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어차피 욕먹을 거 좀 더 놀 걸 그랬다”
『찬란하게 47년』 펴내 47년 인생을 뒤돌아본다
2000년 커밍아웃 이후 17년이 지났다. 당시 서른 살이었던 배우 홍석천은 고정 출연하던 6개 방송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하고 누구도 불러주지 않은 채 3년여를 보냈다. 처음 창업한 가게는 실패했고 모아둔 돈까지 모두 썼다. 삶이 바닥을 친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 홍석천은 마흔일곱이 되었고 이태원에서 내로라하는 음식점 사장님이, 쉴 틈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방송인이, 젊은 세대에게 꿈을 말하는 강연자가 되었다. 세상은 느리지만 꾸준히 변했다. 『찬란하게 47년』은 ‘아름다운 게이, 홍석천 지랄발광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그동안 홍석천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담았다.
이번 책은 조금 더 쉬웠다
사적인 내용을 쓰는 데 부담은 없었나.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이 됐다. 안 그래도 책 내고 누나들이 내가 그렇게 힘든 마음인지 몰랐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사람이 말과 말로 하면 싸움이 나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못 할 때가 많은데, 글로 읽으니까 내가 그런 상태였는지 알았다고 하더라.
전 애인 이야기도 나왔는데 괜찮나.
이름은 가렸으니까 괜찮다. 사실 책에 나온 것보다 더 깊은 관계도 있었는데 아직은 조심스럽다. (웃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이제까지 책을 두 번 냈다. 첫 번째는 커밍아웃 직후에 낸 『나는 아직도 금지된 사랑에 가슴 설렌다』, 두 번째는 2008년에 낸 『나만의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라』다. 이번 책은 두 책과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느낌이다.
첫 책은 커밍아웃 이후에 썼다. 당시만 해도 게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있어서 자체검열하고, 또 2차 검열하고, 나온 사람의 이름이랑 상황도 다 바꾸면서 썼다. 두 번째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창업할 때 조언을 담은 책이었는데, 사업에 대해 아직 내공이 덜 쌓였을 때 내서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레스토랑 운영 15년째에 커밍아웃은 17년째니 무슨 이야기를 해도 될 정도의 공력이 쌓인 거지. 그래서 이번 책은 조금 더 쉬웠다.
홍석천이 어떻게 느끼는지, 홍석천의 습관은 무엇인지 등 사소한 이야기가 담겼다.
연예계 생활이 25년, 나이도 50 가까이 됐는데 이제 와서 멋있고 예쁘게 나를 포장하는 게 웃긴 것 같았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내 이미지가 되게 밝고 쾌활하고 늘 해피 바이러스라고 이야기하는 데 혼자 있으면 피곤하고 지치고 우울한 성격이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자기가 봤을 때 홍석천은 늘 행복한 것 같은데 의외라고 이야기했다.
후배들에게 혹은 아래 세대에게 하는 말도 많았는데.
인권, 성공하는 노하우, 청년들 창업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많이 하는데, 내 스토리를 끌어내면 사람들이 재밌어하더라. 누가 나를 좋아하고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지 않나. 강연하면서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고 반응을 보면서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내 솔직한 이야기를 풀었을 때 사람들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나를 롤모델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더 나이 먹기 전에 책을 쓰고 더 꺼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에게 ‘스스로 변화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헬조선이라고 명명’(184쪽)하고 가만히 있기보다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젊은 세대가 너무 움츠러들어 있다고 느끼나?
꿈을 꾸는 자들이 꿈을 다 이루지는 않는다. 다 이룰 수 없지만 노력하는 과정이 행복하고, 노력하면서 배우는 게 있다. 누군가 나보다 앞선 사람과 비교해서 불행해지는 거다. 비교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서 행복한 거고, 그게 행복에 가까워지는 마음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행복을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까지 연결돼야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했는데, 홍석천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커밍아웃했을 당시 행복을 꿈꾸는 게 사치라는 걸 이미 알았다. 행복하게 보이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찾겠다고 온 가족을 흔들어놓는 이야기를 해버린 거지. 사실은 되게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의 행복을 찾는 과정이었고, 가족도 진정으로 행복한 게 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주변 사람들은 누가 있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애인이 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잘 지낸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와 같이 가게를 하는 매니저 직원도 있다. 예전에는 어느 때든 무언가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두쇠처럼 나한테도 안 쓰고 남한테는 기본만 쓰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아끼고 살아봐야 한 몸 없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끼는 동생들 데리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안 해봤던 행동인데 상대가 너무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나도 행복하더라. 물론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돌아가지만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내 인생이 조금 더 풍요로워진 느낌이 든다.
