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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잘 나오면 돼!" 새 다리 묶고 나무 베는 사진가들

"흰 참새가 나타났다", "좋은 일이 있을 징조 같다."


지난 13일 강원도 춘천 도심에 나타난 흰 참새 한 쌍.


'길조'로 알려진 흰 참새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 새여서 등장만으로도 화제였다.


흰 참새의 사진을 남길 기회를 잡고 싶은 사진작가와 사진 동호인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그런데 흰 참새 등장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 며칠 후 마을에는 안내문 하나가 등장했다.


'흰 참새에게 먹이 주지 마세요', '제발 그냥 좀 놔두세요.'


마을 주민들은 왜 이런 안내문을 붙이게 됐을까?


일부 사진가들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배경에 흰 참새를 찍기 위해 모이를 바위 위에 잔뜩 뿌려 유인했기 때문이다.


원래 흰 참새가 머물던 텃밭은 옥수수가 길게 자라 몸을 숨기기 적합하지만, 모이를 놓아 유인하는 바위는 근처에 몸을 숨길 곳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일부 사진가는 흰 참새가 날아다니는 곳을 토끼몰이하듯 쫓으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조류 전문가들은 일부 사진가의 연출 행위가 새에게 '학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흰 참새는 색소가 생기지 않는 일종의 백화현상인 '알비노'(albino)로 인해 흰색을 띠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궁대식 한국조류보호협회 사무총장은 "알비노 동물이 수명이 짧은 이유는 보호색이 없어 천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며 "탁 트인 공간으로 흰 참새를 유인하는 것은 천적에게 새를 노출하는 학대 행위"라고 지적했다.


좋은 사진을 편한 위치에서 찍겠다는 일부 사진가가 자연을 훼손하거나 조작하는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바닷가 자갈밭이나 강가 모래밭에서 서식하는 여름새 쇠제비갈매기.


지난 5월 멸종 위기 등급 관심 대상인 쇠제비갈매기가 경북 포항을 찾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진 동호인들이 몰려들었고, 이들 중 일부가 쇠제비갈매기 새끼가 둥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집어넣거나 다리를 줄로 묶고 사진을 찍었다.


2014년에는 산림보호구역 내 금강송 등 나무 수십 그루를 무단 벌목한 사진작가에게 벌금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이 사진작가가 수령 220년의 금강송을 베어낸 이유는 '대왕송 사진을 찍으려는 데 구도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드론 촬영이 취미생활로 주목받으면서 '드론으로 철새 쫓아가기'를 시도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좋은 사진과 영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


생명과 자연을 그저 피사체로만 대하는 일부 사진가들.


취향대로 조작하고 망가뜨린 자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정은미 기자 김지원 작가 박서준 인턴기자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sosi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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