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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용궐산

순창 명물산행

용궐산 하늘길 르포

국내 최초 500여 m 길이 잔도…수직 절벽 걸어가는 기분 ‘아찔’

능선 아래 허옇게 드러난 암벽에 지그재그로 난 용궐산 하늘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아니 화요일 오전에 차가 왜 이리 많아?”


용궐산龍闕山(645m)에 오르기 위해 아침 일찍 용궐산 치유의 숲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중 오전 시간임에도 넓은 주차장에 차가 가득 찼다. 오늘 무슨 행사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모두 등산복 차림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 하늘길 영상이 두어 개 떴어요. 그중 하나의 조회 수가 100만 회를 넘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사람이 몰리네요.” 


산행에 동행한 순창군청 산림공원과 박현수 과장은 “지난 주말에는 어찌나 차가 많이 몰렸는지 진입로에서 2시간 가까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용궐산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월간<山> 취재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고 했다.  


“기사에 적어 주십시오. 주말에는 웬만하면 오시지 말고 주중에 비교적 한가할 때 오시라고요.”

어치계곡의 바위에 새긴 ‘수승화강’ 글씨. ‘치유의 숲’이란 콘셉트에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이런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군에서는 진입로 확장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강을 낀 도로를 넓힌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2~3년은 더 기다려야 할 참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산림관리용 임도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진입로를 일방통행으로 통제하고 들어온 차는 임도를 통해 나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란다.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어 산 쪽을 바라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능선 아래 거대한 암벽에 나무데크로 만든 잔도가 뱀이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바위를 감싸 안고 있었다. 저런 잔도는 중국의 숭산崇山이나 태항산太行山 같은 곳에서나 보던 것이었는데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잔도가 생긴 것이다.  


하늘길은 박현수 과장의 아이디어에서 기인했다.  


“10여 년 전 중국의 산을 견학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잔도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용궐산에 잔도를 만들면 딱 좋을 만한 대슬랩이 있더군요. 공사는 1년 남짓이지만 준비기간은 10여 년이 걸린 셈입니다.” 


그렇게 올해 모습을 처음 드러낸 하늘길은 정식 개장 전부터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더니 마침내 인터넷 공간을 통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순창의 명소로 떠올랐다. 


하늘길 가는 길에 만나는 ‘여성바위’ 바위가 파인 생김새가 오묘하다.

하늘길 가기 전 고사성어 찾기 

주차장 위쪽 임도에서 하늘길 이정표를 보고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박 과장이 “잠시만요”라며 걸음을 멈춘다.  


“하늘길과 같이 즐길 만한 게 있어요.” 


박 과장은 “용궐산 치유의 숲을 조성하면서 산책로와 등산로 곳곳에 고사성어를 바위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완성되면 ‘용궐산 고사성어길’이라는 걷기 길을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처음 찾은 고사성어는 어치계곡의 큰 바위에 새겨진 ‘수승화강水昇火降’이었다.  


“차가운 기운을 올라가게 하고 뜨거운 기운은 내려가게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한의학 원리입니다. 여기가 치유의 숲 아닙니까. 현대인은 온갖 스트레스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요. 그것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원리가  ‘수승화강’입니다.”

하늘길에 서서 바라본 섬진강 풍광. 강은 임실에서 넘어와 남원, 곡성으로 흘러간다.

용궐산 치유의 숲에는 이외에도 ‘상선약수上善若水’, ‘요산요수樂山樂水’, ‘현미지좌賢美之坐’, ‘인걸지령人傑地靈’, ‘신상구愼桑龜’, ‘산광수색山光水色’, ‘치심정기治心正氣’, ‘줄탁동시啐啄同時’ 등의 고사성어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아직 새기는 중이거나 새겨야 할 것들도 있다. 


“장소와 어울리는 고사성어를 찾아내기 위해 일일이 고문서를 다 찾았어요. 적당한 고사성어를 정하고 나면 좋은 글씨를 찾아내기 위해 명필가가 쓴 글씨를 모았죠. 추사 김정희 선생을 비롯해 한석봉, 양사언, 안평대군 등 조선 4대 명필가의 글씨는 물론, 중국 명필가의 글씨도 다 찾아봤어요. 그리고 각 글씨마다 최고인 것을 골라 한 자씩 조합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보통 수고한 것이 아닌 글자들이다. 그야말로 반평생 순창에서 산림공무원으로 재직한 박현수 과장의 땀과 노력이 용궐산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다시 하늘길 입구로 되돌아와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은 원래 등산로가 없었으나 하늘길을 내면서 새로 길을 만들었다. 큰 돌을 깔고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산수화 속 풍경 같은 어치계곡.

