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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 잡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유엔도 폐지 권고

TF기획-걸․리․법③

더팩트

지난 15일 법원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해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배드파더스'(Bad Fathers) 구 모(57) 대표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갈무리

대한민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다. 최근 형사 고소·고발건수는 연평균 50만건대에 이른다. 인구가 곱절인 일본의 50배 수준이다. 불필요한 고소·고발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이는 논란이 되는 '검찰권 남용'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 낭비에 한 몫하는 '죄를 만드는 법', '걸면 걸리는 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급증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비롯해 한국에서만 건재한 업무방해죄,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과 모순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등이 좋은 예다. 이에 <더팩트>는 기획 '걸·리·법'(걸면 걸리는 법) 3회 연재를 통해 직권남용·업무방해·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얼마나 남용·악용되면서 폐해를 낳는지 살펴봤다.<편집자주>

'현행 유지'는 변호사 10명 중 3명 뿐…"민사 제도 먼저 보완해야" 제언도

사실을 말했다고 최대 징역5년에 달하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형법으로 규정하는 한국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다. 현행 형법 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다만 진실한 사실로써(진실성) 공공의 이익에(공익성) 관한 내용일 때 처벌을 면한다는 면책 규정을 둬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공익 제보자를 보호한다. 또 실제로 진실과 거리가 멀더라도 표현행위자가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성이 인정되면 역시 처벌하지 않는 등 형사처벌이 난무하지 않도록 제어 장치를 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규정한 형법 조항 존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진실한 사실을 적시했는데도 처벌 대상이 되는 나라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고, 표현의 자유와 공익 제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지난 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소속 변호사 19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존 법규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33%에 불과했다. 16%의 변호사들은 법정형을 낮추는 등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고 절반에 달하는 49%는 존속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서지현(47·사법연수원 33기)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피해 폭로로 미투운동이 발돋움한 2018년 2월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시켜달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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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지난 15일에는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 관계자들이 2년간 법적 다툼 끝에 혐의를 벗으며, 주춤했던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15일 수원지법 형사11부(이창열 부장판사)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드파더스 구 모(57) 대표에 게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배드파더스가 심판대에 오른 건 지난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2018년 9~10월 배드파더스로 신상 정보가 공개된 5명의 부모가 낸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구 대표는 이혼 뒤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를 받은 이들의 사진과 이름, 미지급 양육비 등 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에게 전달해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해왔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 1년도 안된 지난해 5월 구 대표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실을 공공연히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벌금 3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약식기소란 검사가 공판을 따로 열지 않고 피의자에게 벌금형을 내려 달라며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것으로, 판사는 수사기록 서류만으로 명령을 내릴지 결정해야 된다. 그러나 법원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재판에 회부했고, 구 대표는 15시간에 걸친 국민참여재판에서 혐의를 벗었다.


구 대표 재판에서 쟁점이 된 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면책 조건인 공익성이었다. 검찰은 이혼한 부부가 양육비 미지급으로 갈등을 겪는 건 사적인 영역으로, 구 대표의 행위는 사익을 위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반면 구 대표 측 변호인단은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이라는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로, 구 대표의 행위는 공익적 활동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최종 진술에서는 "피고인을 처벌하는 건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가해자'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피고인을 처벌해 무엇이 남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예비 배심원 1명을 제외한 배심원 7명은 무죄 평결을 냈고, 재판부는 구 대표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20일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하며 이들은 또 다시 법정공방을 이어가게 됐다.

PD수첩·노회찬·박원순· 미투도 '사실적시' 피해자

변호인 최종진술처럼 표현행위자를 처벌해야 할 정도로 '명예'를 보호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사례는 많다. "공익 제보자를 공격할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MBC 'PD수첩'은 2008년 4월 광우병 위험성을 제기했다가 농림수산식품부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긴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9년 1월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PD수첩 사건을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였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금품 로비를 받은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을 발표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역시 생전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은 무죄라고 봤다. 국가정보원 민간단체 사찰 의혹을 제기했던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변호사) 역시 국정원으로부터 같은 명예훼손죄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해 대법원에서야 승소를 확정지었다.


미투운동 제보 속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죄로 역고소하는 사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은하선(32) 작가는 2018년 2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학창시절 교사 'M'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M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서부지검은 이듬해 1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했는데, 은 작가가 실명이 아닌 알파벳으로만 거론해 표현행위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만약 은 작가가 실명을 기재했다면 성폭력 피해 제보자 신분이 피의자, 나아가 피고인으로 바뀔 수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우 성범죄 특성상 공공연한 제보가 어려워 면책 사유가 되는 공익성을 증명하기도 쉽지 않아 이중고를 겪는다. 2018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펴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는 "'미투'한 성폭력 피해자가 명예훼손죄 가해자로 변질될 수 있는 아이러니하고도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언론에 나와 알리지 않으면 공익에 관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해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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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정보원)으로부터 명예훼손에 따른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박원순(64) 서울시장(왼쪽)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임하던 2009년 9월 17일 오전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에서 국정원 개입 관련 소송에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백승헌 당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표(변호사). /뉴시스

이같은 이유로 국제 사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비범죄화 흐름을 타고 있다. 같은 문헌에 따르면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 스위스와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독일 정도다. 독일도 진실한 사실을 말하면 대부분 처벌하지 않는다. 미국은 20세기 들어 명예훼손 행위는 형사처벌보다 주로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해 형사문제화 된 경우도 거의 없었다.


유엔(UN)은 2차례에 걸쳐 한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을 폐지 권고한 바 있다. 2011년 3월 유엔인권위원회, 2015년 11월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에서 각각 진실 방어를 위해 해당 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한국 사회 역시 각계에서 현행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태섭(53)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규정한 형법 307조 제1항을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해당 개정안은 또 일부 명예훼손죄에 대해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삭제해 명예에 관한 죄는 고소를 해야만 공소를 제기하도록 제한을 뒀다.


베드파더스 측을 지원한 손지원 변호사(사단법인 오픈넷)는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공익성이 인정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추상적인 개념인 공익성을 기준으로 범죄 성립과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짓는 건 위헌 여지가 다분하다"며 "진실을 숨겨야 지킬 수 있는 건 진정한 명예가 아닌 허명(허위 명예)"라고 강조했다.


이필우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입법발전소) 역시 "민사 손해배상 영역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울분을 형법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역시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충분히 배상된다면 형사 처벌할 가치가 없다는데 많은 분이 동의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국의 민사 제도는 해외와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당장 민사에 의존하기에는 범죄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우리 사회 화두인 '악플' 범죄 단죄도 어려워져 시기상조다. 민사 손해배상 제도 활성화 전제 하에 형법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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