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5가지 덕목
논어 1장 학이學而편
자금이 자공에게 묻기를 “공자께서 이 나라에 이르심에 반드시 정사를 들으시니, 스스로 구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남들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자공이 대답하기를 “공자께서는 ‘온화함’과 ‘선량함’, ‘공손함’과 ‘단속함’ 그리고 ‘겸손함’으로 정사를 듣게 되신 것이다. 공자께서 구하신 것은 다른 사람의 구함과는 차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10절은 성인의 다섯 가지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대해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인의예지신’이라는 말이 그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글을 통해 과거에는 인의예지신을 기준으로 성인을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어떤 나라에 가면 늘 정치인들이 찾아와 상담을 청하니, 자금이란 제자가 자공에게 묻습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공자가 반드시 정치인들과 정치 얘기를 나누는데, 그것이 스스로 구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기회를 제공한 것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혹시 공자가 권력욕으로 줄을 대려고 정치인들에게 아부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은 것이죠.
그러자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똑똑한 제자 중의 한 명인 자공이, 그것은 공자께서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 즉 온화함, 선량함, 공손함, 단속함과 겸손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을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기준으로 보면, 온화함(溫)은 따뜻한 ‘사랑’(仁)을 말하며, 선량함(良)은 늘 선善을 지향하는 ‘지혜’(智)에 해당됩니다.
공손함(恭)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예절’(禮)이고, 단속함(儉)은 스스로를 절제하는 ‘정의’(義)입니다. 마지막의 겸손함(讓)은 양보하는 겸양의 의미인데, 이것은 사실 앞의 공손함(恭)과 의미가 통합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보통 뒤의 겸손함(讓)을 생략하여 ‘온량공검’이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인의예지’의 덕목을 두루 갖추었기에 가는 곳마다 정치가들과 만나게 된 것이죠.
보통 양심의 덕목을 ‘인의예지’ 4가지로 이야기하는데, 5행을 갖추어 말하자면 ‘성실’(信)까지 포함시켜야 합니다. ‘사랑’(仁)은 양기가 음기를 뚫고서 솟구치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의 에너지는 벼락처럼 어떤 것이든 뚫고 나아가 상대방에게 베풀고 나누는 힘인 것입니다. 베푸는 계절인 봄은 영어에서도 스프링(spring)이라고 하죠. 봄의 발산하는 에너지는 만물을 약동하게 하고, 땅 속에 있던 생명체가 땅을 뚫고 올라오게 만듭니다. 봄의 에너지는 사랑이자 생명의 에너지인 것이죠.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덕목 가운데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반면 ‘정의’(義)는 음기가 양기를 찍어 누르는 힘이에요. 위로 뻗어나가던 양기를 음이 “여기까지!” 하면서 눌러 단속하고 절제하는 에너지인 것입니다. 여름에 극도로 발산되어 치솟던 양의 에너지가 음기에 의해 주춤해지는 때가 계절 중에는 가을이죠. 에너지가 지나치게 발산되는 여름에는 집중해서 책을 읽고 일을 하기가 힘든데, 서늘한 기운이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가을에는 깨어있기가 쉽습니다.
가을에는 정신이 잘 단속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가을의 에너지는 생명력을 절제하고 단속하기 때문에, 가을이 되면 열매는 남지만, 낙엽이나 쭉정이들은 떨어집니다. 잘못된 것은 쳐버려서 단속을 해야 생명체들이 겨울을 견디면서 다시 또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살리기 위해서는 단속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겨울에는 정보와 판단만 남습니다. 무엇이 선하고 악한 지를 ‘지혜’(智)로서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중 선한 것만을 골라서 다음 해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이 옳고 그른 지에 대해서는 이미 선명하게 판단이 서있어요. 이런 판단이 분명해야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절’(禮)은 만물이 자신을 밖으로 표현하는 여름처럼, 상대방과 조화를 이루면서 겸손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뢰’(信)는 성실함에서 옵니다. 성실은 인의예지의 실천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 끊어지지 않고 영원하듯, 변함없이 유지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의예지신’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양심을 유교적 관점에서 5가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민심은 천심’이라고 말하는데, 백성의 마음 중에서 ‘양심’이 바로 천심입니다. 욕심이 없는 하늘의 마음과 순수하게 바로 통하는 우리의 마음이 양심이니까요. 인간이 갖고 있는 양심은 그대로 하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사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 분노하고, 양심 때문에 사랑하고, 양심 때문에 절제하고, 양심 때문에 배려하고, 양심 때문에 옳은 것을 가려서 붙잡고 나아갑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이 천심이니, 정치인들이 양심 전문가에게 정치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그래서 백성들의 양심, 즉 민심을 어떻게 경영하고 관리해야 천심이 분노하지 않고 만족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는지를 공자에게 물은 것이죠. 성인은 인의예지의 양심을 온전히 발현하는 존재이니까요.
정치가 뭐냐구? 정말 몰라서 물어? (삽화: 차망우인) |
동양의 리더인 ‘군자(君子)’에는 임금 군 자(君)를 쓰는데, 이 임금 군 자 자체가 리더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실제로 임금이든, 군자이든 결국 경영의 전문가예요. 군자는 직접 나라를 다스리거나 직책을 가지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경영함으로써 남까지도 경영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을 인의예지로 배려해주고, 사랑해주고, 단속해주기 때문에, 군자의 옆에 가면 그 주변 사람의 마음까지도 경영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군자를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군자는 그대로 도덕적인 존재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만 살기 위해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동양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리더가 아닙니다. 자기 하나를 살리려는 사람일 뿐, 조직 전체를 이끌고 있는 도덕적인 존재는 아니니까요. 공자는 직책은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인의예지로 경영하고 있는 훌륭한 양심 경영자였기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경영의 비법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인의예지로 정사를 듣게 된 것이죠.
공자께서 구하신 것은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공은 공자가 구했다는 건 인정했는데요, 어떻게 구한 것일까요? 공자가 양심 전문가로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찾아왔습니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욕심으로 정치인과 왕래했을 텐데, 공자는 권력욕으로 구한 게 아니라 양심으로 정치인들이 찾아오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일반인과는 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