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진 "'미스터트롯' 출전 안 한 거, 후회 안하냐고요?"
'장구의 신'이 된 트로트 가수 박서진
박서진/사진=텐아시아DB |
"영웅이 형을 위해 투표해 주세요."
이젠 국민 트로트 가수가 된 임영웅이 TV조선 '미스터트롯'에 출전했을 초반, 그의 든든한 지원군은 가수 박서진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임영웅을 위해 박서진이 자신의 팬카페에 투표 참여와 응원을 독려한 것. '장구'라는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던 박서진은 '미스터트롯' 방송에 앞서 '미스트롯' 진, 송가인의 라이벌로 불릴 만큼 이미 탄탄한 팬덤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트로트가 지금과 같이 전국을 뒤덮기 전에도 포털사이트 팬카페에서 대형 아이돌 그룹들과 선두를 겨루고, '전국노래자랑'같은 공개 방송에서는 45인승 버스가 20대 정도 출동했을 정도.
지난해 6월 부산에서 진행한 공연은 2300석 자석을 단숨에 매진시켰고, 일본 불매 운동 전에 기획된 크루즈 여행 상품으로 박서진이 곤란한 일을 겪을까 걱정한 팬들은 일본에 가지 않더라도 별도의 취소나 환불도 하지 않았다. 박서진 측은 이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무료로 디너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트로트의 인기가 전 세대로 확산되면서 박서진 역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제 겨우 25세인 청년은 "제가요?"라고 반문하며 "노래할 수 있다는 거, 그 자체에 감사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인기가 많다, 인기를 실감하냐, 이런 말을 요즘 많이 듣는데, 제가 인기가 많아서 불러주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특이하니까, 장구 치면서 노래하던 애가 없었으니까, 신나게 하니까, 그래서 불러주시는 거 같아요. 그래서 무대를 더욱 알차게 꾸미려 하고요."
이전엔 박서진 독주 체제였다면, '미스터트롯'의 인기로 "경쟁자"로 불릴 만한 젊은 남자 트로트 가수들이 대거 늘어났다. 그래서일까. 선글라스를 쓰고, 염색한 머리에 뽀글 파마를 했던 박서진은 최근 스타일링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을 모티브로 했다는 헤어스타일 대신 굵은 웨이브를 주고, 살도 빠졌다.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을 의식해서 그런거냐"면서 "왜 이렇게 멋있어졌냐"고 하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머리카락을 3~4년 가까이 파마를 계속하다보니 너무 상해서 더 이상 컬이 안 나왔어요. 어쩔수 없이 스타일을 바꾸게 됐는데, 반응이 좋아서 저도 기분이 좋아요. 선글라스는 방송을 하다보니 어르신들도 많이 보시는데 예의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아서 벗게 됐고요. '미스터트롯' 분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네 자리가 위험하지 않냐'는 댓글도 봤는데, 다들 각자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길이 있듯, 저도 저만의 길이 있고요."
박서진/사진=텐아시아DB |
박서진과 임영웅의 인연은 최근에도 TV조선 '사랑의 콜센타'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박서진은 "형과는 비즈니스"라며 선을 그으며 웃었지만, 임영웅에게 투표를 독려했던 박서진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임영웅도 "내가 유명하지 않았던 시기에 함께 콘서트를 해줘 고마웠던 동료"라고 박서진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아침마당'에 같이 출연하면서 친해졌어요. 그래서 같이 앨범도 내고, 콘서트도 하고, 행사도 하면서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계가 형성된 거죠.(웃음) 사람들이 '미스터트롯'에 출전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냐고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제가 둘째이모 김다비 님과 김수미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는데, '미스터트롯' 분들이 만나셨더라고요. 그때 부럽긴 했어요. 그 외엔 그런 생각도 해본 적 없어요."
어릴 때 방송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승승장구하며 활동한 것처럼 보이지만 박서진도 적지 않은 시간 활동의 어려움을 겪었다. 누구나 한 번만 보더라도 잊지 못할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장구를 배웠고, 퍼포먼스로 접목시킬 때만 하더라도 비웃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트로트 가수가 품위가 없다"는 비아냥까지 감내해야 했다.
