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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이어질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탈한 오늘』 문지안 저자 인터뷰

무한히 이어질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어땠어?“라고 물으면 "그냥 똑같지 뭐"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 오늘이 과연 또 올까에 대해 생각해보면 답은 조금 달라진다. 평생을 사는 동안 똑같은 오늘은 단 하루도 없으니, 사실 오늘은 모두 특별한 셈이다. 『무탈한 오늘』은 이렇게 특별한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다고 심각하지 않다. 매일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웃으며 오늘에 충실할 뿐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고 지내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 혼자서도 곧게 걸을 수 있게 하는 근육, 해야 할 일을 떠올릴 수 있는 기억력, 1억 5천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햇살, 그리고 짧은 시간 사랑하고 긴 시간 무덤덤하게 대하고 있는 우리 곁의 존재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뿐이다. 당연하게도, 무한히 이어질 일상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일상의 무탈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간단하게 책 소개를 좀 해주세요!

 

매일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조금씩 끝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아무 일 없이 사는 저도,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제 사람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더 짧은 수명을 가진 개와 고양이들은 더 빠른 속도로 끝에 다가가고 있었죠.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수명이 다하는 어느 날, 갑자기 혹은 서서히 헤어질 존재들이잖아요.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는 대신 끝이 있음을 인정하고 나면, 개인이 확신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 단위는 ‘오늘’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은 그런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오늘’에 대한 기록들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제게는 간절했던 안온한 순간들, 언젠가 돌아보면 전성기일지도 모를 무탈한 오늘. 그날들이 더해지며 이어지는 행복에 대한 생각을 담고자 했습니다.

 

‘세상에는 안온한 일상을 갈망하는 이들이 있다’는 내용의 프롤로그를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조금 짐작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암에 걸렸음을 안 날부터 수술 받은 날까지 나흘 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마음의 준비는커녕, 제대로 생각할 시간도 없었죠. 수술 전날 밤, ‘내일 수술하고 못 깨어나면 이것이 마지막 밤이구나’, 그제야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이면 갖은 후회가 밀려오고 여러 가지 장면들이 지나간다고 하던데, 정작 저는 그런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어요. 큰 후회가 없었고, 못 해봐서 아쉬운 일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고요. 오히려 이만하면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끼는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지만, 홀가분해서 신기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재발 가능성에 불안해하며 살지 않았어요. 암에 대해서는 잊고 지냈거든요. 긴 여름 방학을 마치고 돌아와 새 학기를 준비하는 수많은 학생들 틈에 섞여, 저 역시 그들 중 하나인 것처럼 생활하기 시작했어요. 그저 살던 대로,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은 채. 그러나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면 늘, 결국 제가 잃게 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듣곤 했죠. 병을 대하는 제 방관적인 태도가 저를 아끼는 이들을 얼마나 슬프게 할지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제가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잡아본 적 없는 미래의 시간들이 아니라 오늘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는 제 곁의 안온함이었어요. 이토록 확실한 행복을, 미래의 불확실한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 삶의 끝을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때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 생각이 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싶었죠. 내일일지, 일 년 뒤가 될지, 언제가 될지 모르니 일단 오늘을 완결성 있게. 긴 날들을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하루하루를 붙여 긴 날이 되어가는 식이면 좋겠다고요. 그런 날들이 붙여져 오늘까지 살아있음은, 운이 좋은 일이지요.

 

여섯 마리의 개와 다섯 마리의 고양이의 가계도도 눈에 띄었어요. 인간과 동물이라는 경계보다는 생명을 가진, 함께 살아가는 식구들 같은 느낌이에요. 군단의 오늘도 무탈한가요?

 

사상충에 감염되어 심장변형이 생긴 상근이는, 4년 넘도록 하루 두 번씩 7-8알의 약을 먹고 있어요. 처음 진단 받았을 때, 사상충이 외과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자리에 있어 수술도 불가능했고, 약물 치료는 치료 중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죠. 같이 있고 싶다는 우리의 욕심으로 녀석의 남은 생을 침범하고 싶지 않아서, 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고 불편을 덜어주는 식으로 돌보기로 했어요. 하루 두 번씩 약을 먹이기로요. 그런 식의 관리로 사상충이 없어지는 경우가 몹시 드물게 있다고 했지만, 말하는 선생님도, 듣는 저희도 믿지 않았죠. 그때부터 짬이 날 때면 그 드물다는 경우를 찾으려 논문을 뒤져보곤 했어요. 안도를 줄만한 작은 숫자를 찾아 수많은 논문을 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군요. 그래서 가혹한 확률을 믿는 대신, 그저 살아있는 동안 잘 지내기로 했지요.

 

하루 두 번 약을 먹이려니 반나절도 공방을 비울 수 없었어요. 휴일에도 스탭들이 교대로 출근하고, 여러 사람이 챙겨 먹여야 하니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약을 표시해두고, 먹인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를 만들고, 그런 식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상근이를 챙겼지요. 그리고 얼마 전, 4년 8개월의 투병 끝에 상근이는 더 이상 사상충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런 결과를 기대한 적이 없어서 우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했지요.

 

물론 사상충이 없어졌다고 상근이가 백 년 더 살지는 않아요. 심장 변형은 비가역적인 병이라 천천히 진행될 거라는 예측은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어떤 모습이든, 곁에 남아있다는 것은 의미 있게 마음 쏟을 기회가 아직 있다는 뜻이겠죠. 이것이 작년 연말, 애프터문 스탭 전체가 가장 커다란 만세를 불렀던 소식입니다.

