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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이 빌 게이츠를 ‘죽인’ 날

“CNN은 빌 게이츠 회장이 한 행사장에 참석했다가 총 2발을 맞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의사에 의해 숨진 것으로 판명됐다고 보도했다.”

2003년 4월 4일 오전 9시 37분 MBC는 긴급뉴스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세계 부호인 빌 게이츠가 피살됐다고 보도합니다. 뉴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6분 뒤인 9시 43분경 YTN은 속보로 빌게이츠 피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SBS, 한겨레, 조선일보도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국내 언론이 빌 게이츠를 ‘죽인’ 날

미국의 한 네티즌이 만든 CNN 카피 사이트가 화근이었습니다. 그는 만우절 거짓말로 해당 사이트에 빌 게이츠 피살 뉴스를 올렸습니다. 일종의 ‘가짜뉴스’였던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사들은 이 가짜뉴스를 진짜로 믿고 이를 보도한 겁니다. 말 그대로 오보였습니다.

 

빌 게이츠 피살 오보 해프닝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3월 31일 매일경제 인터넷판은 “’e-만우절!’ 부작용 심각”이라는 제목으로 해당 뉴스를 다룬 바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언론이 빌 게이츠를 ‘죽인’ 날

여파도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 피살 오보가 나자 주식 시장은 8.53포인트가 떨어졌고 환율도 소폭으로 출렁였습니다.

 

문제는 오보를 낸 언론사의 반응이었습니다. 크건 적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오보였지만, 언론사들은 변명 혹은 짤막한 사과를 할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니면 말고 식의 해명을 늘어놓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라크전 보도에 집중하느라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다.” - YTN

 

“방송사 보도를 토대로 ‘빌게이츠 피살說’기사를 톱뉴스로 보도했습니다. 사실관계 확인 없이 보도를 함으로 인해 독자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린 점 진심으로 사과한다.” – 조선일보(디지털조선)

 

“MBC, YTN 보도를 토대로 ‘빌게이츠 사망’ 기사를 약 5분간 톱뉴스로 보도했습니다. 정확한 사실확인 없이 보도를 함으로써 독자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 – 동아일보(동아닷컴)

예나 지금이나 팩트 체크는 언론사의 필수 덕목 중 하나입니다. 물론, 기사를 작성하다 보면 검증 면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 피살 해프닝의 경우는 단순히 실수라고 보기 민망합니다. 이미 사실 확인한 국내 언론의 보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언론이 빌 게이츠를 ‘죽인’ 날

기사를 본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빌 게이츠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마이크로소프트 서울지사 홍보실 부장은 “이번 오보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에 떠오르는 메시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잘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며 “속보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소식을 잘 판단하고 확인해 보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직썰 필진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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