"어릴 때부터 국악을 한 줄 아는 분들이 많으신데, 장구를 친 건 3~4년 정도 밖에 안됐어요. 앨범이 망하고, 뭔가 획기적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각설이가 장구를 치면서 봤어요. 가수도 장구를 치며 노래를 하면 새롭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그게 되겠냐'고 하셨던 분들도 요즘은 다들 장구를 치시더라고요.(웃음) 노래교실 선생님들도 장구로 박자를 맞춰 주시고요."
원색의 반바지 정장을 입고, 장구를 치며 무대를 활보하는 박서진은 의외로 차분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재치가 묻어있지만, 조곤조곤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말엔 수줍음을 숨기지 못했다.
때문에 활동할 때 오해도 적지 않았다고. 숫기가 없는 건데 "어린 애가 선배들을 피한다", "인사도 안한다"는 뒷담화도 들었다. 선글라스도 수줍어서 방황하는 동공을 숨기기 위한 장치였다고.
"처음엔 제 모습 자체가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웠어요. 너무 튀잖아요.(웃음) 머리도 뽀글뽀글하고, 장구까지 치는 게 처음이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관객분들이 좋아해주시니까, 만족감이 커요. 그 후엔 자신감 있게 하게 됐죠."
초등학교 1학년 때 행사장에서 관객 참여 이벤트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고, 그때 받았던 박수 소리를 잊지 못해 가수가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 세대 사람들이 가장 쉽게, 널리 사랑받을 수 있는 장르가 트로트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다른 장르는 바라보지도 않고 외길을 걸어왔다.
"어떻게 저를 이렇게까지 좋아해주실 수 있으실까, 신기하다"면서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던 박서진은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영상도 직접 편집해 올리고 있다. 담당 매니저가 촬영하면, 박서진이 편집을해서 업로드를 하는 방식이다.
박서진/사진=텐아시아DB |
"더 노래를 잘하고 싶다"면서 팬들이 챙겨준 영양제를 먹고 있다는 박서진은 "멋있다"는 말보다 "잘한다"는 말을 듣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저도 제가 외모가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고요.(웃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다'고 생각해요. 자만하지 않고, 엇나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오래 들어도 편안한 트로트 음악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가 죽어서까지 사람들이 듣는 음악을 남기는 게 목표에요."
때문에 코로나19로 자신의 노래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든 지금이 박서진에게 가장 힘든 시기이다. 트로트에 대한 관심이 가장 고조된 시기에 오히려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1년 사이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예전엔 어딜 가도 제가 막내였는데, 저보다 어린 트로트 가수들도 늘었고요. 그들을 보면 제가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선배님들이 이끌어주시는 대로만 하다가, 제가 선배가 되니 어색하더라고요. 팬층도 어려지고요. 트로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방송은 늘어났지만, 관객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건 너무 아쉬워요.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수를 한 거지, 인기나 돈 때문에 가수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앞으로 어서 관객분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1995년 태어나 경남 사천의 삼천포에서 자랐다. 17살 고등학생이던 시절 트로트 가수를 꿈꾸던 '바다로 간 트로트 소년' 이라는 타이틀로 KBS 1TV '인간극장'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16살에 두 형들이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 역시 암투병으로 힘들어했던 가정사부터 당뇨를 앓고 있던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면서도 가수의 꿈을 키워가는 모습이 감동을 전했다는 평이다.
이후 2013년 본명인 박효빈이란 이름으로 정식 가수로 데뷔한 박서진은 꾸준히 트로트 가수로 활약하며 차세대 트로트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특히 신명나게 장구를 치며 무대를 장악하면서 '장구의 신'으로 불리고 있다. 퍼포먼스 뿐 아니라 MBC 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KBS 2TV '불후의 명곡' 등에서 가창력을 뽐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입증했다.
김소연 기자 kimsy@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