 

생명, 관계, 일까지 삶을 이루는 요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안에서 밖으로 넓어지는 것 같아요. 어떤 기준이 있었던 것인가요? 혹은 각 소제들이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실험실에서, 저와 함께 살던 토끼와 같은 모습의 실험동물을 마주한 날, 저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코를 움직이는 모양도, 두 발로 일어서는 모습도 똑같았거든요. 아파서 버려졌던 토끼를 살리려 저는 그토록 애를 썼는데, 두 시간 후에 눈앞에 있는 이 동물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내 토끼에게 하면 안 되는 일을 왜 너에게는 해도 되는지, 사람에게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일을 왜 너에게는 해도 되는지, 행여 이 실험으로 얻어지는 엄청난 성과가 있더라도 네게 돌아갈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너는 동의한 적이 없는데 이건 누가 정한 것인지.

 

아마 그 일은,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이 약한 존재에게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처음 생각하게 된 사건이었을 거예요. 사람의 입으로 말하는 논리적인 목소리들, 그들이 말하는 필요와 당위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어요. 스스로를 합리화해서 죄책감을 지우기보다, 제 방식으로, 약한 존재를 살피는 일로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자 길 위의 개들이 눈에 들어오고, 개보다 더 불안하게 사는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무생물처럼 여겨지는 나무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 약한 사람들도요.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익숙한 존재들에 마음이 한 발짝, 두 발짝 다가가며 조금씩 넓어지는 시선이 생겨났겠지요, 아마도.

 

결국 모두가 유한한 삶을 살다가 사라질 존재들인데, 무엇을 위해 다른 존재를 이토록 아프게 할까, 그렇게 거친 맘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애잔한 시선이 점점 멀리 닿게 된 것 같아요.

 

가구 공방 ‘애프터문’의 이야기도 해볼까요?

 

애프터문은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공방입니다. 가구를 원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나하나, 찬찬히 만드는 식으로 느리게 움직이지요. 이곳에서 쓰는 나무들은 대부분 저의 할머니보다 오래 살았던 나무들이예요. 나무는 흔하고 익숙한 소재인 까닭에, 한 때 생명을 가졌고 빛에 반응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은 쉽게 잊히죠. 이들이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십 수 년 가구를 쓴다는 것조차 긴 시간이 아니에요.

 

우리는, 가구라는 형태로 모양이 바뀐 나무가, 원했던 이의 공간에서 오랫동안 고운 시선을 받으며 머물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디자인, 제작 방법, 운영 등 생각해야 할 일은 많지만 접근하는 방향은 늘 같아요. “사기 전에 오래 생각하기를, 만드는 이가 쓰는 이의 시간을 떠올릴 여유가 있기를. 보는 이의 마음을 오래 붙잡을 만큼 아름답게, 시간의 흐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게“ 입니다.

 

밑줄 치면서 읽게 만드는 구절들이 많아요. 그럼에도 『무탈한 오늘』에서 작가님에게 가장 인상 깊은 한 구절을 뽑아주신다면.

행복,이라는 가치는 긴 시간 하염없이 드리우는
온화한 것이라 믿었는데
살면 살수록 그것은
찰나의 반짝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수천억 개의 별빛으로 이루어진 은하수처럼,
수천억 개의 빛나는 찰나가 모여
행복이라 부를만한 따스함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한 때 저는, 행복은 일정한 기울기를 가진 직선이라, 그 직선상에 있으면 일관되게 제가 행복의 감각을 느끼리라고 생각했어요. 매일이 따사롭고, 설레고, 즐겁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지요. 무탈하기만 한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무너진 날들이 얼마간 이어지면 불안해지곤 했어요. 무언가 바꿔야한다고 애쓰곤 했지요. 그것은 행복에 대한 강박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의 형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점으로 이루어진 느슨한 덩어리 같은 것이에요. 수많은 별들이 만든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점들이 모여 만든 두루뭉술한 형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설렘에 반짝이는 날도 있고, 슬프지만 빛나는 날도 있어요. 바닥을 치면서 위태롭게 번쩍이는 날도 있고요. 색과 온도가 제각각인 기이한 반짝임들이라 하나하나 뜯어보면 행복이라 여기기 어려운 순간들도 많지만, 은하수를 이루는 모든 별이 밝을 필요는 없잖아요.

 

빛나는 찰나를 하나하나 더해가는 식으로, 까만 밤하늘에 별을 하나하나 보태는 장면,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을 몹시 좋아합니다.

 

책을 통해 특히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도 부탁드려요!

 

우리는 대체로 평균 수명을 기대하며 살지만, 평균이라는 말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지요. 그것은 개인에게 남은 예상 수명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크게 애쓰지 않아도 별 일 없이 이어져 왔으니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애쓰지 않아도 이어졌음이야말로 축복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요. 어느 날이 오고 나면,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더해보아도 어느 지점의 무탈함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아요. 당신과, 당신 곁의 존재, 당신의 평화를 지지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다함께 무탈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누군가의 애씀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당신에게 그럴 만큼의 운이 남아있어 오늘 하루가 무탈하다면, 이것이 마지막이어도 좋겠다는 감정을 곁의 이들에게 전하기를 바라요. 아직 옆에 있을 때, 잘못을 만회할 기회가 있을 때,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을 때.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무한히 이어질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탈한 오늘

문지안 저 | 21세기북스

 

수천억 개의 별빛으로 이루어진 은하수처럼, 수천억 개의 빛나는 찰나가 모여 행복이라 부를만한 따스함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행복은 결국 오늘의 합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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