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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테일러콘텐츠

“안녕하세요! 배우, 아니 감독 누구누구입니다!” 국내 배우들의 감독 모먼트

글. 혜연

이정재의 [헌트], 하정우의 [롤러코스터], 문소리의 [여배우는 오늘도], 김윤석의 [미성년]은 그들의 감독 데뷔작이다. 연기도 믿보급인데 연출작 역시 대단했다. 배우들이 단편 영화를 연출하는 옴니버스 프로젝트 [언프레임드] 또한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연출에 도전하며 또 다른 재능을 발휘하는 중이다. 최근작 중심으로 그 속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작품들을 발견해 보았다. 10분 미만의 실험적인 단편부터 유쾌함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장편 상업영화까지, 우리가 몰랐던 배우들의 감독 데뷔작을 만나보자.

병훈의 하루(2018) / 이희준

생활연기의 달인 이희준은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라고 말하며 [병훈의 하루]를 내놓았고,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연기를 추구한다는 배우 이희준은 [병훈의 하루]에서 주연까지 직접 맡으며, 오염 강박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남자의 전쟁 같은 일상을 17분 동안 생생히 담아냈다.


경계와 불안에 짓눌린 병훈에게는 옷을 사는 사소한 일과도 험난한 숙제와 같다. 그래서 고립되거나 좌절하기 쉽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회 일원으로 성장한다. 이희준은 자신이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환자들이 자기 안에 갇혀 처지를 비관하지 않기를 바라며, 괜찮다는 말로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싶다고 전했다. 실수와 다름에 너그럽고, 친절과 다정이 자연스러운 사회를 바라는 그의 의도가 꾸밈없이 전해진다.

포가튼 러브(2020) / 김승우

예능으로 더 친근한 배우 김승우가 사랑에 관한 다섯 가지 단상을 풀어놓은 [포가튼 러브]. 30년차 배우 김승우의 첫 연출작이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다는 김승우는 [언체인드 러브]를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단편 영화를 연출하고 있다. [포가튼 러브]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혼란, 의심으로 시작된 이별, 첫사랑과의 재회, 엇갈린 기억의 조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까지. ‘사랑’이라는 거대한 주제 아래에서 감독만의 다양한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지는 옴니버스 영화이다. 서정적인 음악과 편안한 영상이 어우러져,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 멜로 영화가 탄생했다.

장르만 로맨스(2021) / 조은지

베스트셀러 작가의 버라이어티한 사생활을 그린 [장르만 로맨스]는 다양한 감초 역할을 맡아온 22년차 배우 조은지의 연출작이다. 2014년, 단편 영화 [이만원의 효과]를 연출했던 조은지는 2021년,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 장편 상업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을 통해 배우 출신 감독 최초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선 넘는 선생과 제자, 알쏭달쏭한 이웃사촌, 쿨한 이혼 가정, 위험한 삼각관계까지. 사랑만 하기에는 너무나 버라이어티하게 꼬여가는 인생들이 펼쳐진다.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의 코믹한 케미가 전부일 것 같지만, 그보다 훨씬 따뜻하고 사려 깊은 연출로 휴먼 코미디 영화를 완성시켰다.

돛대(2021) / 이주승

모든 계획에 실패한 청년 은구가 인생 마지막 계획으로 멋진 죽음을 선택하는 [돛대]. 조용한 해안 도시에서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피운 후 생을 마감하려던 은구가 옛 인연 명희를 만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덤덤하게 희망을 품게 된다. 모든 것이 투박한 마을, 소란스럽지만 반가운 옛 인연, 조용하고 반가운 술자리, 담배에 새겨진 별. 그가 희망을 발견하는 것들은 이토록 사소하고 단출하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독립영화의 매력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장례식의 멤버], [U.F.O], [셔틀콕], [소셜포비아] 등을 통해 강렬하고 묘한 인상을 남긴 배우 이주승의 연출작이다. 앳된 얼굴로 소년의 의뭉스러움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는 그가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으며, 명희 역을 맡은 이상희와의 연기 시너지가 돋보이는 단편 영화이다. ‘독립 영화계의 아이돌’로 출발해 어느새 많은 대중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의 장편 연출작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심연(2021) / 문근영

자신 안의 한계를 깨려는 사람의 내면을 9분 동안의 실험적인 영상으로 옮긴 [심연]. [가을동화], [장화, 홍련], [어린 신부] 등의 주역이었던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첫 연출작이다.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았던 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인 감독으로서의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심연]에서 그는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으며, 고난이도의 수중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가늠할 수 없는 심연과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 갇힌 사람의 혼란을 대사 한마디 없이, 발을 딛을 수도 없는 물속에서 표현해낸다. [심연] 외에도 무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배우의 운명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현재진행형],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아름다운 몸짓으로 표현한 [꿈에 와줘]를 연이어 작업했다. 세 편 모두 대사 없이 음악과 몸짓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실험성과 예술성이 돋보인다. 그는 스스로에게 연기가 구속이었다면, 연출은 해방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정해져 있는 캐릭터를 벗어나 능동적인 자세로 순수 창작 활동에 나선 문근영의 시도가 빛난다.

너와 나(2022) / 조현철

화사한 봄날, 소녀들의 꿈결 같은 풋사랑을 그린 [너와 나]. [D.P.], [차이나타운]에서 보여준 서늘하고 섬뜩한 연기가 인상적인 배우 조현철의 첫 장편 영화 연출작으로, 타인의 죽음에 아파하던 그의 진심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 연출을 전공한 그는 단편 영화 [척추측만]으로 2010년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언급상을 수상했고, 2022년 [너와 나]는 배우로 전향한 후 오랜만에 내놓은 연출작이기에 더욱 반갑다.


2014년의 아픔을 가까이서 겪은 세대에게는 특히나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한 최근 우리는 국가가 선포한 애도 기간을 가졌다. 또 한번 감독이 말한 ‘외면할 수 없는 죽음들’의 목격자가 되었지만,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다. 아마 조현철은 모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가장 따뜻한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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