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흔한 오해들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디지털 노마드』 도유진 저자
디지털 노마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가벼운 노트북, 무선 인터넷 등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낯선 개념이기 때문에 높은 궁금증만큼이나 이에 대한 오해도 많다.
과연 사무실을 벗어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디지털 노마드는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고 살아갈까? 이러한 일과 삶의 방식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도 가능할까?
도유진 작가는 국내에 블로그와 칼럼 등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알려온 인물이다. 또 세계 곳곳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회사 경영진들의 인터뷰를 담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노마드 다큐멘터리 ‘원 웨이 티켓’을 제작, 감독하기도 했다. <포브스> 등 해외 언론이 먼저 주목한 이 다큐멘터리는 제작을 마치고 올해 하반기 공개를 앞두고 있다. 다큐멘터리보다 먼저 공개된 책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디지털 노마드』 에서 저자는 디지털 노마드의 등장 배경부터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펼쳐질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대해 풀어놓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주변 국가들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담아냈다.
도입부를 읽다가 재택근무도 원격근무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원격근무와 디지털 노마드, 그리고 재택근무의 개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원격근무(remote work)는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모든 업무 형태를 이야기합니다. 말한 것처럼 재택근무도 원격근무의 한 형태인데요. 예전에는 작고 가벼운 랩톱, 와이파이가 없었으니 사실 지금처럼 이동하면서도 업무가 가능하진 않았죠. 그렇지만 정보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무실은 물론 집이 아닌 곳에서도, 인터넷만 된다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원격’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이야기합니다. 국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시작된 게 비교적 최근 일이지만, 사실 1970년대부터도 많은 학자들이 예고했던 일과 삶의 방식이기도 하죠.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면 항상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요. 책에서 이런 부분을 굉장히 경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구글에서 ‘디지털 노마드'를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제일 많이 나오는 게 바로 지구 반대편을 떠도는 배낭여행자나, 해변가에 느긋하게 앉아 칵테일을 마시며 랩톱을 들고 있는 모습 같은 것들 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디어가 만들어 낸 환상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는 원격근무를 통해 장소와 관계없이 일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것이지, ‘끊임없이 방랑하는 배낭여행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노마드 중에서도 정착과 이동을 번갈아 하는 사람들, 몇몇 도시에 근거지를 두고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들이 있는 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들 등, 이 자유를 이용하는 방식 역시 사람마다 또 상황에 따라 가지각색입니다. 디지털 노마드가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오해는 현실과도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이들을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사람들' 이라는 편견으로 쉽게 이어집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소속 없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만이 디지털 노마드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을 보고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기업에 소속된 직장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한편 부럽기도 했습니다. 프리랜서가 아닌 사람들도 디지털 노마드로 살 수 있나요?
국내에 원격근무 시행사가 드물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디지털 노마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근무하는 일반 직장인에 비해 생계유지나 경력면에서 훨씬 불안정하다’는 오해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는 다릅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모두 다 프리랜서는 아니듯, 디지털 노마드도 원격근무 시행사의 직원, 클라이언트를 위해 원격으로 일하는 프리랜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가 등 다양합니다. 또 생각보다 프리랜서의 비중이 높지 않아요. 2010년 쯤에 미국에서 했던 조사가 있는데, 이 조사에 따르면 기업에 소속된 원격근무자의 비중이 전체 원격근무 인구의 절반 이상인 59.6퍼센트입니다. 오히려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는 34.6퍼센트로 더 낮은 숫자죠. 이런 결과는 기업이 원격근무를 도입하면서 원격근무 인구 자체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으로 프리랜스 이코노미의 대두와 함께 다양한 고용 형태가 증가하면 점차 프리랜서의 수가 사기업에 소속된 원격근무자들의 수를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은 해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도 더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나타나려면 가장 먼저 기업과 조직이 원격근무를 도입해야겠죠.
