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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세계일보

12첩 보리밥·고소한 콩물·따뜻한 육전… 맛나부러!

안젤라의 푸드트립

광주밥상


흙내음 나는 보리밥정식 할머니 정 듬뿍

맷돌에 간 자연두유 ‘시간의 맛’ 느껴져

바로 부치는 육전·해물전에 소주 한잔 캬~


사실 광주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딱히 없다. 떡갈비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담양이 떡갈비로 더 유명하다. 광주에서 많이 즐긴다는 오리탕도 전국 어디에나 있다. 떡갈비도 오리탕도 아니다. 진정한 광주의 맛은 무등산과 시간, 그리고 사람의 정이 빚는 자연의 맛이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마흔네번째 여행지는 광주의 밥상이다.

무등산 아래에서 즐기는 자연의 맛

광주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무등산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무등산은 광주와 전라남도 화순, 담양에 걸쳐 있는 해발 1187m의 산으로 우리나라 21번째 국립공원이다.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고 하여 무악, 무진악이라고 불렸는데 큰 산에 얽혀 있는 무속신앙 때문에 무덤산, 무당산으로도 불린다. 그래서인지 차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점집을 지나치고 큼지막한 카페와 수많은 보리밥집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만난다.


그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고, 허름해 보이는 ‘온천 보리밥집(할머니집)’을 찾았다. 다른 곳은 주차장도 넓고 깔끔한 외관을 자랑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곳은 입구부터 무심하지만 정감이 있어 보였다.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로 온돌방에 앉았다. 메뉴는 단 하나. 보리밥정식을 주문하고 무등산 막걸리도 곁들였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커다란 잎의 쌈채소와 10가지가 넘는 반찬그릇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는 동그란 은색 쟁반을 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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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식의 가벼운 된장국과 부추무침, 애호박무침, 콩나물무침, 시금치무침, 고사리, 묵은지, 톳, 버섯 들로 빼곡한 쟁반을 식탁에 두니 밥그릇을 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상이 가득 찼다. 성인 남자 1명이 다 먹기도 힘들 정도로 보리밥을 수북이 주는데 그 위에 반찬들을 올린 뒤에 참기름, 고추장과 젓갈양념을 함께 넣어 비빈다. 팔뚝만 한 길이의 푸른색 이파리를 툭 뜯어 반으로 접은 뒤에 막 비빈 밥을 올려 한입에 넣는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나물향기는 무등산의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무등산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니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다.


이 커다란 쌈채소는 하우스에서 재배한 열무 잎으로 너무 억세지 않고, 부드러워서 수많은 나물과 밥을 올려도 가뿐하게 씹어 넘길 수 있었다. 배가 찢어질 듯, 보리밥과 막걸리를 먹고 난 뒤 계산을 하려는데 한 상에 8000원이라니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무등산의 흙내음이 나는 제철 자연밥상에는 광주의 대자연과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걸쭉하고 고소한 콩물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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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불렀지만, ‘후식 배’는 따로 있다. 보통 같으면 “커피 한잔?”하고 카페를 가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메뉴는 바로 콩물. 약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콩을 직접 물에 불려, 맷돌에 갈아 녹진한 콩물을 만드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조두유집은 아파트 단지 주변에 있는데 워낙 허름한 외관 때문인지 이 동네의 터줏대감이 이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큰 궁서체로 ‘두유’라고 적혀 있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콩을 선별하고 있다. 커다란 채반에 하얀색 콩을 펼쳐두고 콩물로 만들 콩을 고르는 중이다. 콩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콩을 물에 최소 6시간 이상 불린 뒤에 핸드블랜더나 믹서에 넣어 갈아버리지만, 원조두유는 과거방식 그대로 여전히 맷돌에 간다.


팔이 야위어진 할아버지는 미리 갈아놓은 콩을 가마솥에 옮겨 따뜻하게 조리를 해준다. 메뉴는 따뜻한 콩물, 차가운 콩물을 소, 중, 대 사이즈별로 고르면 되는데 설탕과 소금통을 함께 내어준다. 숟가락으로 콩물을 떠보니 반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걸쭉하고, 무게감이 있다. 콩이 이런 맛이었나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고, 소금을 숟가락에 살짝 뿌려 콩물과 함께 입에 넣었다. 따뜻한 콩물은 소금과 함께 먹으면 포슬포슬한 찐 감자를 소금에 찍어먹는 맛이다. 차가운 콩물은 설탕과 함께 먹었을 때 녹진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다. 지금 뜨는 것은 하얀색 콩물 한 숟가락이겠지만, 이 안에는 더 많은 시간의 맛이 담겨 있었다.

가장 맛있는 전은 방금 부친 따뜻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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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올 때마다 먹던 음식이 있는데 바로 육전이다. 광주의 7미 중 하나로 선정된 육전은 자리에서 바로 부쳐주는 전으로 유명하다. 보통 전집은 커다란 소쿠리에 쌓아 나와 시간이 지나면 약간의 기름 냄새가 나는데, 광주에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육전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1983년부터 오로지 전만 부쳐온 대광식당. 워낙 육전이 유명한 지역이기 때문에 광주식 육전 식당은 많지만, 이곳이 ‘최초’여서 광주를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더 의미가 있는 곳이다.


카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한 외관의 실내 인테리어. 2층에 올라가니 하얀색 종이가 테이블에 깔려 있고, 검은색 스토브가 하나씩 놓여 있다. 기본적으로 전집이기 때문에 전으로 부쳐 먹고 싶은 재료만 고르면 된다. 한우 아롱사태 육전을 비롯해 굴전, 키조개전, 산낙지전, 대구전, 새우전, 전복전 등이 있는데 육전은 기본으로 하고 원하는 해산물을 1인분씩 주문하는 것이 좋다. 달콤한 호박죽으로 위를 달래고 있는 사이 하얀색 가루와 노란색의 액체가 담겨 있는 그릇이 나온다. 찹쌀가루와 계란물로 눈앞에서 바로바로 전을 부쳐준다. 보통은 밀가루에 묻히고, 계란물에 담군 뒤 전을 부치는데 찹쌀가루를 사용하니 조금 더 가볍고, 얇게 썬 아롱사태가 입에 찰싹 감긴다. 전라도 소주 잎새주를 곁들이며 “맛있다 맛있다”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전을 부치던 이모님은 명대사를 남겼다. “가장 맛있는 전이 뭔지 아세요? 바로 부친 전, 그리고 남이 부쳐준 전입니다. 그래서 광주 전이 맛있는 거예요”라며 웃음을 짓는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제사나 차례를 지내기 위해 대량으로 미리 부쳐놓거나 손가락 끝에 붙은 반죽을 보면 왠지 모르게 ‘전은 다음에…’라는 생각이 드는데, 광주 사람들은 이런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고, 직접 전을 부치고 있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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