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의 완탕면
음식산문 #2
한국에 포차가 있다면 홍콩에는 완탕면집이 있다. 완탕면은 완자(새우, 고기 등), 육수, 에그누들을 주재료로 만든 국수요리다. 조리가 간편해서 흔히 찾는 유명한 집도 많고, 오래된 노포들도 더러 있다.
홍콩의 완탕면은 싸고 푸짐하지만, 맛이 언제나 절대적이지 않아서 유명한 것보다는 접근성이 중요하다. 완탕면은 집 앞에 있거나 자주 다니는 골목에 있어야 좋다. 배달 중국집은 집 근처에 있는 것이 가장 맛있는 이치와 같다. 아무리 맛있는 완탕면 집이라도, 집에서 멀어지면 노고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해서 맛있게 먹기 힘들고, 포장을 하면 면이 망가지고 육수는 온기를 잃는다.
심신이 허기진 유학생 시절, 내가 자주 방문하던 완탕면집은 임시로 거주하는 멘션 앞 후미진 골목에 위치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자주 가다보니 광동어가 서툰 나에게 더듬더듬 만다린으로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덤으로 완자를 몇 개 더 넣어주는 날도 있었다. 주문을 받으면 할아버지는 면을 삶고 할머니는 완자를 준비했는데,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반대편 자리에 앉아 함께 맥주를 마셨다.
완탕면이 나오면 옆에 준비된 라유(辣油:고추기름)를 훌훌 뿌리면서 먹을 준비를 한다. 국물은 본래 그윽한 홍콩거리의 맛이 나지만 라유를 듬뿍 넣어 습한 거리의 향을 희석했다.
폐점시간에 짭짤해지는 국물에는 수란을 풀어 담백함으로 뒤섞었다. 면은 후루룩 빨아먹으며 입술에 타격감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생면이 아닌만큼 잘 풀어지지 않는 물성에 따라 들이키고, 끊어 먹었다. 입술에는 타격감이 없어 아쉽지만, 입안을 타고 흐르는 얇은 면은 잇몸에 감응한다.
완자는 새우와 고기 두가지를 고를 수 있다. 첫 그릇에는 새우를 고르는 사람이 많지만, 많이 먹어 본 사람들은 고기를 고른다. 고기완자를 풀어 만두국처럼 먹어도 좋고, 완자를 입 안 가득 채워 육향을 온전히 받아도 좋다.
접시를 반쯤 비우고 있자면 노부부가 맞은편에서 흐뭇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초로의 나이에 장사를 하니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휴일이었는데, 그런 날은 그릇을 가져와 국물, 면을 따로 담아 집으로 갔다. 이른바 일용할 양식이었는데,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참지 못하고 완탕면을 끓였다. 끓는 완탕면을 보며 타지의 외로움을 달래며 먹었다.
술을 마시고 먹고, 아침에 허기지면 또 한 그릇을 먹었다. 참 많이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