기업이나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출퇴근을 하는 게 관리가 더 쉽지 않나요? 기업들은 왜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건가요?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인 만큼,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원격근무를 채택할 리 없겠지요.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중 만난 수많은 경영진들이 원격근무 시행의 장점들로 꼽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무실 임대료와 같은 높은 고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인재 채용에 있어 ‘거리’의 장벽이 없는 데다가, 기존 방식에 비해 업무 효율성뿐만 아니라 직원의 충성도 역시 높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질적인 야근 문화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업무 시간이 길기로 유명하지만 업무 효율성은 한참 바닥입니다. 개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조직의 통일성과 획일화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조직원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재의 문화가 신입사원 퇴사율의 증가, 업무 효율성의 저하와 같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죠. 이제 이러한 한국 사회의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면대면을 선호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점점 더 사람들은 전처럼 한 기업에 매몰되어 평생을 바치고 일하고 싶어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전 세대까지는 그렇게 일해서 가정을 부양하고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책에 등장한 로센 부부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나이가 많은 까닭도 있지만, 직업이 변호사와 작가라는 점이 의외였습니다. 사실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면 IT기업에 다니는 젊은 개발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런 편견을 깨는 사례였습니다.
디지털 노마드가 젊은 밀레니얼 세대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에서도 한번씩 등장하는 오해입니다. 하지만 2015년 하버드 대학에서 디자인ㆍ행동과학을 강의하는 베스 앨트린저 교수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가한 디지털 노마드 중 밀레니얼 세대의 비율은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다른 여러 조사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업무 형태와 유연한 기업 문화’를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경험도 경력도 부족한 이들에 비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춘 경력자 층이 오히려 고용주와 업무 형태나 조건을 협상하기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원격근무에서 오는 유연성과 자유를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데 활용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죠.
한편으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IT기업만 가능하다’ 또는 ‘개발자들만 디지털 노마드로 살 수 있다’입니다. 사실 원격근무 시행사로 이름난 회사의 상당수가 정보 기술 관련 기업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이들은 이미 각종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데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원격근무로의 전환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노마드가 모두 개발자들인 것은 아닙니다. IT 기업들도 전 직원이 개발자로 구성된 곳은 없을뿐더러, 우리가 보통 ‘전통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의 기업들 중에서도 원격근무를 적극 도입하고 시행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재 해외의 원격근무 시행사들을 살펴 보면 마케팅, 금융업, 법률사무소, 보험회사, 유통업체까지 그 분야가 매우 다양합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책을 쓰면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많은 질문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 혹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특히 한국에서 유일하게 거듭 받았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문의 순서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원격근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를 먼저 결정해야죠. 디지털 노마드가 되려고 어떤 일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요. 저 질문은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거죠.
이 질문은 디지털 노마드를 뭔가 특별한 소수의 특이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이것이 되기 위해서 검증되고 획일화된 비법 같은 것이 있다는 가정 하에 나옵니다. 똑같이 경제활동을 하지만 원격근무를 통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장소의 자유를 가지게 되는 일과 삶의 방식이 아니라, 소위 ‘일반인들’과는 어떤 독특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거죠. 앞서 이야기한 ‘디지털 노마드는 OOO이다'와 같은 오해들과 같은 맥락입니다.
디지털 노마드는 특이한 사람들도 아니고, 남다른 비법이나 노하우로 여행하며 자유를 누리는 행운아들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경제활동을 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단지 원격근무를 통해 출퇴근을 안 할 뿐이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이런 경우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하여 우리 사회에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가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원격근무 시행이 어려울 거다’라는 시각도 많습니다. 조직 문화나 사회의 인식에서 해외 사례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다큐멘터리가 이미 원격근무가 도입되고 있는 북미 및 유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이 책을 준비하면서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국내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의 현 상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이러한 일과 삶의 방식에 국내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대도시 집중화, 일과 삶의 균형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지, 또 이 새로운 흐름을 우리가 어떻게 도입하고 또 준비할지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인터뷰한 많은 경영진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이미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변화를 반기든 반기지 않든 상관없이 세상은 이미 바뀌고 있고,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도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인구를 확보하기 위해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죠. 물론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 조직 문화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원활한 원격근무를 위해 필요한 모든 기반 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빠른 인터넷으로 유명하고, 사람들도 각종 IT기기와 소프트웨어를 아주 능숙하게 다룹니다. 문제의 인식과 개선의 시작 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소 상대적으로 오래 걸렸을지라도, 한번 시작하면 많은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고,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이 다음 일과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실험하고, 또 발전시켜 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제 다큐멘터리와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도유진 저 | 남해의봄날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들며 70여 디지털 노마드와 원격근무 시행기업을 심층 인터뷰하여 세계 최초로 다큐멘터리 ‘원웨이티켓One Way Ticket’을 제작, [포브스] 등 해외 언론이 먼저 주목한 화제작을 책으로 담았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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