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불꽃이 되리, 나혜석
강인하지만 흔들리는 눈빛. 자화상 속 여인의 표정에는 여자이기 전에 인간이고 싶었던 작가의 고뇌가 담겼다. 신여성의 대명사, 나혜석의 삶은 그렇게 치열하고도 뜨거웠다.
나혜석과 김우영의 결혼사진, 1920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 |
스스로를 불꽃처럼 사르며 사라져간 예술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나혜석이 그런 존재다. 삶의 궤적을 근거로 프랑스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비견되는 그는 곤궁했던 개화기에 신여성으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조선 여성 최초로 세운 기록이 많다. 최초의 동경 유학생이었고, 남성도 하기 힘든 유화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32세 나이에 16개국을 여행해 동아일보와 잡지 <삼천리>에 각각 ‘구미시찰기’와 ‘구미유기’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했다. 서양화가로서 나혜석의 작품은 크게 2기로 구분된다. 사실적인 수법으로 인물과 풍경을 그렸던 파리여행 이전과 야수파·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아 한결 참신한 수법을 선보인 파리여행 이후다. 단순한 그리기 기법을 적용한 유화에 한계를 느끼던 그는 구미 여행길에서 새로운 화풍을 배웠고, 작품을 통해 사실을 주관적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활달한 필치와 자유분방한 색채로 표현하며 그만의 예술에 눈떴다. 아내,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이고 싶었고, 당위(當爲)의 존재이고 싶었던 그는 그림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감각을 담은 소설과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영향일까. 나혜석이 프랑스 여행 중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한 천재가 여성과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자화상>을 비롯해 겹겹이 두꺼운 붓질로 사물의 윤곽과 초점을 흐린, 나혜석만의 독특한 기법이 발휘된 유화들은 시대와 타협하지 못하고 조금씩 지쳐가는 그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자화상 속 강인한 듯 우울한 인상의 여자는 결국 고국에 돌아와 질풍 노도의 삶을 살다 52세에 행려병자로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 그 이름 석 자를 능동적인 삶을 살아낸 조선 신여성의 표본으로 영원히 각인시키며 말이다.
자화상 1928년 추정, 캔버스에 유채, 88x75cm,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 |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나혜석은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동경의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조시비미술대학)에 입학해 유화를 전공했다. 1921년 서울에서 국내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개최하고, 1923년 정규익, 박영래 등과 함께 고려미술회를 설립했으며,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 3등에 이어 1926년과 1931년에 각각 특선을 수상했다. 미술 작품 외에도 단편소설 현숙, 원한, 규원, 경희 등을 발표했고, 1934년에는 김우영과의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담은 ‘이혼 고백장’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나 이혼녀라는 꼬리표로 인한 사회적 냉대와 외면으로 1948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죽음을 맞았다.
신여성 도착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현재 선망의 대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편견과 조롱의 대상이었던 신여성을 주제로 총 68명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회를 열고 있다. 1부에서는 여러 매체를 통해 시각화된 신여성의 이미지를, 2부에서는 나혜석, 박래현, 천경자 등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3부에서는 문학, 무용, 대중가요, 사회운동 등의 분야에서 활약했던 신여성 나혜석, 김명순, 최승희, 이난영, 주세죽 등의 삶을 조명하며, 회화, 조각, 자수, 사진, 인쇄미술(표지화·삽화·광고), 영화, 대중가요등 5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4월 1일 (월요일 휴무)|2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서울 중구 세종대로 99|02-2022-0600
신여성,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이갑향
격자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 이갑향, 1937년, 캔버스에 유채, 112x8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1930년대 후반 나혜석에 이어 두각을 나타냈던 이갑향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격자무늬 옷을 입은 여인>을 비롯해 <부인상>, <자화상>, <휴식> 등의 작품으로 입선했다.
나상윤
동경제대 구내풍경 나상윤, 1927년, 캔버스에 유채, 38.1×45.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동경 유학 시절 그린 <동경제대 구내풍경>으로 입선한 나상윤은 <가면이 있는 정물>, <누드> 등의 작품을 남겼다. 서양화가 도상봉의 아내이기도 하며, 미술교육에 앞장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박래현
여인 박래현, 1942년, 종이에 채색, 94.5×80.5cm, 개인 소장 |
나녀(裸女) 박래현, 1930년, 종이에 채색, 202×99.5cm, 뮤지엄산 소장 |
전통 동양화에서 벗어나 판화, 실크스크린 등 실험적인 시도로 새로운 한국화를 선보인 박래현은 남편인 운보 김기창과 함께 20세기 한국 회화사에 큰 업적을 세웠다. 대표작으로는 <부엉이>, <노점>, <예술해부괘도> 등이 있다.
글 김정원 사진 손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