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결혼 예능 즐기는 분? 결혼과 이혼에서 방황하는 분? 이혼을 간접 경험해보는 방법...
글. 혜연
사랑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연간 10만 부부가 이혼 혹은 졸혼을 한다.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혼 예능 또한 늘어나고 있다. 매운맛 예능이라고 불리지만, 언제나 현실이 더 지독하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부부가 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고 있을지 짐작할 수 없다.
예능보다 덜 매운 영화, 드라마에서는 이혼을 어떻게 다룰까. 부부의 현실적 끝맺음을 그린 영화 [결혼 이야기], 이상적 끝맺음을 그린 드라마 [최고의 이혼]을 통해 이혼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부부가 언제 이혼을 생각하는지, 어디까지 구질구질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이혼을 해야 잘하는 것인지. 이혼에 관한 고민을 다양한 관점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만약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두 작품을 통해 조금의 힌트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결혼 이야기’
시작보다 중요한 끝맺음
이미지: 판씨네마(주) |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제목과 달리, 결혼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이혼 상담 중인 부부가 서로에게 애틋한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훌륭한 춤 솜씨나 매력적인 옷차림, 긍정적인 성격 등 서로의 장점을 읊어주며 남아 있는 좋은 기억들을 떠올린다. 이를 마지막으로, 천재적인 연극 연출가와 주목받던 배우는 모두가 부러워하던 부부 생활을 끝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부부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는 모두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수상 이력이 있는 배우들이다. 애증과 연민, 후회와 혼란이 뒤섞인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 노아 바움백은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통해 현실적인 뉴욕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냈고, [결혼 이야기]는 LA와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뉴욕과 LA의 거리만큼이나 마음이 멀어진 부부는 시작보다 중요한 끝맺음을 배워간다.
고통스러운 이별의 과정
이미지: 판씨네마(주) |
부부의 다툼이 절정으로 향하는 장면, 휘몰아치는 대사와 함께 보여준 감정의 격동이 인상적이다. 니콜은 찰리의 이기심을 지적하고, 찰리는 매일 눈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바란다고 되받아친다. 단 2초만에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은 고통스럽고 기나긴 이별의 과정 속에서 결국 서로의 밑바닥까지 들추게 된다. 기어코 한 번은 상처를 남기려는 듯이. 마음에도 없던 말들을 뱉어버린 찰리는 후회하며 오열하고, 니콜은 조용히 그를 위로한다.
사랑이 끝나면 인간이 보인다. 인간이 보이니 연민이 시작된다. 누구보다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잘 아는 부부에게는 인간적인 감정들이 남아 있다. 법정을 오가던 두 사람은 결국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지만, 풀린 신발끈 정도는 묶어줄 수 있는 관계가 된다.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이 끝난 자리에 새로운 관계가 싹튼 것이다. 뼈아픈 이혼마저 결혼의 한 조각이라는 예리하고도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며, 이들의 결혼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드라마 ‘최고의 이혼’
축제의 끝과 시작
이미지: KBS |
문제 없어 보이지만 이혼을 결심한 부부와 문제 많아 보이지만 헤어지지 않는 부부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솔직하게 그린 작품으로,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차태현, 배두나, 이엘, 손석구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까지, 부부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인상적인 연기로 담아낸다.
드라마는 ‘결혼은 정말 사랑의 완성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남녀의 생각 차이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풀어낸다. 털털하고 덤벙거리는 휘루와 꼼꼼하고 깔끔한 석무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에 완벽했다. 그리고 결혼 3년차의 어느 날, 아주 갑자기, 그녀는 남의 편인지 남편인지 모를 남자와의 축제를 끝내기로 결심한다.
휘루가 이혼을 결심한 진짜 이유는, 당신에게 평생 이해받을 수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3년을 같이 살았음에도 남편은 왜 아내의 마음이 다쳤는지 알지 못한다. 허무함과 서러움이 밀려온다. 축제라고 여겼던 결혼이 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곧장 실수를 만회하기로 한다. 하지만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이혼 후 비밀 동거를 시작한다. 각자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며, 이혼이 축제의 끝인지 시작인지 고민하게 된다. 원작과 달리 한국의 가족 문화가 밀도 있게 반영되었다. 이혼은 두 사람만이 아닌 두 가족 사이의 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속에서 느껴지는 유대감이 작품의 정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해방 혹은 안정
이미지: KBS |
어느 부부에게나 권태기가 찾아온다. 내가 선택한 상대로부터 해방을 원하는 이기적인 마음 탓이다. 늘 그럴 때쯤 과거의 연인과 재회를 하게 되고, 매력적인 연하남이 구애를 해오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어긋난 방법으로 공허감을 달래고,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쪽은 다 알면서도 눈을 감아준다. 드라마 속 유영은 남편 장현의 외도를 늘 모른 척하며, 위태롭고 불안한 관계를 함께 만들어간다.
결혼은 책임을 동반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책임하다. 여자는 남자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온전한 품을 주지 않는다.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약하고 쓸쓸한 여자와 애매하고 모호한 남자가 과연 안정된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여자는 홀로 서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고, 남자는 책임감을 먼저 배워야 했다. 결핍 투성이 두 남녀를 통해,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 어떤 불행을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결혼은 정말 사랑의 완성일까?
이미지: KBS |
부부는 언제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될까. 상대가 이유 없이 미워 보일 때, 서로에게 무관심해질 때, 서로가 더이상 사랑스럽지 않을 때, 상상하던 결혼 생활이 아닐 때? 이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는 말은 이혼녀, 이혼남이라는 타이틀만큼 폭력적이다. 결혼은 사랑의 과정일 뿐이며, 방대한 인간사의 한 조각이다. 어쩌면 기적에 가깝다. 일어나면 기쁘고, 일어나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그 진실을 알아챈 주인공들은 샴페인과 함께 축제를 벌인다. 이혼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유쾌하고 명랑한 분위기로 환기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현재 왓챠와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