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괴롭힌 파킨슨병, '황제내경'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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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의대 연구팀, 19세기 이후 파킨슨병 대표인물로 히틀러·알리 등 4인 선정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해마다 증가하는 질환들이 있다. 치매(알츠하이머), 뇌졸중(중풍)과 함께 3대 노인 질환으로 꼽히는 '파킨슨병'도 이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보면 2014년 9만6천673명이던 파킨슨병 환자는 2017년 11만5천679명으로 3년 새 20% 증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80대 이상이 47%, 70대 38%, 60대 12%, 50대 3% 등으로 50세 이상이 99%를 차지한다.
파킨슨병은 뇌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특정 신경 세포들이 점차 죽어가면서 나타나는 만성 퇴행성 뇌질환이다. 대표 증상으로는 떨림(진전), 경직(과다굳음), 운동느림(서동증), 자세 불안정 등이 꼽힌다. 세계적으로 600만 명 이상이 파킨슨병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이 질환은 원래 제임스 파킨슨(James Parkinson)이라는 영국인 의사가 1817년에 발표한 논문(An essay on the shaking palsy)을 통해 그 증상이 알려졌다. 이후 '신경과학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장 마르탱 샤코(Jean Martin Charcot, 1825∼1893)에 의해 파킨슨병이라는 진단명이 처음 사용됐다.
하지만 제임스 파킨슨 이전에도 파킨슨병으로 추정되는 문헌상 보고는 많다. 그만큼 질환의 역사가 깊은 셈이다.
파킨슨병 [자료사진] |
계명의대 신경과학교실 김근태·유수연 교수팀이 대한신경과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의학 서적인 황제내경에는 '떨림과 경직, 머리를 웅크리고 눈은 한 곳을 응시하며, 몸통은 앞으로 숙이고, 걸을 때 떨림이 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현대에 파킨슨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 15세기 고대 인도 힌두교의 건강체계를 다룬 문헌에 등장하는 '캄파바타'(kampavata)라는 질병도 파킨슨병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kampa'는 떨림을, 'vata'는 움직임과 감각을 뜻한다. 당시 떨림 등 증상이 있는 환자가 현대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 성분이 들어있는 열매 추출물로 증상이 호전됐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또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저술에서 쓴 '마비 환자', '영혼이 없는 듯 머리와 손과 사지를 떨면서 움직이는 자들', '떨리는 팔다리를 어찌할 수가 없는 영혼들' 등의 표현도 파킨슨병에 대한 묘사로 풀이된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파킨슨병에 대해 언급된 여러 학술 문헌과 신문기사, 자서전 등의 정보를 종합할 때 19세기 이후 유명인 중 파킨슨병을 앓은 대표적인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 나혜석,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무하마드 알리 등 4인을 꼽았다.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 [자료사진] |
히틀러의 다양한 의무기록에 따르면 그에게는 1933년(44세) 이후 안정시떨림, 앞으로 몸이 굽은 양상의 자세 변화, 표정 저하, 느린 움직임 등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났다. 그의 증상은 왼쪽 팔에서 안정시떨림 증상으로 시작해 1945년 영상에서는 왼팔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느리게 걷는 모습으로 관찰된다. 연구팀은 히틀러의 파킨슨 질환이 서서히 진행하면서 전반적으로 느린 보행과 앞으로 굽은 자세 등을 보였으며, 사망 전까지 2단계 증상에 해당했다고 분석했다.
나혜석
나혜석 동상 2012.04.05.(시몽포토/북앤포토=연합뉴스) |
정월(晶月) 나혜석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했던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다. 그는 40세가 된 1936년부터 여러 질환으로 병원에 다녔는데, 그의 조카는 나혜석을 '어떤 남루한 할머니', '입을 벌린 채 덜덜 떠는 할머니' 등으로 회고했다. 이는 나혜석이 45세였던 1941년의 모습으로, 당시 파킨슨병의 증상인 안정시떨림이 나타났고 심한 '가면 얼굴'(masked face) 증상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다만, 연구팀은 나혜석의 질환이 파킨슨병인지 파킨슨-플러스증후군인지는 감별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한 2014.8.12 << 국가기록원 제공 >> |
한국을 두 번이나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71세이던 1991년부터 파킨슨병의 초기 증상이 관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93년에 이탈리아의 정형외과 의사가 교황의 오른쪽 다리 골절을 치료하다가 파킨슨병으로 정식 진단했다. 증상은 서서히 진행돼 왼손을 떨며 왼쪽 얼굴 근육이 경직되는 모습을 보였고, 80세 때는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걸음이 느릿한 모습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바티칸은 교황의 파킨슨병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다가 2003년에야 공식 인정했다.
무하마드 알리
무하마드 알리 [자료사진] |
1960년 로마 올림픽 권투 금메달리스트이자 통산 56승의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한 무하마드 알리의 파킨슨병 진단 소식은 은퇴 후 3년만인 1984년 9월에 알려졌다. 이때는 이미 말과 동작이 느려지고 떨림이 있었다. 이후 알리는 한쪽으로 진행하는 파킨슨병 증상이 동영상으로 제작돼 대중에 노출됐다. 그의 파킨슨병은 20년 넘는 권투에 따른 수많은 머리 외상과 관련이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파킨슨병 발병과 치료 과정을 대중에 널리 알린 공로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근대 이전에는 파킨슨병에 대해 운동완만과 떨림 정도의 증상을 기술하는 데 그쳤지만, 이는 현대 의학 발전 이전 시기에 평균 수명이 짧았던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연구팀은 과거 유명인들의 사례를 볼 때 파킨슨병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환자의 증상과 생활환경, 외상 유무, 생활 습관, 직업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생각하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우리가 계속 변화하는 현대 의학의 지식과 기술들을 이용하고 있지만, 의사-환자 간 대화와 문진, 환자에 대한 자세한 진찰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서 "유명인들의 파킨슨병 사례를 통해 그 증상이 널리 알려지고, 사회적으로 파킨슨병에 대한 관심이 더 증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bi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