그렇게 퍼주다가 상처받은 이야기도 책에 나와있다. (웃음)
사람한테 상처받은 건 사람으로 치유가 된다. 내가 더는 누구에게 마음을 안 주고 진심을 안 보여주겠다고 해도 또 누군가를 만나면 터놓게 된다. 나는 기억력이 부족한 게 장점이다. 일주일 전 있었던 일을 잊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마이’는 책임지겠다는 의지
책 끝에 레시피를 소개했다. 추천한 메뉴 선정 기준이 있었나.
처음에는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하다가 구성이 애매해서 레시피북으로 따로 떼어냈다. 좋아하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고 그럴싸하게 요리를 만들어서 ‘오, 이런 능력이?’ 하면서 한 스텝 더 나아가라는 뜻이었다. (웃음)
힘들 때 요리가 위안이 되었다고 했는데,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가?
요새는 너무 바빠서 잘 못 한다. 나는 주로 간단한 접근법으로 요리한다. 냉장고에 있는 걸로 간단하게 만들어서 이야기 나눠가며 맛있게 먹는 게 좋다.
맨 처음 개업한 ‘아워 플레이스’는 그렇게 성공하진 못했다. 식당이 자기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좌절은 했지. 2002년에 식당을 내면서 이태원에서는 옥상 테라스가 가능할 줄 알았다. 외국 루프탑바를 가서 옥상이 이렇게 좋은 곳이구나 느끼고 내가 만들겠다고 했는데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자존심은 있어서, 커밍아웃하고 바닥까지 갔는데 마지막으로 새로 시작한 레스토랑마저 망가지면 인터넷으로 호모 새끼라고 욕했던 모든 나의 적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줄 것 같았다. 그래서 애들 월급 주고 손해 메꾸려고 나이트클럽 DJ를 뛰었다. 그거 아니었으면 정말 망했을 거다.
지금은 운영하는 가게는 몇 개인가?
10개다. 오늘 대구 현대백화점 푸드코트에 하나 더 열었다.
식당마다 메뉴나 스타일을 다 다르게 하나?
요즘은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많이 아는 게 태국 음식이다. 예전에는 이태원에 나 말고도 태국 음식점 하는 사람들 많아서 다른 걸 해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해 봤는데 10개 중에 서너 개는 계속 적자였다. 나중에 나보다 훨씬 뒤에 시작한 후배들이 더 잘하길래 봤더니 집중을 하더라. 나쁜 말로 하면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거고 좋은 말로 하면 집중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태국 음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백화점 입점 등 새로운 시도는 조금씩 하는 것 같은데.
백화점 레스토랑은 나랑 안 맞다. 대중들이 편하게 와서 먹고 가는 지하 푸드코트가 내 성격에 맞다. 다른 일에서도 편하게 나한테 다가왔다가 일 다 보면 가고, 내가 필요하면 또 왔다가 쏟아놓고 가면 된다.
레스토랑 이름이 모두 ‘마이’로 시작한다. 의미가 있나?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 시리즈를 한 걸 보고 따라 했다. 뉴욕 친구한테 아이폰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내 폰’이라는 뜻이라고 하더라. 뉴욕 힙한 애들은 ‘마이’라고 안 하고 ‘아이’라고 한다는 거다. 그럼 내가 ‘마이’를 써야 되겠다 싶었다. 처음 낸 레스토랑은 ‘아워 플레이스’였지만 한국어 발음으로 ‘아워’는 어려운데 ‘마이’는 쉬우니까. 이후로 ‘마이’만 붙이면 홍석천 가게라고 사람들한테 인식시키고 싶었다. 책임감이다. 홍석천 브랜드면 실망하지 않는다는 책임을 스스로 지고 싶었다.
사장님이지만 세입자 시절도 있었다. 네이버TV '경리단길 홍사장'에서 건물도 짓고, 지금은 건물주가 되었다. 기분이 어떤가?
여기(‘마이 스카이’)가 그때 지은 건물이다. 지을 때 거의 매일 공사 끝나면 이 앞에 와서 혼자 조명 키고 밤에 기둥 쓰다듬었다. (웃음)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1층부터 4층까지 통으로 세를 줬는데 세입자 마음을 아니까 제대로 월세를 못 받겠더라. 사실 더 받을 수 있는데 패션 하는 젊은 친구들이라 자기네들이 낼 수 있는 만큼만 받겠다고 했다.