“오메, 채계산 출렁다리 갈 때처럼 수월헐 줄 알았더마 이거이 완전 등산이구마잉!”


친구들의 성화로 광주에서 하늘길 구경하러 순창까지 왔다는 한 아주머니가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평상복에 운동화를 신고 가방까지 손에 든 것을 보니 이렇게 길이 곧추 선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긍께 내 머랬냐. 산에 갈 띠는 기본적으로다가 등산화를 요래 딱 신고 오라 안 혔냐?”

아찔한 고도감이 느껴지는 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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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등산복 차림의 친구가 핀잔을 주자 아주머니는 “등산화 신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진께 말시키지 말그라”라며 토라진 척 한다. 모두 마스크를 끼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조잘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참 재밌다. 


깔딱고개 같은 길을 올라 드디어 하늘길에 닿는다. 허옇게 드러난 대슬랩에 놓인 나무데크 잔도에 올라서니 왼쪽 아래로 임실에서 넘어와 남원, 곡성으로 떠나가는 섬진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잔도의 폭이 넓어 중국의 그것처럼 ‘살 떨리는’ 스릴은 덜 하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순간 오금이 저린다. 인수봉 대슬랩을 처음 기어 올라가던 그때가 생각나 현기증이 났다. 머리 위로는 하늘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다. 

하산 후 들른 장구목의 요강바위. 1993년 중장비를 동원한 도둑들에 의해 도난당했다가 1년 6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던 사건의 주인공이다.

용이 거처하는 산

“산 이름에 용 ‘용龍’자와 대궐 ‘궐闕자’를 씁니다. ‘용이 거처하는 산’이란 뜻이지요. 이따 산행하면서 보게 되겠지만 용이 살던 굴도 있고 용머리, 용의 알도 있어요. 그야말로 ‘용의 산’이죠.”  


용궐산의 본래 이름은 용골산龍骨山이었다. ‘용의 뼈’라는 뜻이다. 그러나 근방에 사는 주민들이 산 이름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용의 뼈’라는 뜻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해 부정적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2009년 4월 공식적으로 용골산의 이름은 용궐산으로 바뀌었다.  


이름이 바뀐 덕분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범삼치 않음은 알 수 있다. 섬진강 맞은편 벌동산(461m)에도 똑같이 생긴 대슬랩이 있다. 마치 두 마리 용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용의 알이 반으로 쪼개진 모양의 용알바위.

하늘길은 ‘ㄹ’자로 크게 방향을 꺾어 올라간다.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현실의 경치는 점점 산수화 속 풍경이 되어 간다. 


“이 산수화에 낙조가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환상적이지요. 나름 이 부근에선 가장 높은 산이라 조망이 아주 좋아요.” 


하늘길에도 고사성어를 새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중간 중간 쉼터와 조망대도 만들어 두었다. 볼거리 즐길거리 가득하니 용궐산 산행이 아니고 하늘길 탐방만으로도 이곳을 찾는 목적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스님과 신선이 바둑 두던 용궐산 정상 

540여 m의 하늘길을 다 걷고 이제는 달구벼슬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향한다. 본래 용궐산 등산로는 ‘수승화강’ 글씨가 있는 어치계곡으로 올라와 이 달구벼슬능선을 타고 정상까지 가는 것이었으나 하늘길이 열림으로써 새로운 코스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정상까지는 줄곧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바위와 흙길이 적당히 어우러진 것이 북한산과 꼭 닮았다. 드문드문 로프를 잡고 올라서는 작은 ‘이벤트’ 구간도 있다.  


정상과 귀룡정, 내룡마을의 갈림길인 된목삼거리를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귀룡정으로 하산할 예정이니 정상만 보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올 요량이다. 

용궐산 정상. 정상석 왼쪽 너럭바위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용궐산 정상에는 나무데크 조망대가 있다. 이곳은 백패킹 장소로 알음알음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바둑판이 있었다고 해요.” 


