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일
『가만한 당신』 최윤필 저자
“저는 에너지가 많지 않고, 능력도 뻔하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어떤 열정에 휘둘려 자신과 주변을 민망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예가 더러 있지 않나요? 저는, 누구나 그럴 것 같은데, 제가 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데까지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삶이 지금보단 조금 더 편하고 즐겁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더 자주 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가만한 당신』, 최윤필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이다. 너무 많이 듣고, 또 자주 말해서 이제는 좀 지겹기도 한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언이고 진리다. 언젠가 한 지인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걱정을 하고 싶어서 합니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하죠.” 나는 속으로 답했다. “맞는 말씀이에요. 하지만 덜 하려고 노력하면 되긴 하더라고요. 왜냐, 해 봤자 소용이 없으니까요.”
계획적인 인생을 꿈꿨다. 애당초 큰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계획은 수행한 삶이었다. 지금까지는. 인터뷰를 하며 만나는 사람에게도 종종 물었다.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세운 계획은 대체로 실행하셨나요?” 한 권의 책이 계획한 날짜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나는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작심삼일조차 안 하는 삶은 괜찮은가?”
이제는 안 쓸 걸 알기에 다이어리를 사지 않는다. 예쁜 수첩을 사고 싶을 때가 많지만 꾹 참는다. 읽은 책도 웬만하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준다.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다시 쓸 확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버려야 다시 또 쌓을 수 있다. 쾌변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식욕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비워야 뭔가 넣고 싶다. 뱃속에 아직 소화되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뭔가를 꾸역꾸역 집어넣으면 반드시 체기가 찾아온다.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 대신 탁상달력은 사용한다. 하루가 지나가면 해당 날짜 칸에 엑스 자를 긋는다. 미련을 갖지 않겠다는 뜻인지,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감사함인지,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한 즐겁게 일하고. 가능한 타인에게도 도움 되고 나도 기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깜냥(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볼 때, 반갑다. 주제를 잘 파악하는 사람을 볼 때, 편안하다. 겸손과는 좀 다른 문제다.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삶의 태도인지, 나는 안다. 타인에게도 기대하지 않아야 하지만, 스스로에게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조용하고 은근하게 살고 싶다. 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뜨겁지 않게 은근하게, 꺼드럭거리지 않으면서.
글 | 엄지혜 사진 | 이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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