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그리고 생태계
돈되는 사업만 하는 것이 혁신인가?
요즘 O2O가 화두죠? 그런데 혁신으로 이중삼중으로 포장한 곳들이 정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B2B2C라고들 하죠. B에 해당하는 점주한테 가격을 후려친 다음에 이용자에겐 원가에 팔고 중간 이익을 빼먹는 게 이들의 수익구조입니다. 이런 짓을 하는 곳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강조하는 ’혁신’이 도대체 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몇 달 전 만난 업계 관계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2010년 이후 스타트업이란 키워드와 함께 참 많은 기업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중 몇몇은 로켓이 돼 수백, 수천억원대 투자를 받으며 급부상했다.
한결같이 따라붙는 키워드는 ‘이용자에겐 편리함, 점주에겐 수익 창출’이다. 소비자에겐 불합리한 중간 마진을 줄여주는 동시에 좋은 제품을 가진 곳을 연결해주며, 점주는 더 많은 소비자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었다. 기존 시장의 크기가 100이라고 했을 때 이들이 만들어내는 파이 역시 100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거 아니야? 혁신적인 서비스에 밀리면 도태돼야지.
일견 타당한 대답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적으로 강점이 있거나, 콘텐츠적으로 어필하는 서비스가 살아남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기존 생태계의 수익을 ’서비스 주체’가 뺏어가는 게 혁신일까?
가령 무언가 편리한 서비스가 등장했는데, 그 생태계 안에 속한 점주, 배달, 포장 등을 담당하는 주체들이 더욱 손해를 보는 구조로 가는 것이 혁신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혁신 사례를 얘기해보자.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주목받은 것은 단순히 O2O적인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차를 가진 이에 대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운전기사로, 주거지를 가진 이에 대해 숙박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들의 사업 형태가 과연 선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 혹은 우려가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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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택배기사에게 더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주며 수익을 창출하도록 판을 깔아준 고고밴이나 메쉬코리아같은 곳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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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네 곳의 공통점은 기존 시장의 파이를 뺏어먹는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거기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혁신이란 키워드는 편리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편리함은 마케팅적인 슬로건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스타트업 생태계 키워드 5년을 정리하면서 정리한 내용의 일부를 인용한다.
“10가지 키워드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짚었습니다. 이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우리나라 환경에 맞춰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키워드라기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급부상한 것들이 국내에 와서 재조정되는 형태라는 것입니다. 베끼는 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좋은 것은 시장의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도 싸이월드 아이디어를 차용한 마당에 고유한 나만의 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합니다. 다만, 초창기 투자를 받기 좋다는 이유로 겉모습을 따라하는 서비스들이 난립하면서 생기는 거품을 피할 수는 없겠죠.” - [유재석의 비틀어보기] 최근 5년을 관통한 스타트업 키워드 10가지...그리고 시사점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만을 목적으로 투자를 하는 관행이 바뀌어야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ps.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냐고 묻는다면, 아래 한 문장으로 대답하고 싶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서비스들이 더 많아야 이 나라의 미래가 밝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