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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잡히지 않는, 전미도

풀리지 않는, 잡히지 않는, 전미도

긴 시간 동안 무대에서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일 없이, 매 작품마다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하는데도 어째서인지 하나의 뚜렷한 상으로는 잡히지 않는 신기한 배우가 있다. 낡은 관용구가 되어 빛이 바랜 감이 있는 ‘천의 얼굴’이라는 찬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알려주는 배우 전미도가 그중 한 사람이다. 

 

야무지면서도 섬세한, 그리고 조금은 예민한 느낌의 얼굴은 어쩐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청순하면서도 강단 있는 여대생이나 천진하고 순수하지만 가슴 속에 들끓는 불꽃을 갈무리하고 있는 낭만주의 시대의 숙녀, 동유럽의 스산한 바람이 묻어나는 이국의 뮤지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결국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사춘기 소녀와 인육 파이의 개발자가 모두 그녀이다 보니 그중 무엇인 전미도의 얼굴인지 선뜻 생각나지가 않는 것이다. 흐르는 물처럼 잠시 고일 수 있을 뿐 특정한 형태로 고정되는 일은 없는 영민하고 유연한 배우들이 혹 겪게 되는 문제라고 할까. 살다 보면 너무 잘해서 손해를 볼 때도 있다. 

 

다니엘 키스의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한 2006년만 해도 이 어린 신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관계자는 많지 않았다. 전미도가 한 번 들으면 잊기 쉽지 않은 자신의 이름을 뮤지컬계에 각인시킨 것은 베데킨트의 동명 희곡으로 한 창작뮤지컬 <사춘기>에서 여주인공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가장 핫한 문제작으로 떠오르던 즈음 동일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적 재해석을 한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대와 관심과 의심 속에 무대에 올려진 <사춘기>는 반짝이는 재능과 매력의 신인 몇을 우리에게 남겨주었고 그들 중 가장 멀리까지 온 사람이 바로 전미도이다. 

 

데뷔 후 근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미도는 기복 없이 꾸준히 성장해왔다. 한국 뮤지컬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여배우 중에는 드물게 연극 무대에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체홉 극에 많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 도니제티 오페라를 뮤지컬로 재탄생 시킨 <리타>에서는 드라마 트루그를 맡기도 했다. 작품의 깊이감과 밀도를 충실히 살리면서 관객들이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으로 넓혀주는 좋은 연기, 좋은 가창이 무엇인지 늘 제대로 보여주는 배우로서 전미도는 <베르테르>,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김종욱 찾기>처럼 더 이상 특별한 무엇이 없을 것처럼 이미 자리가 잡혀있는 작품에도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으며 믿음을 더했다.

 

조승우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는 <스위니 토드>에서 전미도는 헬레나 본햄 카터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끔찍하고 사랑스러운 러빗부인이었다. 짐승 같은 탐욕과 순수한 애정이 한 인간 안에서 혼재되어서 분리되었다가 다시 뒤엉키고 또다시 앙금처럼 가라앉으며 분리되어 떠오르는 그 현란한 연기를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입을 다물어지지 않는다. 토비아스에 대한 애틋한 애정과 잔인하고 냉혹한 이기심이 마술사의 손위에 놓인 동전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다시 사라지는 순간마다 소름이 돋을 만큼 흥분하게 된다. 

 

괴물 같은 시대가 낳고 키운 순수한 악의 평범성을 그토록 천연덕스레, 그리고 인간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전미도라는 독특한 개성의 여배우가 존재함으로 인해서 한국 뮤지컬이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한 뼘만큼은 더 넓어졌다고 믿는다. 그녀의 가능성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Y

일러스트 영수(fizzj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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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로, 기자로, KBS, 아리랑 TV, 공연 잡지에서 일했고, 지금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