박 과장이 정상석 주변의 너럭바위를 가리켰지만 바둑판이라 부를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옛날 용궐산에서 수행하던 스님과 신선이 바위에 바둑판을 그려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지요. 과거에는 바둑판처럼 줄이 그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6.25 전쟁 때 군인들이 막사를 설치하며 쇠말뚝을 박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지금은 확인할 수 없게 되었죠.”

용궐산은 이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 조망이 좋다.

첩첩산중에 섬진강을 아래에 두고 유유자적 용의 몸에 바둑판을 그려 대국을 벌이는 스님과 신선의 풍류라니! 당장 바둑을 따라 둘 수는 없으니 시원한 커피 한잔으로 목만 축인다. 


다시 된목삼거리로 내려오는 하산길에서 용굴과 용알바위를 만난다. 넓적바위가 천장에 얹힌 모양의 이 용굴은 ‘용궐산에 용굴이 있다’는 옛말만 듣고 박 과장이 직접 산을 다니며 찾아냈다.  

용궐산은 용이다 

“이곳은 용이 살던 동굴이자 용의 머리 부분이기도 합니다. 동굴 입구에서 왼쪽으로 조금 돌아가면 ‘역린逆鱗(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 모양의 바위가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용궐산 전체가 한 마리의 용인 셈이죠.”  


하산 막판 두 쪽으로 깨진 용알바위를 만난다. 이 동그란 바위가 어찌 이렇게 두 쪽이 났을까. 평소 같았으면 ‘바위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가 얼면서 부피가 커지고…’ 따위의 이과생다운 답을 내놓았겠지만, 용궐산을 오르내린 오늘은 당연히 문과생의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건 필시 용이 알을 깨고 나간 것이다! 용이다, 용! 용궐산은 진짜 용이었다!” 

용궐산 645m

전북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산행 거리 약 8.5km 


산행 시간 약 5시간  


산행 난이도 중하(하늘길 입구, 하늘길 종점~정상까지 급경사) 


산행 길잡이 


용궐산 하늘길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치유의 숲 주차장은 주중 오전에도 가득 차곤 한다. 진입로가 좁아 주말이면 차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순창군에서는 되도록 주말은 피하고 주중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치유의 숲 주차장에서 산 방향으로 가면 임도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어치계곡의 ‘수승화강水昇火降’ 글씨를 구경하고 되돌아와 ‘용궐산 하늘길’ 이정표를 따르면 본격적인 등산로에 진입한다. 하늘길까지는 큰 돌을 깐 급경사길이 이어진다. 관광 삼아 가볍게 오르기에는 다소 힘들다.   


하늘길 데크는 중국의 잔도처럼 아슬아슬한 길은 아니지만 거대한 암벽 위에 서서 섬진강과 맞은편 벌동산을 바라보는 기분이 기존의 전망대 등과는 다른 느낌이다. 하늘길 중간 중간 새겨 놓은 고사성어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540여 m의 하늘길을 다 걸으면 ‘정상’ 이정표를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정상까지 줄곧 오르막이 이어진다. 된목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0.7km다. 정상에는 데크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텐트 3동 정도를 칠 수 있는 곳이라 백패킹을 하러 오는 이들도 있다.  


정상에서 내룡고개, 기산 쪽으로 하산하거나 된목삼거리로 되돌아가 용굴, 귀룡정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어디로 하산하든지 도로를 걸어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 


교통 


순천완주고속국도 오수나들목으로 나와 13번국도를 타고 동계면 관전리까지 가서 연산사거리에서 21번국도로 갈아타고 내룡교차로에서 ‘용궐산·장군목유원지’ 방향으로 가면 된다. 광주대구고속국도를 이용한다면 순창나들목을 이용한다. 내비게이션에 ‘용궐산 치유의숲’으로 검색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불편함이 많다. 순창읍에서 택시를 타면 3만 원 내외 나온다.  


식사(지역번호 063) 


치유의 숲 맞은편 섬진강 건너에 ‘섬진강마실휴양숙박단지·오토캠핑장(0507-1356-6785)’이 있다. 펜션과 캠핑 사이트가 잘 되어 있다. 장군목유원지 쪽에는 578스테이 독채민박펜션(0507-1372-7501)과 산수풍경펜션(653-8948)이 있다. 가까운 식당은 장군목유원지 쪽에 장구목가든(653-3917), 장구목토종가든(653-7196)이 있다. 둘 다 매운탕과 토종백숙을 낸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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