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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열풍, 음악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음악 관계자들 사이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 이 무더운 여름 스트리밍 서비스의 실시간 차트에 발라드 노래가 가득하냐는 것이다. 최근 인기인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OST가 인기를 얻기 전까지, 절절한 이별의 가사와 애절한 창법으로 무장한, 전형적인 케이-발라드(K-Ballard) 곡들이 멜론, 지니, 벅스, 플로, 네이버 등 주요 스트리밍 차트의 정상부를 오래도록 점령했다.


'열애 중', '180도'로 발라드 시대 유행을 앞서 개척한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부터 1997년생 신예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무려 14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난 장혜진, 윤민수의 '술이 문제야'와 솔로 가수 김나영의 '솔직하게 말해서 나' 모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여기에 SBS <케이팝스타> 출신 송하예의 '니 소식', 황인욱의 '포장마차', 마크툽의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가 뒤를 받친다.


통념상 애절한 이별과 쓸쓸한 추억을 노래하는 발라드의 계절은 찬 바람 부는 가을이다. 하지만 올해 스트리밍 차트를 보면 발라드는 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 차트 집계를 보면, 5월 둘째 주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마지막으로 7월 마지막 주 지금까지 발라드 이외 곡이 정상을 차지한 경우가 없다. 비단 1위뿐 아니라 톱 텐에도 앞서 언급한 곡들과 케이시의 '그때가 좋았어', 다비치의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등이 공고한 인기 전선을 구축했다.


스트리밍 차트 성적대로라면 지금 우리는 '발라드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논란이 됐던 가수 닐로의 소속사(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이 상황을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했으나, '음원 자료가 제한적이라 사재기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6월 멜론 월간 차트 1위에 오른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역시 사재기 논란을 불렀다. 2018년 9월에 발매된 싱글이 2019년 여름 수직 상승하여 정상에 오른 것이 수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2Soo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유튜브와 페이스북 노래 조회수를 보여주며 사재기 논란을 일축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대중은 음원 사이트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니 의구심이 들고, 아티스트와 작곡가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속을 앓는다.

일각에서는 노래방 문화, 그중에서도 코인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혼코노족'의 부상을 발라드 유행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노래방 애창곡 목록에서 발라드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한국 노래방 업계 1위 TJ미디어의 7월 노래방 인기곡 순위를 보면, 1위부터 20위까지 발라드 이외의 곡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가설이 힘을 얻으려면 발라드는 물론 노래방 사업의 인기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2011년 이후 노래방 사업은 지속적인 하락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에서 없어진 노래방 수는 모두 1413개로 2015년부터 계속 증가 추세다. 신규 등록된 코인 노래방도 2017년 778개에서 2018년 409개로 급감했다.

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모바일 서비스 이용행태 조사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43%가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고 답해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 28.1%를 크게 제쳤다. 2순위 기준까지 합한 결과는 유튜브 75.4%, 멜론 47.4%로 그 격차가 더 심하다. 연령별로는 오직 20대만이 유튜브보다 멜론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라드 노래들이 여기서 강세다. 유튜브 '멜론둥이', '멜론차트' 등 다양한 채널들은 멜론 주간 톱 100 차트를 그대로 재생하여 광고 없는 영상으로 만든다. '헬로 마이 뮤직',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같은 채널은 노래에 가사를 입혀 많게는 몇백만 이상의 조회수를 확보한다. 노래 하나를 검색하면 원곡자의 라이브 영상은 물론 수많은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커버 영상이 이어진다.


'비 오는 날 수채화'의 권인하는 3년 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태연의 '만약에'를 부른 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2012년 전국 노래자랑의 '지구촌 노래자랑'에 출연한 그렉 프리스터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커버 영상을 업로드하며 33만 구독자를 확보했다. 앞서 언급한 노래방 문화와의 접점이 보인다.


이런 유튜브 채널들은 음원 사재기 논란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페이스북 음악 페이지의 확장형이다. 유튜브 88만 구독자를 보유한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페이지는 페이스북에서 이미 300만 이상의 좋아요를 확보했다. 2013년~2014년 페이스북이 싸이월드의 지위를 대체한 20대에게 '감성 플레이어', '요즘 핫하다는 노래 동영상' 등의 채널은 이미 2015~2016년부터 그 파급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팬덤의 소비 형태 변화도 발라드의 차트 점령의 원인 중 하나다. 한 때 스트리밍 차트에는 '줄 세우기'가 일상이었다. 대형 아이돌 가수들이 새 앨범을 내면 발매와 동시에, 혹은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앨범의 전 수록곡이 1위부터 차례대로 차트 정상부를 점령하는 현상이었다.


