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바다세상Ⅲ](6) 봄을 부르는 맛 여수 '도다리쑥국'
겨울철 가막만서 산란 끝낸 도다리, 된장 풀고 쑥 만나 '봄맞이'
깊고 진한 국물 맛에 탱글한 흰 살과 함께 잃었던 입맛 '유혹'
(여수=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살랑살랑 부는 바람 속에서 풋풋한 흙냄새가 난다.
잔잔한 수평선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비릿한 바닷바람에 겨우내 움츠렸던 세포가 깨어난다.
봄이 온 것이다.
봄맞이 나온 도다리 [촬영 형민우] |
따뜻한 기후 탓에 사시사철 싱싱한 먹거리가 넘쳐나는 전남 여수는 이맘때가 되면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여수 사람들은 '봄 도다리, 여름 하모, 가을 전어, 겨울 새조개'를 어릴 때부터 기억하고 있다.
맛은 머리보다 몸에 깊이 각인돼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레 제철 음식을 찾는다.
냄비 가득 껍질 채 삶은 굴이 심드렁해질 무렵이면, 도다리가 바통을 이어받아 봄을 기다리던 입맛을 유혹한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겨울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동네 식당을 찾아 도다리쑥국을 내놓으라고 재촉한다.
도다리는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쯤 가막만 깊은 바다를 찾아 와 산란을 준비한다.
겨울을 보내고 산란을 끝낸 도다리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여수에 가면 2월 말부터 3∼4월까지 도다리회와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
도다리는 바다 밑바닥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며 먹이활동을 하는 생선이다.
어부들은 그물을 바닥에서 끌면서 도다리를 잡는다.
생김새와 무늬가 광어와 매우 비슷한데, 구분하기 위해서는 '좌광우도'만 기억하면 된다.
위에서 내려봤을 때 좌측에 눈이 있으면 광어고, 우측에 있으면 도다리다.
계절에 따라 봄에는 도다리가 귀한 대접을 받지만, 가을에는 광어를 높게 쳐준다.
산란을 마친 도다리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아미노산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몸에도 좋다.
무엇보다 겨울을 보내며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 데 그만이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도다리쑥국 [촬영 형민우] |
도다리쑥국을 먹으려고 가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목련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주인장이 직접 배를 몰고 고기를 잡아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어 유명한 곳이다.
한 상 가득 밑반찬이 차려지고 도다리쑥국이 하얀 김을 내뿜으며 상에 올랐다.
된장을 살짝 풀어서 연한 황토색 국물 위로 쑥 향이 진하게 올라온다.
꽃샘추위에 살짝 얼었던 몸은 따뜻한 국물에 곧바로 풀어진다. 국물 맛에 감탄할 새도 없이 탱글탱글한 흰 살을 떼어 맛을 본다.
도다리 살은 진한 국물과 함께 입안 가득 엉클어진다.
전날 과음을 했다는 한 일행은 연신 국물을 들이켜며 "어허 좋다"를 연발한다.
도다리쑥국 [촬영 형민우] |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다.
여수에서는 도다리쑥국에 거문도에서 온 해풍쑥을 쓴다.
거문도에서 자란 쑥은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향이 강하고, 부드럽다.
오랜 시간 육수에 몸을 내준 도다리는 거문도 해풍쑥을 만나 봄을 부르는 진미(珍味)가 됐다.
도다리 꺼내는 이종일 사장 [촬영 형민우] |
이종일(66) 목련식당 사장은 "옛날 어르신들이 '봄 도다리는 처녀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할 정도로 도다리는 맛있는 생선이다"며 "산란을 막 끝낸 시기라 살이 차오르기 시작해 지금이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그는 "된장을 살짝 푼 뒤 마지막에 볶은 콩가루를 넣어 담백하게 끓여낸다"며 "쑥은 거문도에서 나온 것만 쓰는데 맨 마지막에 넣어야 풍미가 진해진다"고 귀띔했다.
minu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