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판사 “책의 재미로 이끈 건 한 권의 만화책”
천종호 판사는 2012년 2월, 소년부 판사가 된 이후 열악한 비행소년들의 처지에 눈감을 수 없어 이들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으며, 그 덕에 ‘소년범들의 대부’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자나 깨나 늘 소년들 생각뿐이라는 뜻에서 ‘만사소년’, 법정에서 호통을 잘 친다고 하여 ‘호통판사’로도 불리지만, 소년들이 ‘아빠’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다가올 때가 제일 좋다. 현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인 그는 환경재단에서 수여하는 ‘2014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로 선정되었고 2015년 제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대법원장 표창, 2017년 한국범죄방지재단 실천공로상, 2017년 현직법관 최초로 제12회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가 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어릴 적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책 한 권 소유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때 제게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한 것은 ‘만화’뿐이었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만화방에서 당시(1975년 무렵) 돈으로 10원을 주면 신간 두 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만화방에서 철이 지난 만화를 돈을 내지 않고 마음껏 읽을 수 있었지요. 그것이 일단 책에 대한 재미를 붙여 준 사건인 것 같습니다.
이후, 전공 서적이 아닌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2003년경부터입니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장님께서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주셨는데, 그분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고 그로 인해 독서하는 습관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어릴 적 만화방에서 감동적으로 읽은 만화가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만화의 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은 잊어버렸고, 희미한 기억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여 한 편의 영화를 보다가 그 영화의 내용과 제가 어릴 적 인상 깊게 본 만화의 내용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영화와 만화의 제목은 <벤허>였습니다. 벤허를 통해 저는 로마제국시대의 정치와 사회에 관해 약간의 지식을 얻었고, 이는 제게 독서의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처럼 독서는 제가 가보지 못한 세계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줍니다. 또한 탁월한 저자들을 만나게 해 줍니다. 나아가 독서를 통해 저의 경험들을 정리할 수 있는 사상과 언어를 제공받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책 읽는 시간은 제게 아주 소중합니다.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2010년 2월부터 창원지방법원에서 소년부 사건을 담당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비행청소년들에 대하여 혐오와 배제를 일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조금만 도움을 주면 비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들조차도 범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우선적으로 한 것이 비행청소년들의 실상과 소년교정제도의 후진성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을 제대로 알게 되면, 국가와 사회가 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비행청소년들을 둘러싼 환경과 제도를 개선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과 제도 개선의 문제는 바로 사회정의와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청소년들과 관련하여 정의의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청소년들의 잘못에 대한 처분은 ‘시정적 정의’의 영역에 속합니다만, 그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여 재비행을 막는 것은 ‘배분적 정의’의 영역에 속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비행청소년들에 대하여 배분적 정의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과 관계부처 공무원들에게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정의를 호소하기 시작하였고, 설득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정의론’에 관한 책들도 탐독하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과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을 출간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이 분야에 관해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향후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의론에 관한 책을 출판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최근작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는 비행청소년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2013),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2015),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2018) 중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 사례들만을 엄선해 엮은 책입니다.
이렇게 다시 책을 내게 된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소년법을 둘러싼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고, 이는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계속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청소년들 간에도 영향을 미쳐, 저출산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 예측하지 못한 암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모든 분들, 특히 청소년들이 그들 또래의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실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읽기 쉽게 글을 다듬고 책의 분량은 대폭 줄이며 아름다운 삽화까지 넣어 책을 다시 내게 된 것입니다. 제게는 초등학교 3학년의 늦둥이 딸이 있는데, 이 아이가 이틀 만에 이 책을 읽어 내는 것을 보니 집필 의도는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옹달샘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강물을 이루며 바다로 갑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도 다 같이 어우러져 살아야 합니다. 자연의 숲에는 거목을 만들기 위해 병든 나무, 경쟁에서 진 나무에 대해 간벌(間伐)을 실시합니다만, 인간의 숲에는 간벌이 없습니다. 결국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공존해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아이들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탁월한 아이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비행’으로 인해 시간변경선에 서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아이들은 언젠가 비행청소년에서 시작되어 범죄자가 된 사람뿐만 아니라 이제 막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도 만나게 될 것이고, 장차 교사가 될 아이들은 학교에서 위기청소년들을 만나게 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을 통해 언젠가 부딪히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존 스타인벡 저
중학생 시절 읽었던 책으로, 서민과 노동자들의 애환에 감정 이입에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시바 료타로 저
2003년경 읽었던 열 권짜리 대하소설로,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전쟁을 통해 대한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습니다. 한·일 양국의 대조적인 역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입니다.
박수용 저
거창에서 성장하여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온 저자가 멸종되어 가는 백두산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모습에 가슴 깊숙이 충격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