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원작자 "6.25 직후 BTS 나온 꼴…KBS 책임감 가졌어야"
▲ 고려거란전쟁 포스터. 제공| KBS2 |
KBS2 '고려거란전쟁' 원작자 길승수 작가가 KBS와 대립각에 입을 열었다.
길승수 작가는 23일 스포티비뉴스와 나눈 통화에서 "시청자들은 대하사극을 역사로 인식하고 본다"라며 "내 작품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대하사극의 좋은 대본을 쓴다는 마음으로 책임감을 가졌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길승수 작가는 '고려거란전쟁'의 기틀이 된 원작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려거란전쟁'이 16회를 기점으로 작가 교체 의혹이 나올 정도로 내용이 중구난방으로 전개되며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고, 시청자들의 성화에 길 작가가 "원작과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고 블로그를 통해 답한 내용이 퍼지면서 논란은 KBS와 길 작가의 전면전으로 번졌다.
길 작가가 '고려거란전쟁' 제작진과 처음 만난 것은 2020년 말 혹은 2021년 초로 약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시간이 흐른 일이라 정확한 시점이 기억나지 않지만 2020년 말 아니면 2021년 초다. 제작진이 고려 거란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다고 해서 미팅을 했다. 그리고 나서 연락이 없어서 제작진들끼리 만드나 보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1년 후에 원작 계약을 하고 싶다고 다시 연락이 왔고, 그러자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PD들과 '잘하자' 이런 얘기를 했고, 2022년 6월에 처음 KBS를 갔는데, 당시에는 이정우 작가가 아닌 다른 작가가 대본을 집필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년 동안 저 없이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 건데 한계에 봉착해 다시 나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라고 당시의 황당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실 전우성 PD는 절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드라마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절 불렀던 거다. 그 상태이니 (제작진도 고려거란에 대해) 공부가 아무것도 안 돼 있었다. 원래 대본을 집필했던 작가분도 원작자가 온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는데, 처음에 가서 잘 강의해드리고 두 번째 갔더니 '작가님 덕분에 일이 되기 시작한다고 하더라"라고 순조로웠던 출발을 설명했다.
길승수 작가는 제작진을 위한 수업을 시작으로 KBS 아트비전에 가서 갑옷을 고르는 등 작품의 미술 자문도 함께 맡았다. 그런데 KBS는 갑자기 대본을 쓰던 작가를 이정우 작가로 교체했고, 이정우 작가는 길 작가의 첫 강의를 20~30분 정도 듣다가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대로 길 작가의 자문도 거부하는 데 이르렀다.
KBS는 '원작 계약'에 대해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길 작가는 "원작 계약 (항목) 자체가 두루뭉슬했다. 몬스터유니온(제작사)쪽에도 원작 계약에 대해 (너무 두루뭉술하다고) 어떡하냐고 얘기했는데 최대한 도와달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KBS 측은 '고려거란전쟁'이 길승수 작가의 책을 옮긴 것이 아닌, KBS의 자체 기획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정우 작가 역시 "'고려거란전쟁'은 분명 1회부터 원작에 기반하지 않은 별개의 작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길 작가는 "자문 계약을 했을 당시에는 '고려거란전쟁' 역사책을 출간하기 전이었다. 한참 작업 중이었는데도 텍스트로 원본을 제공하고 강의까지 했다. 이정우 작가에게도 당연히 제공을 했다. 이후 이정우 작가가 그 책을 보고 1~2달 만에 시놉시스를 썼고, 카카오톡으로도 '작가님 덕분에 시놉시스 완성 잘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후에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고려거란전쟁'의 스토리텔링 북이라고 띠지가 나갔는데 KBS에서 그걸 떼라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황당해서 몬스터유니온에 얘기를 했는데, '이정우 작가한테 물어봤더니 원고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하더라. 증거가 엄청 많은데도 이건 남의 연구물을 빼앗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답답해했다.
▲ 제공|KBS2 '고려거란전쟁' |
'고려거란전쟁'은 실제 역사에서는 없었던 일을 등장시키거나, 시대를 뒤바꾸는 등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스토리텔링으로 왜곡논란이 아는 등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길 작가는 "고려 현종 때는 과거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이미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제가 정립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고려거란전쟁'의 이야기는 현재의 한국을 묘사하면서 6.25 전쟁이 막 지나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종이 멱살을 잡는) 강감찬이나 그런 캐릭터가 거기서 나올 수가 없다"라며 "지금 상황은 6.25 전쟁이 끝나고 곧바로 BTS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답답해했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KBS와 길승수 작가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양측은 더욱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다.
길승수 작가는 "원래 이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드라마에 망조가 드니 하루에 수십 명 오던 블로그에 1만 명씩 들르게 됐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이건 좀 심하다'고 시청자분들이 분통을 터뜨리셔서 저도 솔직히 글을 못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너무 커져서 자제해야겠다, 이럴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KBS가 연락이 와서 '댓글 달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자신의 의사 표명을 막으려 했던 KBS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길 작가는 "저를 욕할 게 아니라 그냥 시청자들 앞에 사과하고 남은 드라마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만들면 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역사대로만 만들면 간단한 얘기"라며 "저도 작가이기 이전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자, 시청자로서, 대하사극을 보고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배운다. 대하사극이라는 건 역사로 인식하고 본다는 것이자. 제작진이 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이 아니라 대하사극의 좋은 대본을 쓴다는 마음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진리 기자 mari@spotv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