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맛, 맛다시
음식산문 #3
예비군 훈련장에서 덜 익힌 국수가락을 집어먹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 함께 국수를 먹은 아직 빳빳한 전투복을 입은 공수부대 출신 예비군이 식사를 마치고 믹스커피를 한잔하자며 눈짓한다. 식당 앞에서 믹스커피를 받아들고 밍밍한 국물에 부대끼는 속을 쓸어내린다.
- 맛다시가 있었다면..!
군대에서 먹는 음식들은 불완전한 형태임에도, 완전한 맛을 내야하는 사명감이 있다. 그 맛의 중심에 맛다시가 있다.
때는 2분기 마지막 훈련을 받는 6월 중순이었다. 광활한 훈련장에는 땀내가 진동하고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 뼈를 깎는 고통의 훈련이 계속됐다. 오전 내내 들리던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면 서서히 훈련의 끝이 보인다. 땅거미가 지면서 땀이 마르고, 선선한 밤기운이 훈련장으로 들어온다. 찬 바람에 주린 배가 요동치는 시점이 되면 좁은 텐트에서 은밀한 요리가 시작된다.
대개 이런 경우에 맛다시를 이용한 음식을 먹는다. 가능한 많은 재료를 배합하여 독창적인 요리를 완성해야 하는데, 계급을 가리지 않고, 가장 맛을 잘 내는 병사가 반합을 잡고 요리를 하게된다.
먼저 반합을 열어 일정량의 물을 붓고, 장작불로 끓인다. 물이 끓기 전 칼을 대체하는 스팸 뚜껑으로 소세지를 뚝뚝 잘라 놓고, 물이 끓으면 참치 캔을 기름까지 통째로 넣고, 자른 소세지를 넣는다. 소세지가 부풀어 오를 정도가 되면, 찬밥을 넣고 한번 더 끓인다. 밥알이 퍼지면 반합에 잔뜩 열이 오른다. 밥알이 형태를 잃어가면서 휘저었을 때, 수저에 달라 붙을 정도면 라면을 잘게 부수어 분말 수프와 함께 넣는다. 한 소끔 끓여주면 소세지, 참치가 부대찌개처럼 표면에 기름 층을 형성하고, 아래에는 함께 끓인 밥과 라면이 걸쭉해져 한 목소리를 낸다.
간을 보고 애매한 맛이 나면 맛다시를 넣는 시점이다. 맛다시를 넣으면 국물 맛이 더욱 살아나면서, 그 통렬한 향에 코 끝이 아릿해진다. 어죽처럼 걸죽한 식감이지만, 첫 맛에는 뇌가 짜릿하다. 그 강렬한 첫 맛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지속된다.
맛에 홀린 것처럼 정신없이 반합을 비우다 바닥이 보일 즈음, 찬 밥을 더 넣고 맛다시를 마저 털어넣는다. 첫 맛만 못할지언정 그 여운으로 너끈히 두어번을 더 비운다.
내리쬐는 달빛 아래에서 장병들은 장작불 사이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깊은 산 속에는 콧물소리와 반합을 서걱서걱 긁는 소리가 울리고, 이따금 장작타는 소리가 들린다. 밤이 깊어도 반합은 여전히 뜨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