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산물, 총알볼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진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사라예보는 참 예쁘고 아담한 도시였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보스나 강변에 주욱 늘어선 카페에는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에소프레소잔을 기울이며 햇살을 즐기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산책하는 이, 자건거를 타는 이들이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서울의 인사동 거리 같은 아담한 거리가 있는데 다양한 볼거리와 물건들로 가득했습니다. 지역의 특성상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섞여 있어 신기하고 예쁜 볼거리가 꽤 많습니다. 한집 한집 둘러보다 재미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 유별남 |
지난 전쟁 때 사용되었던 총알로 만든 볼펜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탄피에 볼펜심을 넣어 만든 수제볼펜입니다. 거기다 발칸문화 특유의 예쁜 장식을 넣어 사람의 눈길을 쏙 뺏어갔습니다. 뭔가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신기한 마음에 몇자루를 사려고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 불현듯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중의 한 개는 누군가의 아빠를 쓰러뜨렸을지도 몰라, 어쩌면 누군가의 자식을… 신기하게만 보이던 총알 볼펜은 순간 원래의 차가운 금속덩어리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 너무나도 많은 총탄과 포탄의 빈껍데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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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길을 걷다 발끝에서 꽃한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사라예보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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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이 떨어져 아스팔트가 움푹 패어버린 자리를 붉은 색으로 메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장미가 사라예보 곳곳에 피어있음을 보고 다시 한번 우울해졌습니다. 단단한 아스팔트도 이렇게 박살이 나는데 사람에게는 어떨런지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장미밭을 걷는 우울한 기분은 무심코 올려다본 아파트를 보며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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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전 상처를 그대로 남겨놓는 것은 잊지말자는 그들의 반성이자 희망입니다.
24년전 평화로웠던 발칸반도를 휩쓸어버렸던 전쟁의 광기는 '발칸의 도살자' 라는 별명을 가진 전쟁의 주범중 한 명인 카라지치가 지난 3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징역 40년형을 선고 받으며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나 봅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눈 앞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 고립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행해야만 했던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무슬림, 기독교인들 서로의 마음에 심겨버린 언제 터져버릴 줄 모를 분노. 남겨진 총탄 자국 하나하나가 그 아픔을 얘기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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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해지고 있는 모든 전쟁 행위는 멈춰져야 합니다. 앞으로도 전쟁은 일어나서도 안됩니다. 전쟁으로 얻어지는 것은 위정자들의 쾌락일 뿐입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파괴만이 남습니다. 특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민간인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대의도 명분도 전쟁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한 정치인의 말을 빌려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전쟁은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무덤이며, 평화는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요람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유별남
보스니아 전쟁 : 1992년 2월 혹은 4월 1일 – 1995년 12월 14일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들 중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치명적인 전쟁.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 만에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들 중 최대 규모의 학살이 자행된 전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