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연주자가 나온 공연에서 벌어진 일
[취재파일]
일본인 연주자에게 '쪽바리!' 외치는 게 애국?
며칠 전 공연을 보고 온 관객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지난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에 다녀왔는데, 공연 도중 관객이 연주자에게 소리를 질러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공연은 '아디오스 피아졸라, 라이브 탱고'라는 제목으로 열린 공연이었다. 1부 연주는 일본인 연주자 4명으로 구성된 탱고 밴드 '콰트로시엔토스'가 맡았는데, 이 밴드의 바이올린 주자가 연주와 곡 설명을 하던 도중에 1층 중간 객석에 앉았던 관객이 일어나 연주자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쪽바리!'라고.
일본인 연주자를 겨냥한 이 돌발행동에, 일본인 연주자보다는 객석의 다른 관객들이 더 놀랐다. 공연장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고, 연주자는 '쪽바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당황한 기색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문제의 그 관객은 곧 공연장을 나가버렸다. 공연장 직원이 뭔가 조치를 취할 새도 없었다. 관객들은 '졸지에 봉변을 당한' 일본인 연주자가 안쓰러워서 위로성 박수를 쳐줬다 한다.
공연은 이후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공연 기획사에 물어보니 이 연주자는 다음날 바로 출국했다고 한다. 서투르지만 한국어로 곡 설명을 준비했고 한국을 좋아하던 연주자였다. 공연 기획사 담당자는 소동을 일으킨 관객이 지른 고함이 무슨 뜻이었는지 자세히 연주자에게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이날의 해프닝은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곧 가라앉았다' 정도로 지나갔다.
SNS를 검색해 보니 이 '소동'에 대해 쓴 관객들이 있었다. 반일 감정이 큰 것은 이해하지만, 왜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았다. 공연하러 온 일본인 연주자가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욕을 먹어야 하나. 한국 공연 기획사가 주최했고, 연주자 중에 일본인이 포함됐던 이 공연을 '일본산 불매 운동'의 대상으로 판단했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렇다면 그 공연을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왜 굳이 공연장에 와서 소동을 벌이고 공연을 보러 온 다른 사람들까지 방해해야 하나.
제보를 받고 나서 공연 관람 관객들을 상대로 당시 상황을 확인하고, 혹시 당시 공연을 촬영한 영상이 있는지 알아봤다. 하지만 영상을 확보하지는 못해 방송뉴스 기사로 쓰지는 못했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건 알리고 싶었다. 요즘 일본산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반일 감정도 고조되는 양상이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며칠 전 SBS 8뉴스에는 '일본 여행 가는 매국노 팔로우하는 계정'이라는 이름의 SNS가 등장했다는 기사가 나갔다( ▶ 일본 여행 갔다고 '공개 망신'…"성숙한 불매운동 필요"). 일본 여행 후기를 올리는 사람을 찾아내 팔로우하고 망신을 준다는 계정이다. 현재까지 250명 넘는 사람들을 찾아내 망신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불매운동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강요나 조롱, 모욕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해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