이를 위해 팬덤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를 총동원해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 공격, 특정 가수의 곡을 집중적으로 듣는 방식으로 차트 순위를 올려주는 팬덤의 행태를 일컫는 말)'에 나섰고, 권장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숨밍(숨 쉬듯이 스트리밍)'을 이어갔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권고로 스트리밍 업체들이 0시 공개 음원을 차트 성적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거대 아이돌 그룹의 컴백에는 팬들의 열성적인 '스밍'이 뒤따른다.


그러나 발라드의 차트 점령으로 인해 소비문화도 변하고 있다. '스밍'으로 정상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팬덤에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는 차트에서 비정상적인 상승 추이를 보이는 곡들을 '기계픽'이라 호칭하며 차트 조작을 의심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명확하지 않은 결론 때문에 팬덤 내에서는 '스밍'에 대한 자성과 함께 '기계픽'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 실시간 경쟁을 종용하는 차트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이제 팬들의 디지털 소비로 뮤지션이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건 쉽지 않게 됐다. 대신 팬덤은 실물 앨범을 활발히 소비하며 이를 만회하고 있다. 국내 앨범 판매량은 2017년부터 다시 급증하기 시작해 2018년 약 2천3백만 장 판매고를 기록하며 연간 2천만 장 판매고 시대를 열었다. 아이돌 팬덤의 적극적인 소비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에는 방탄소년단의 미니 앨범 'Map Of The Soul : PERSONA'가 349만 9천 장 판매고를 올리며 대한민국 앨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세븐틴의 'You Made My Dawn'역시 46만 장을 판매했다. 역대 걸그룹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 판매 기록 1,2,3위가 2019년의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즈원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웬만한 그룹도 1만 장 이상의 판매고가 보장된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현재 스트리밍 차트에서 발라드 곡이 강세인 이유를 정리할 수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차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순이용자들의 취향이 현재의 발라드 인기다. 주로 10대 초, 20대 중후반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채널, 커버를 통해 발라드 곡을 접하고 이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활발히 소비한다. 논란이 됐던 '바이럴 마케팅'이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 번 차트에 오른 곡은 다시 SNS를 통해 무수한 불특정 다수들에게 반복 재생된다. 일단 차트 상위권에 오르기만 하면 매체 주목과 '톱 100 반복 재생'을 통해 안정적인 인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 노래방, 커버, 버스킹 문화를 통해 2차 콘텐츠 생산도 활발해진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 다수 대중의 취향이며 2019년이 발라드 대유행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틀린 접근이다. 팬덤, 음악 관계자들 등 순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을 제외하면 차트에 대한 대중 관심도는 굉장히 낮다. 차트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낮아졌기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가'의 지위를 갖추기는 어렵다.

게다가 차트를 점령한 이별 발라드는 대중음악의 질적 후퇴를 가져온다. 최근 유행하는 곡들을 들어보면 거의 고음 경연의 장과 다를 바가 없다. '헤어져줘서 고마워'와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의 찢어지는 후렴은 소음에 가깝고, 그 내용 역시 사랑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면모를 담아내는데 급급하다. '양산형 발라드'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대중의 감정을 어루만질 수 있는 노랫말을 적재적소 음색과 음량 조절로 전달하는 것이 발라드의 매력이라면 지금의 곡들은 모두 실격이다. 이런 곡들이 SNS 상에서 '실력 있는 가수의 노래', '가창력 폭발' 등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도 좋지 않고 이를 소비하는 세대에게도 악영향이다. 과거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불러왔던 고음 지상주의가 겹쳐간다. 천천히 성장해야 할 아티스트에게도, 정말 좋은 곡을 접하지 못하는 대중에게도 서로 악영향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발라드는 항상 사랑받아왔다. 1980년대 유재하와 이문세, 1990년대 변진섭과 신승훈 그리고 이승철이 있었다. 훗날 벤, 임재현, 닐로, 케이시, 송하예도 2010년대 말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기억될까.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이들은 음악으로 기억되기보단 SNS, 스트리밍 차트, 바이럴 마케팅의 일부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글 | 이즘 김도현 (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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