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을 지키는 수호천사, ‘슈퍼 히어로’ 김연견입니다
활약을 보고 있자면 우주소녀 쪼꼬미의 ‘슈퍼 그럼요’의 가사가 떠오른다. ‘바람처럼 나타나, 폭풍처럼 나타나, 당신 곁을 지키는 수호천사.’ 현대건설의 코트를 든든하게 지키는 김연견과 딱 어울리는 가사다. 공이 향하는 자리를 항상 지키고 있는 현대건설의 ‘슈퍼 히어로’를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의 어느 날에 만나봤다.
또 한 번의 질주
달라진 건 ‘이기자’가 아닌 ‘해보자’
현대건설은 2021-2022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에 자신들이 세운 개막 12연승 기록도 이미 넘어섰다. 백어택과 서브, 속공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팀 공격성공률, 블로킹, 오픈공격 등의 부분에서도 선두를 넘볼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수들의 좋은 활약과 함께 김연견의 빛나는 수비도 빼놓을 수 없었다.
Q. 2년 만에 <더스파이크>와 인터뷰입니다. 오랜만에 사진 촬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오랜만이라 그런지 반가워요. 그 당시에도 사진 촬영을 재밌게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재밌게 촬영했습니다(웃음).
Q. 강성형 감독은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버티는 힘’이 생겼다고 합니다. 선수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맞아요. 훈련이랑 경기를 치를 때 연승에 대해서 선수들끼리 ‘계속하자’ 이런 분위기는 아니에요. 다만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스스로 빨리 풀어나가는 능력이 다 좋아졌어요. 서로 더 강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지난 시즌에는 무너지는 경기도 많았어요.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줄어들었어요.
Q. 감독님이 경기 도중 가장 강조하는 건 뭘까요.
코트 안의 분위기를 정말 중요하게 여기세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안 된다고 하고, 항상 선수들과 소통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좋아하세요. 훈련할 때도 항상 이 부분을 강조하세요.
Q. 이번 시즌 12연승을 달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을까요.
5세트까지 가서 이긴 경기들이요. 충분히 빨리 끝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체력 소모가 심했어요. 그럼에도 위기들을 잘 넘겨서 이길 수 있었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Q. 코트 안의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이기자’라는 느낌보단 ‘해보자’라는 느낌이 드는데, 정확하게 본 게 맞을까요.
오 맞아요. 이기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경기력이 제대로 안 나와요. 선수들도 힘이 더 들어가는 게 보이고요. 이기자는 마음이랑 우리가 풀어나가야 한다는 건 다른 마음이더라고요. 그래서 코트 안에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상황마다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해요.
Q. 오랜만에 코트 안에서 팬들의 함성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큰 힘이 될 듯합니다.
정말 많이 도움 돼요. 응원 소리에 더 집중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 덕분에 우리도 기량이 좋아지고, 자연스럽게 경기력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Q.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은 뭔가요.
선수들끼리 더 끈끈해졌어요. 야스민도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우리도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어떤 선수가 코트에 들어와도 충분히 자기 자리에서 잘하고 있어요. 모든 톱니바퀴가 잘 맞물리니깐 작년보다 더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Q. 개인 기록도 좋습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시즌을 오래 치르면 상대 팀 선수들도 주전 라인업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서 상대 선수들의 공격 코스 영상을 많이 봐요. 전체 미팅할 때나 혼자서도 생각날 때 영상을 꾸준히 보면서 미리 눈에 익게 만들어요.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작년보다 더 잘 되고 있다고 느껴요. 비시즌 때 대표팀에 다녀온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국제무대에서 강한 공을 받으면서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대표팀의 경험을 시즌 때 접목해서 하려고 하니깐 지금의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을까요(웃음).
“함께 살면 더 좋은 모습을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비시즌 이야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해 7월 16일 프로야구 SSG 랜더스 투수 서동민 선수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동생이 소개해줘서 처음 만나게 됐는데, 8년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하게 됐습니다(웃음).
Q. 어떤 분인지 짧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 둘 모두 MBTI가 I로 시작해요. 남편은 입이 무겁고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자기 일에 있어선 성실하게 해요. 서로 운동선수다 보니 운동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생각이 많이 맞았어요. 선수로 열심히 하는 모습에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선수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같이 살아가게 되면 좋은 모습을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남편분 첫인상은 어땠나요.
워낙 덩치가 좋아서 처음 봤을 때 놀랐던 게 첫인상으로 남아있어요(웃음).
Q. 결혼식은 전지훈련이 끝나는 다음 날 진행됐습니다. 원래는 전지훈련 일정을 소화하려다가 강성형 감독의 만류로 결혼식 준비를 하게 된 에피소드, 길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만약에 전지훈련을 가게 된다면 하루 이틀 일정만 소화해야 했어요. 훈련 장소까지 구단 버스가 아닌 차를 직접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몇 시간 운전을 해서라도 따라가려고 했는데,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가지 말고 결혼식 준비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덕분에 결혼 준비를 수월하게 했습니다(웃음).
Q. 결혼 이후 달라진 게 있을까요.
생활 부분에선 변한 건 없어요. 서로 시즌이 달라서 원래 잘 못 봐요. 그래도 마음적으론 안정감이 많이 생겼어요.