나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도 바뀐다
커밍아웃 이후와 달리 지금은 방송 프로그램이 많이 늘었다. 주로 동성애 코드나 음식점 사장으로 소비되는데, 연기자로서의 홍석천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한때는 그런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47년이라는 게 나한테는 중요하다. 이제는 여유로워지고 지혜로워지고 남의 말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나를 탑게이로 부르든, 게이 커뮤니티의 유일한 셀럽으로 인지하든, 이태원 레스토랑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든 더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좋은 드라마 작품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연기자로 설 날도 올 거다. 죽는 날까지 계속 새로운 걸 기대하고 도전하면서 실패도 해 보는 거지 뭐.
단역으로는 꽤 많이 출연했다.
이제까지 나를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포지셔닝하고, 그 역할은 하고 이건 하지 말라는 식으로 관리했으면 안 그랬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까메오 한 씬이라도 불러주면 가고, 새벽 두 시에 어디냐고, 보고 싶다고 부르면 집에 들어가는 길이어도 다시 돌아갔다. 이제는 행사장 같은 곳에서 누가 불러주면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는지 그쪽에 물어본다. 나를 부르는 이유가 내 마음을 움직이면 하겠다고 한다.
연기자, 음식점 사장, 게이로서의 정체성 중에서 지금 홍석천에게 가장 큰 건 무엇인가?
나는 여전히 방송이 즐겁고 연기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사람들도 방송 나오는 홍석천을 친근하게 여기는 것 같고. 홍석천이 사업을 한다는 건 요새 들어서야 조금씩 알려지는 것 같다.
17년 전 한 커밍아웃을 계속해서 말해야 하는 게 지치진 않나?
지친다. 하지만 해가 지날 때마다 내 생각과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나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도 바뀐다는 게 중요하다. 옛날 같았으면 대한민국은 내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없는 나라다. 어쨌든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건 표현은 안 하지만 어느 정도 내가 열심히 살았으니 인정해주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거다. 그게 내 개인 투쟁의 목표다. 가게를 브랜딩하듯이 개인 홍석천이라는 브랜드도 만드는 거다. 그래야 이태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는 10대, 20대 아기 게이들이 홍석천이라는 꼰대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겠나. 생각해보면 나도 20대 초반에는 노는 게 재밌고 아무 생각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권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정체성이 달라도 생활은 같이할 수 있다는 걸 당연시하는 날이 올 거다. 박근혜 정권이 언제 끝날지 몰랐는데 새로운 세상이 오지 않았나.
LGBT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정권이 그렇게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이번 정권을 희망적으로 보는가?
되게 희망적으로 본다. 토론회는 그렇게 넘어가면 된다. 동성애자를 불지옥에 태워 죽이라는 소리가 아니었지 않나. 동성애자든 일용노동자든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과 똑같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 가능성을 봤다.
대선 당시 안희정 지사 지지 선언을 했었는데.
지지 선언 하려고 간 게 아니라 고등학교 선배라서 출정식에 와달라고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송중기, 홍석천, 안희정이 3대 유명인인데 안희정 형님이 제일 인지도가 떨어지니 분발하라고만 말했다.
표 계산이 안 된다면 (성소수자 지지 발언을) 부정해도 된다는 발언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한테도 똑같다. 표 계산해서 불리하면 부정하셔도 된다. 그분이 동성애에 관해서 잘 모른다. 관심을 가질 기회도 없었고, 동성애자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냥 인생에서 잘 모르는 분야인 거다. 그럼 이제부터 알려주면 된다.
90점짜리 기독교인
커밍아웃한 유명인 자체가 없다. 아직까지 유명인 중에서는 유일한 오픈리 게이인데,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나?
예전에는 혼자가 외롭고 힘들어서 그런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17년 혼자 있다 보니까 이제는 기대가 별로 없다. 커밍아웃하라고 말은 안 한다. 그건 각자 판단이니까, 커밍아웃하라고 다그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윗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내가 제일 윗사람이 되었을 때, 아예 새로운 세대가 왔을 때는 (커밍아웃한 사람이) 되게 많을 거다.
