. 지금도 그 말이 그의 노래로 삶으로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그러니 그와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할 것이 많다.
‘비록 아무것도, 아무것도 우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지 않지만 우린 그들을 이길 수 있어,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단 하루뿐일지라도, 난, 난 왕이 될 거야, 그리고 너는, 너는 여왕이 되는 거지, 그 무엇도 그들을 물리칠 순 없지만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단 하루뿐일지라도,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단 하루뿐일지라도’
글 | Y
일러스트 | 영수(fizzj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