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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사케 기행 2016년 서울 사케 페스티벌

12시간의 사케 기행 2016년 서울

하루 전에 예매한 행사 표로 인해 금요일부터 잠을 설쳤다. 일반적인 토요일이라면 눈을 비비적거리고, sns를 확인하며 늦장을 부리겠지만 부지런히 나갈 채비를 했다. 니혼슈 코리아에서 주최한 <서울 사케 페스티벌>참석으로 인한 부지런함이었다. 

 

나는 사케에 문외한에 가깝다. 짧게 체류한 동경에서 노미호다이 (무제한으로 맥주를 마시는) 제도를 찬양하며 생맥주를 마시는게 전부였고, 한국에 와서는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격이 저렴한 팩 사케를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셨다. 사케는 어쩐지 잘 재단된 기품이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서울 사케 페스티벌> 공고를 보고 음주 아드레날린이 분비 되기 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이 앞섰다.

 

동행하면 좋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음식관련 모임 카톡방에 공고를 올리고 동행자를 구했다. 외식 메뉴를 개발하는 입사 동기, 하이볼의 매력에 빠져 탐닉하는 모임의 회장님, 잘 알려진 일본음식점의 오너까지 세사람의 동행자와 함께 참가하기로 했다.

 

행사당일, 켜켜이 쌓인 타루(일본 전통 술을 담는 통)를 넘어 술기운이 가득한 행사장을 밀고 들어갔다. 크지 않은 전시장을 빙 두른 업체들과 400여종의 사케들이 행사장을 넘실거렸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2000여종의 사케는 수많은 취향을 말한다. 넓은 사케의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취향을 확인 할 수도 있고, 옆 부스의 사케가 좋은 이들의 취향은 존중된다.

 

한국에서는 아직 술을 음미하며 즐긴보다는 취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있다. 술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요리를 욕망하다>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사람들이 단 것을 찾는 이유가 수렵생활 속에서 안전하게 과일 따먹는 것에서 시작된, 본능에 기인된 것이라고 했다. 사케는 이런 달달함의 리버스숏(앞의 화면과 반대 시각의 장면)이라고 할 만큼 입체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다.

 

사케는 긴죠, 준마이, 다이긴조, 혼죠조, 겐슈 등으로 나뉘는데 쌀을 ‘얼마나 깎느냐(정미율)’에 따른 형식이다. 형식을 따라가지만 형식에 얽메이지 않아도 무방하다. 벚꽃을 넣어 발효를 하기도 하고 전통방식으로 쌀과 누룩을 섞어 만들 수도 있다. 공력이 더 들어 비싸지는 만큼 등급은 존재하지만 가격과 맛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 싼 것을 먹어서 주눅 들 필요가 없고, 비싼 것을 먹어서 으스댈 필요가 없다. 사케를 즐기는 이들은 이것들을 경쟁시키는 줄 세우기를 하지 않는다. 2000여종의 사케는 그 다양성의 존중에 대한 반증이다. 

12시간의 사케 기행 2016년 서울

행사장 안의 400여 종의 사케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술은 <유키노보우샤 준마이긴조>다. 유키노 보우샤 준마이 긴조는 전통적인 주조방식을 빗겨간 사케다. 쌀과 누룩을 함께 으깨서 발효시켰다. 발효 맛의 산미가 나고 무겁지 않게 산화된다. 청량감이 두텁게 자리 잡는다.  묵묵하게 갇힌 밀도 안에 사케의 표정이 모두 들어있고 묵직하게 목을 넘어가면 위장을 서서히 덥힌다. 

12시간의 사케 기행 2016년 서울

한바퀴를 돌고 허기를 참지 못해 안주 쿠폰을 들고 부탄츄 라멘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행사 기간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안주코너였다. 일본사람, 한국사람을 가리지 않고 선주후면의 미덕을 실천하는지 행사가 마무리 하는 시점까지 줄이 가장 길었다. 십여분을 기다려 라멘을 받아 들었다. 매장에서 먹는 것만큼 진득하고 짭짤했다. 쿰쿰한 돈코츠 육수로 속을 가라앉히고 차슈를 국물에 적셔 그릇을 비우니 뒤늦게 온 일행 한명이 합류했다.

 

뒤늦게 온 일행인 일본음식점의 오너는 사케는 댓병으로 먹어야 제 맛’ 이라며 사케의 본질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즐기면 되는 것 뿐이라고 사케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이처럼 현상은 복잡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일행 한 명의 합류로 새로운 사케를 시음하기 위해 다시 부스의 시작점으로 향했다. 평소에 맛보기 힘든 혼죠조(기본 정미율 70%)를 골라 시음하기도 하고,일반적으로 먹기 힘든 원주(겐슈)를 먹기 위해 전시회장 끝자락의 부스를 찾았다. 원주에서는 쌀의 삼라만상이 들어간 듯 복합적인 맛이 나면서, 기품 있는 향으로 미각을 압도했다. 준마이를 3년 발효한 술도 인상적이었다. 옅은 황토색의 발효된 준마이는 실온에서 간장처럼 감칠맛이 났다. 후각을 파고드는 발효취는 술에서 맛보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다.

 

수많은 취향의 존재와 취향 확인의 과정 중간에서 <서울 사케 페스티벌> 시종일관 적정 온도를 유지했다. 전시회장 앞에는 취해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정신을 부여잡으려는 사람도 있고, 전시회장의 테이블은 취객들에 의해 엎어지고 일으켜 세워지길 반복했다. 현악기로 연주되는 <La campanella>의 선율 속에서 사람들이 연주되고, 이국의 술에 취했다.

 

증정 받은 컵을 가방에 넣고, 일행의 가게에서 사케기행은 계속됐다. 기하급수적으로 사케와 소주가 비워지고 산술급수적으로 안주가 사라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정보와 음주, 식사가 누적되어 무거워진 몸으로 집에 와 잠에 들었다.

 

12시간의 사케기행은 가히 두통을 동반할 정도로 버거웠지만,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의 일요일 아침은 신기할 정도로 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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