Q. 야구는 시즌이 여름이고, 배구 시즌은 겨울이라 만날 시간이 적은 것에 아쉬움은 없을까요.
당연히 아쉬워요. 시간이 아예 안 맞아서 신혼여행도 못 다녀왔어요. 여행을 쉽게 가지 못하는 게 아쉽죠. (만약 가게 된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유럽이나 한국에서 먼 나라로 길게 다녀오고 싶어요.
Q. SSG가 2022년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개막부터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우승하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현대건설도 지금까지 선두를 달리고 있고요. 남편분과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합니다.
전에도 같이 성적이 좋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도 신기하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네요(웃음). 작년에 SSG 응원을 많이 했는데 우승을 한 덕분에 이젠 좋은 기운을 내가 받아서 하고 싶죠.
단단하고 정확하게,
“더 주체적인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Q. 신인 시절과 비교했을 때 배구선수로, 사람으로 가장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배구를 주체적으로 하려고 해요. 리베로라는 포지션은 실수를 하더라도 공격수처럼 공격해서 만회할 기회가 많이 없어요. 어릴 때는 노련미랑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열심히만 했죠. 잘 안될 때 풀어나가는 능력은 밑바닥까지 한 번 가보고 경험을 쌓아야 하더라고요. 여러 경험을 통해 단단해지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사람으로도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해요.
Q. 아직 배구에 대해서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리시브랑 수비에서 정확성이 더 좋았으면 해요. 정확성이 좋아야 더 많은 플레이를 할 수 있잖아요. 어릴 때는 없었는데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 메모도 많이 해요. ‘이렇게 해야 했지’라고 계속 상기시킬 수 있게요. 그리고 운동할 때도 계속 생각하면서 몸에 익으려고 해요.
Q. 지금까지 배구공을 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가족이죠. 안 됐을 때 가족에게 기대는 게 있어요. 그럴 때마다 ‘집에 와서 편히 쉬어’라고 해주는 이야기가 듣기 좋죠. 항상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는 덕분에 지금의 자리가 소중하다는 걸 더 느낄 수 있어요.
Q. 리베로는 직접 득점하지 못하는 포지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려낸 공을 동료가 득점으로 연결했을 때 기분은 어떤가요.
물론 좋은 리시브랑 디그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따로 있어요. 내가 받은 공이 세터에게 타이밍 좋게 올라갔고, 그걸 공격수가 때렸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세 명의 호흡과 타이밍이 100% 딱 맞았을 때 가장 희열을 많이 느껴요.
Q. 2015-2016시즌 이후 아직 별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탓에 두 시즌이나 정규리그 1위에 그친 만큼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클 것 같습니다.
우리 팀 모두가 우승이 간절해요. 지난 시즌의 아쉬움도 있다 보니 더 욕심이 있어요. 그 목표를 보고 모두가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생겨서 다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이번 시즌이 끝나면 세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됩니다.
벌써 3번째인데 FA를 생각하면 시간이 잘 가는 것 같아요(웃음). 잘하다 보면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요.
Q. 3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진 마음가짐이 있다면.
항상 배구를 하면서 불안감을 가지고 했어요. 긴장감이라고 할까요. 예전에는 여유도 없었고, 불안한 게 많았어요. 더 배구를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워요. 이제는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깐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어떻게 하면 배구를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돼요.
Q. 어린 후배들도 많아졌습니다. 후배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요. 다만 충분히 잘 할 수 있는데 자신 없어 할 때 아쉬워요. 더 자신 있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거든요. 그럴 때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배구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
Q. 지금까지의 배구 선수 생활은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70점? 너무 좋고 소중한 경험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해야 할 배구들이 많은 것 같아 30점을 뺐습니다(웃음).
Q. 사람 김연견으로는 몇 점일까요.
음…60점이요. 사람들이랑 서로 잘 지내고 소통하려고 해요. 또 배구로 연결되는데(웃음), 결국 잘 지내고 소통하는 것 덕분에 팀원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Q. 본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배구는 어떤 존재일까요.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존재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한 경험을 전문적으로 하려면 시간을 들이는 게 엄청 필요하잖아요. 이 시간을 다른 곳에 쓰려면 그만큼 해야 하니깐요. 배구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끌고 왔다는 거에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고 소중해요.
Q. 은퇴하기 전까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기록이 잘 나오면 좋겠지만, 기록에 연연하게 되면 잘 안 돼요(웃음). 기록에 대해선 큰 목표는 없고 오로지 모든 선수가 찾아주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Q. 2023년의 나에게 기대하는 것들은.
부상 때문에 2년을 힘들게 보냈기 때문에 우선 건강하고 다치지 말고 건강 배구 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작년보다 더 좋아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부상 없이 시즌을 잘 치르고 싶어요.
Q. 끝으로 팬분들과 가족들에게 하고픈 말은 무엇인가요.
예전부터 응원해주고 있는 분을 비롯해 최근 들어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배구를 알게 된 것에 너무 감사해요. 경기장에 팬분들이 주는 기운을 무시하지 못해요. 그 힘으로 열심히 하게 돼요. 팬분들의 힘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경기장을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구를 하면서 가족을 비롯해 소중한 사람들을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워요. 최근 본가에 다녀왔는데 할머니 건강이 안 좋아진 게 느껴졌어요. 가끔 보는 게 죄송하지만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은 지금 부상으로 재활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부상을 극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경험이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에 항상 잊지 말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글_김하림 기자
사진_유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