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엄마와 딸은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관계”
거부하는 사람. 거부당하는 사람. 동의하는 사람, 동의하지 않는 사람.
이를테면 이런 간극에 있는 사람을 통해 바라본 동성애와 우리 사회
『딸에 대하여』는 딸을 이해하려는 엄마의 노력”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살며 노인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가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과 동거하며 벌어지는 일상의 변화를 느릿하고 가까운 시선으로 보여 준다.
김혜진 작가는 힘없는 이들의 소리 없는 고통을 ‘대상화하는 바깥의 시선이 아니라 직시하는 내부의 시선’으로, ‘무뚝뚝한 뚝심의 언어’로 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성을 인정받아 온 작가다. 신간 『딸에 대하여』는 성소수자, 무연고자 등 우리 사회 약한 고리를 타깃으로 작동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날선 언어와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구현하며 우리 내면의 이중 잣대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김혜진 작가만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딸에 대하여』는 어떤 소설인가요?
소설의 주인공은 60대 여성인데요. ‘나’는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젠’이라는 노인을 돌보고 있고요, 외동딸이 자신의 동성 연인과 함께 ‘나’가 사는 집으로 들어오면서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 소설은 딸을 이해하려는 엄마의 노력으로 읽을 수도 있고요. 또 나이가 들어서도 끝없이 일해야 하는 여성들의 노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퀴어를 소재로 하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설정한 점이 독특합니다. 관계 설정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거부하는 사람. 거부당하는 사람. 동의하는 사람, 동의하지 않는 사람. 이를테면 이런 간극 사이에 있는 사람을 통해 동성애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사랑이 용인되지 않는다고 할 때, 그건 사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의 문제만이 거부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사회적인 위치나 지위, 경제적인 문제 같은 것들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결국 불리한 자리로 내몰아 버리잖아요. 그래서 당사자가 아니지만 이런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인물을 생각하게 됐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화자가 된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사회적 분위기, 문제의식이 있었나요?
이 소설은 지난해 여름에 쓴 것인데요. 지난해는 미국에서 동성애가 합법화 된 것이 이슈였죠. 또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요. <캐롤>이나 <아가씨> 같은 픽션 영화뿐만 아니라 <불온한 당신>이라든가, <폴리티컬 애니멀>, <살렘의 남서쪽> 같은 다큐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제가 광화문이나 시청 주변을 자주 지나다니니까, 시청 광장에서 열린 퀴어 축제도 경험했었고요. 아마 이런 문화적 체험들이 소설을 쓰는 데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할까요.
엄마의 시선이 주된 시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엄마는 딸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가족이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관계이기도 한데요, 엄마의 생각과 행동을 어느 정도의 톤으로 설정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엄마(부모)는 자식인 딸에 대해 이해하고 싶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딸을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엄마라는 사람은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가장 소극적이고, 또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이런 엄마의 이중적인 내면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물을 설정하려고 했습니다.
이 소설은 엄마, 딸과 딸의 연인뿐만 무연고 치매 노인 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젠은 평생을 타인에게 헌신하고 타인을 돌보는 삶을 살았지만 종국에는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런 젠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고요. ‘여성의 노후’에 대한 문제를 많이 고민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노후에 대한 걱정은 제가 늘 하는 것인데요. 막연하게 생각해도 늘 불안한 것 같아요. ‘젠’의 경우엔 젊은 날 존경받는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결국 요양원에 내던져지다시피 하고요. 뭐랄까, 우리 사회가 늙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이고 인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 간에 나이가 든다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고요. 두려워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고요.
작가의 말을 보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소설을 쓰기 전과 쓰고 난 후, 작가님에게 나타난 변화가 있나요?
언제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대부분은 실패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너무 괴롭고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는 마음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해는 노력하는 순간에만 겨우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어떤 것, 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요. 이해할 수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해에 가닿기 위한 무수한 시도들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기대하는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책이 어떤 존재감을 지니는 책이 되길 기대하는지요.
소설이니까 재밌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고요. 나에 대해서, 또 우리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의문들, 질문들을 가지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김혜진 저 | 민음사
‘퀴어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최선의 이해’에 도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의 한계와 가능성이 서로 갈등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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