기독교인이지만 가장 LGBT 이슈에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게 기독교계이기도 하다. 신앙적인 갈등도 요새는 많이 내려놓은 편인가?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내 종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어느 순간 종교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는 존재가 된 거다. 나는 신이 버린 존재인가? 잘못된 사람인가? 그런데 가만 보니까 나를 욕하는 사람들도 별로 완벽해 보이지 않더라. 100% 성경 말씀 따라서 사는 사람이 이 땅에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 이슈에서만 다들 당당하다. 그래서 신이 원하는 100점짜리 신의 아이들이 있다면 당신들이 100점인지 한 번 생각해보시고, 내 목표는 90점짜리 아들로 살다 가는 것이니 나머지 10점은 (동성애자인 걸로) 까고 간다고 했다. 90점이면 A니까. (웃음) 나중에 내가 하나님한테 가서 당신 뜻대로 나 잘살았냐 물어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지, 안 그러면 교회 갈 때마다 나머지 교인들 눈치 보면서 어떻게 앉아 있나.
90점짜리로 살겠다는 마음이 스스로 검열을 많이 만들어낼 것 같다.
그래서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도 많다. 이런저런 파티도 가보고 싶고 방탕하게도 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인데, 항상 그러면 안 되지 그러다가 나이만 먹었다. 어차피 욕먹는 거 좀 더 놀 걸 그랬다.
지금이라도…….
늦었다. 이제 힘들다. (웃음)
성소수자가 주변에 지지자나 믿을 만한 사람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비(非)성소수자가 주변 사람들을 지지할 방법이 뭐가 있을 것 같나?
예를 들어 시청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행사에 맞닥뜨린 시민들의 반응을 본다. 처음에는 좀 당황하지만 그중에 많은 분이 박수와 환호를 해주는 것 자체가 매우 큰 힘이고 변화다. 심지어 우리 가게 온 손님들과 사진 한 장씩 찍을 때도 옆에서 ‘존경한다’ ‘힘내라’며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인을 주는 것도 그들에게는 큰 용기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게 이쪽 친구들에게는 힘이 된다.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나한테는 중요하다. 성격상 거창한 거 싫어한다. 시간 걸려도 천천히 바뀌면 된다.
동성애자뿐 아니라 트렌스젠더 등 다른 이슈도 많다. 성소수자 이슈에 연대해 목소리를 낼 생각인가?
요즘에는 친한 (트렌스)젠더 동생들이 몇 생겼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트렌스젠더의 삶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겪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나서야 이 친구들이 가진 고민이 다르다는 걸 알고, 세상이 이들을 바라보는 눈도 우리를 바라보는 눈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모든 이슈가 다 똑같지는 않다.
예전에는 트렌스젠더와 게이를 혼동해서 질문하기도 했다.
나보고 왜 수술 안 하냐고 물어보고 그랬다. 그때 비해서는 많이 변했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나?
당장은 부산과 대구, 영등포, 양평 등에 가게를 새로 낸다. 연극 '스페셜 라이어'도 6월부터 공연하고 새 예능 프로그램도 촬영할 계획이다. 스케줄은 그렇지만, 원래 계획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편이다.
용산구청장에 나갈 생각도 있다는 기사가 계속 돌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이가 많이 들어서 사명감을 가지면 할 수도 있는 거고, 뜬구름 잡는 계획에 불과하다. 정말 나갈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있는데, 그때마다 ‘아직 아닙니다’ 한다.
책을 누가 읽어줬으면 하나?
어제 북콘서트에 어떤 어머니가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왔더라. 아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없어서 맨날 싸우다가 책을 보고 같이 온 거다. 끝나고 아들이 많은 생각을 했다고 고맙다고 하더라. 그게 사실 책의 목적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내 주변에 어느 날 갑자기 있을 수 있는 사람임을 각인시켜 주는 거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네 친구, 네 형, 네 인생의 조언자가 될 수도 있으니 무서워하지도 말고 경계하지도 말고, 인생이 힘들 때 나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을 통해 어깨를 토닥이는 책이다.
글 | 정의정 사진 | 한정구(AM12 Studio)
홍석천 저 | 스노우폭스북스
이 책은 2000년, 어느 날로 시작된다. 방송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무렵 선언한 커밍아웃은 홍석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언론과 대중은 커다란 범죄가 일어난 듯, 거칠게 그를 몰아붙였다. 마치,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어릴 적부터 꿈꾼 방송인으로서의 삶도 끝난 듯 보였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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